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까 요즘 '익숙해서 익숙하다 보니'가 화두가 되었다. 대표적인 일이 어버이날 용돈 사건. 선물(당연히 현금도 있음)에 안 해도 되는데, 네가 힘든 데로 일관한 엄마가 적은 액수의 용돈을 받고 벌컥 화를 냈다. 나는 어리 둥절 왜 그러시나 상태. 당혹감을 거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액수가 너무 적은 게 사실이었다. 사실, 정말 사실이었다. 조금 더 드리고 싶다는 게 익숙한 감정이었는데 이번에는 왜 그랳을까, 적다는 사실을 왜 일도 생각 못 했을까.
기타 등등 익숙해서의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어 덥네, 얇게 입어야지 하다가 쌀쌀한 날씨에 반팔을 입고 나가는 것쯤은 가벼운 정도, 뭐 기침 몇 번하면 되니까. 어떤 일은 괴로워서 한숨 다섯 번을 쉬기도 했다. 엄마에게 부담을 주지도 않는 적당한 액수의 용돈을 왜 책정하지 못했을까, 기온에 맞는 적정한 옷을 왜 입지 못했을까, 왜 나는 적당과 적정, 어울리는 선택이 아니라 반대의 엉뚱한 뭔가를 하는 걸까, 한숨 다섯 번이 아니라 열 번.
사람의 눈이 색을 인식하는 세 가지 물질이 있다. 색각옵신이라는 발음하기 상쾌한 이름을 지닌 물질이다. 청색, 녹색, 빨간빛(왜 노란빛은 없지 싶어서 찾아보았는데 선명한 답을 찾지 못했다)을 감지하는 옵신은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유능, 무능, 쇠퇴, 발전, 오류를 겪는다. 그중 하나가 청록 잔상 현상이다. 오랜 시간 빨간색을 보고 있으면 적추체가 피로해져서 빨간색에 둔감해지고, 역으로 청추체와 녹 추체는 활력을 띠게 된다. 와 쉬었더니 힘이 나 하고 방긋방긋 웃는 청추체와 녹추체를 떠올리면 흐뭇해진다. 둘이 너무 신이 나다 보니 색각옵신이 삐끄덕거린다. 그 결과 분명히 하얀 벽인데 하얀 벽이 아닌 엷은 청록색 벽이 눈 앞에 등장한다. 하얀 벽이라고 하얀 벽을 마음으로 외쳐도 청록 벽이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위안이 되는 건 아니지만 약간의 안심은 찾아온다. 용돈을 더 드리고 싶은데 싶은데라는 마음이 오랫동안 작동해서, 더운데 더운데 하다가, 거꾸로 반대의 엉뚱한 선택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뇌의 작용이라고, 뭐 그런 자기 합리화일지도.
수술 가운이 청록색인 이유는 세 색각옵신을 균형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랍니다. 외과 의사가 붉은 피에 피로해져서, 청록의 헛것을 보면 안 되니까요. 흰색 가운을 입었는데 흰색 가운에 청록색이 왜 보이는 거야 하고 짧게 외치다 보면 집중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나도 뭔가를 해야겠다. 청록색 수술 가운 같은 뭔가를. 정기적으로 아이들이랑 떨어져 있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