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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May 15.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무지개를 찾아서

선배는 말한 대로 살잖아요.

그래? 나는 잘 모르겠는데.

계속 아이들이랑 뭔가를 할 것 같다고 했는데, 진짜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한 달 전에 이런 대화를 나눴다. 이십 년 전에 내가 그랬구나. 그러고 보니 다른 뭔가를 하려고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민단체든 뭐든 아이들이랑 뭔가를 하는 일이었다.      


시민사회에서 아동 영역은 비전이 없어. 정책에 목소리를 낼 수도 없고.

그런가요?

너의 기획력을 기껏 사회교육에다 쓰는 건 아깝지 않니? 이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는 데 한계가 있어.      


역시 이십여 년 전에 이런 경고를 받았다. 어린이 사회교육 실무자로 시민 사회 영역에서 올라갈 수 있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고. 그 한정을 꽤 오래 길게 높게 넓게 연장했다. 오만가지 일을 다 했다. 오만가지다. 가끔 그 오만가지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방과후에 왜 들어오려고 했던 걸까? 바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야겠다, 그 월급이 적더라도 그 편이 안정적일 거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로망 같은 게 있었다. 진짜 말 그대로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 시민단체 간사, 강사, 프리랜서 기획자로는 뭔가 엉성하다는 느낌, 아이들과 있다고 아이들을 안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빠진 느낌을 이제는 채워야지 했다.      


아니 왜 지역아동센터 복지사로 들어갔어요?

왜요? 

그렇게 많은 일을 해놓고, 지역아동센터에 가다니.     


염려가 아니었다. 저 말을 한 누군가는 어쩌면 나를 동정했는지 모른다. 혼자 살다 보니 돈과 소속이 필요하군 어쩌면 그랬는지 모른다. 그러 든 말든,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아이들과 함께’는 보편의 로망이 아닌 나의 로망이었다는 사실.      


내가 아이들을 무한 사랑하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사랑도 안 하면서 왜, 도대체, 혹시 자기보다 약한 존재에 힘을 쓸 수 있어서? 이런 질문을 한 적도 있다. 혹시 나 그런가 하고. 왜 아이들과 뭔가를 하려고 하지라는 질문을 누구보다 많이 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다.

답은 계속 바뀌고, 전의 답이 지금의 답이 되기도 하고, 모든 답이 하나가 되기도 했다. 회복탄력성, 변화, 간결하고 투명한 존재, 희망과 낙관 등등.

현재 시점 역시 잘 모르겠다. 어쩌면 모르는 게 당연할 수도. 인생에서 명확한 답이라는 게 도대체 얼마나 된다고.           


가끔,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위탁가정으로 옮기고 거의 동시에 방과후에 다니게 되었던 a를 떠올린다. 어제 나는 a랑 오랫동안 수다를 떨었다. a는 누구보다 잘 웃었다. 공부 시간이 너무 많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자신이 이제는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 자랑하고, 방과후 와서 노는 걸 진짜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고 말했다. 8개월 전의 a를 떠올리면서 위탁가정의 선생님과 a에게 고마웠다. 보라고, 사람은 이렇게 변하는 거야를 알려주어서.

분무기와 비눗방울을 들고 무지개를 만나러 갔던 나들이도 참 좋았다. 아이들은 홀딱 젖어서는 여기저기서 나를 불렀다.      


깔마, 깔마, 깔마, 무지개야, 무지개야, 무지개야.         


샘과 데이브가 보물을 찾겠다며 땅을 파는 그림책이 생각난다. 둘은 신기하게도 보물을 이리저리 피해서 땅을 파고, 보물은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보물이 무지개였으면 참 좋았을 텐데. 물과 공기와 빛만 있다면 만날 수 있는 무지개였다면 좋았을 텐데. 내 인생이 샘과 데이브의 보물 찾기와 비슷하다고 느끼다가도, 어쩌면 아이들이 찾은 무지개 같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금방 사라지고 찬란하지 않더라도 사실 무지개는 우리 옆에 존재한다. 아니다, 샘과 데이브가 보물을 찾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돌아온 집은 처음 그 집과 달랐다. 그렇지 뭐. 사는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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