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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저냥 ㅏ랑 Oct 11. 2019

피치포크의 지난 10년 앨범 결산을 보고 든 이런저런

(개별 앨범들의 순위에 있어선) 의외이기도 하고, (리스트를 관통하는 지향점에 있어선 ) 뻔하기도 한 리스트. 당연하지만 리스트 자체는 별 재미가 없고, 리스트에 대한 반응들이 재밌다. 



1. 

처음에 1위와 2위를 보고 든 생각은 '비겁하다'였다. 당연하지만 나는 [Blond]가 덜 훌륭하다고 화내는 게 아니다. 이를 보면서 스캔들 이후 홍상수에 대한 씨네21의 태도 변화가 떠오른 건 나 뿐일까? 카녜 웨스트의 트럼프 지지 선언과 #미투 운동에 대한 발언이 아니었다면 피치포크는 분명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를 2위가 아닌 1위로 밀고 나갔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피치포크라면 그렇다. 최근 정체성 정치로의 포지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 혐의는 더더욱 명백하다. 지금의 '시대정신'이라는 맥락을 열심히 반영하려는 시도는 결국 이런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는 걸까. 거의 모든 방면에서, 서로 다르게, (60년대의 푸코와 바르트가 물리치고 싶어했던) 저자는 귀환하고 있다. 


2.

타임라인을 내리다 이 트윗을 보고 속으로 공감의 소리를 질렀다. 나도 정확히 같은 느낌을 갖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 14년 까진 어찌어찌 힙합 없이 인디 록, 재즈, 알앤비, 일부의 일렉트로닉 등등만 듣고 살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엔 -특히 켄드릭 라마의 [To Pimp a Butterfly]를 기점으로- 여러모로 전혀 불가능해졌다 판단해 열심히 힙합과 일렉트로닉을 들었다. 단절이란 표현이 딱 맞아떨어지는. 이 판단은 무엇보다 '돌아갈 길이 없(어졌)다'는 미아의 감각에서 기인한다. 인디 록은 대체로 힙합에 끼지 못한 찌질이들을 위한 길이 됐다. 베이퍼웨이브는 시티 팝 리바이벌을 위시로 한 복고 트렌드로 나아가려는 전초전이었음이 밝혀졌다. 혼톨로지는 '공부하는 소녀' 로파이와 ASMR로 흡수된 지 오래다. 그 속에서 블랙 뮤직은 '참지 못해 터져나오는' 표현들로 민속지의 새로운 길을 열고자 했다. 그리고 지금은 예전에 인디 록을 열심히 듣던 것과 비슷한 정도로 힙합을 듣는다. "그 이후"의 차이를 감정적으로 설명하는 건 쉽지만 그 '장치'들을 제대로 지적하고 파고드는 건 당장은 어렵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다. 이 차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건 음악 내부의 문제, 가령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보다는 더 넓은 미디어 환경, 가령 텀블러, 인스타, 틱톡 쪽일 것이다. (물론 이는 편의상 거칠게 나눈 구분에 불과하다. 키틀러라면 이 구분을 격렬히 비난할 것이다) 말하자면 싸이월드 배경음악의 오래된 반복? 그렇다고 힙합이 단절을 안전하게 통과했다고 말할 순 없다. 


아, 그래. 원래도 케이 팝 아이돌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성공할 줄은 몰랐다. 


3. 

단절을 얘기하니까 이 쪽을 얘기 안 할 수 없다. <놀면 뭐하니> 재방송을 우연히 보다가 든 생각. 김태호는 386이 세운 문화의 탑 안에 신인 뮤지션들을 입주시키는 데 있어 놀라운 수완을 발휘한다. 무도 가요제 때도 조금씩 느끼긴 했지만, <놀면 뭐하니>에선 아예 이를 '유플래시'라는 메인 코너로 밀고 나간다. 이 사람은 신인 뮤지션들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들이는 기획을 하면서 은근히 (386 출신 비평가들이 세우고 X세대가 그 존속에 기여한) 한국 대중음악사라는 계보를 유지시키려고 한다. 


물론 이 계보를 잇는데 역사적 영향 관계라는 연속성은 성립될 수 없다. 애초에 신해철이 등장하고 난 이래 한국 대중음악에 연속성이란 엄격한 의미에서 존재한 적이 없으며, 다만 몇몇 밴드(대표적으로 장기하와 얼굴들)가 연속성을 되살리려 시도한 적만 있을 뿐이다. 한상원과 황소윤의 기타 스타일을 가치판단 없이 비교하는 걸 보면 김태호도 그것을 잘 아는 듯 하다(이 점에서 그는 임진모보다 훨 똑똑하다). 대신 김태호는 뮤지션들의 인맥에 전적으로 기댄 채 한국에서 음악을 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자극한다. 한국식 공동체 의식은 영향 관계에 상관 없이 선배/후배의 위계를 만들어 한국 대중음악사라는 계보를 (실상 어거지로) 구성한다. 대표적인 사례, 유재하에 대한 거대한 (존경이라기 보다는) 부채의식. 이렇게 뮤지션들을 기존 문화의 틀 안으로 포섭하고 서로를 붙여놓으면 기획자든 뮤지션이든 서로 윈윈이다. 이것이 한국 대중음악이 주류 문화 시장과 공생하고 살아남는 방식이다. 


4. 

그러고보니까 피치포크는 이제 재즈나 일렉트로닉은 완전히 놓아버린 듯 하다. 1번을 염두에 두면 이젠 재현의 정치에 집중하기로 한 건가 싶은데. 하지만 만화나 영화라면 (백번 양보해서) 몰라도 음악에서 그래도 괜찮은지. 피치포크는 점점 더 안전한, 그래서 재미없고 지루한 길을 걷는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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