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이는 것과 섞이지 않는 것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

by 열무샘

섞이지 않는 물질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 잘 몰랐던 것 같다. 하얀 우유 위 연두 빛 색소를 가만히 쳐다본다. 우유 위 연두 빛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달팽이 같아, 회오리 같네, 아이들이 한 마디씩 한다. 나는 아름답구나 하고 쳐다보고 있었다.

연두 빛 색소와 우유가 섞이기 시작했다. 움직이길 좋아하는 아이들은, 두 물질을 열심히 섞는다. 어느새 컴 속에는 멜론 빛의 액체가 존재한다. 완전히 섞인 것 같다. 아이들이 멜론 우유 같다고 좋아한다.


동네 여자들과 함께 읽기로 한 책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가부장제가 남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남성 역시 가부장을 인지하고, 자신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취지의 책이다. 피식 웃음에 담긴 말은 이런 거였다.

‘맞는 말이지. 남성이 원할 때는. 하지만 스스로 원하지 않는 남성과 같이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화합, 통합 등등. 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합이 가능한가, 합이라는 게 도대체 뭐야, 불신도 있지만, 합 아래 어떤 종류의 폭력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냉소적인가, 하긴 밑바닥의 냉소라면 평균 이상이긴 하다.


문화, 경제, 지식, 가치, 사는 집과 골목, 국적, 신체적 어려움이 서로 다른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과 후는 멀찍이 바라보면 훌륭하고 아름답다. 그 안에 속해 있는 나는. 거의 매 순간은 아니더라도 작은 시간 단위로 고민과 갈등,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장난감을 가져올 수 있는 하루 행사, 물품과 비품을 어떻게 공급해야 하는 문제는 가벼운 쪽에 속한다. 아이들의 마실 문화를 이해하는 보호자의 습관, 이모 삼촌 별명을 부르는 호칭 문제는 중간쯤, 교사이자 한 사람인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문제는 또 다르다. 평화롭고 훌륭하고 아름다운 방과 후는 바깥 누군가의 방과 후다. 혹은 통합과 화합을 사랑하는 방과 후 속의 누군가에게도 아릅답다. 나는 아니고. 그렇다고 방과 후가 폭력적이고 나쁘고 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니 질문을 다시 해야 한다. 아름다운 게 뭐지?


섞이지 않는 우유와 색소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나와 멜론 빛깔 우유를 만들고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을 떠올려 본다. 두 가지 물질이 섞이든 섞이지 않든 아이들은 두 가지 모두에 집중했다.

물 위에 둥둥 뜬 기름 물감을 본다. 나는 또 감탄한다. 아름답다. 노란빛의 원형이 초록의 원형과 만나기도 하고 혼자 있기도 한다. 가장자리에 뿌린 보랏빛의 기름 물감은 또 어떤가. 역시나 아이들은 둥둥 뜬, 기름 물감을 보고 재미있다고 법석이다. 이 상태로만 가만있으면 좋겠다는 건 내 마음이고, 우리는 종이를 물과 기름 물감이 든 상자 안에 첨벙첨벙 담가야 한다. 종이를 담그면서 아이들은 물과 기름 물감을 이리저리 섞는다. 어떤 아이는 조심스럽게, 어떤 아이는 온갖 힘을 다해서 다 섞어 버린다. 한 참 동안 시끄럽고 야단법석에 떠들썩한 시간이 흘러갔다.


아름답다는 게 뭘까? 나는 아무래도 섞이지 않는 게 더 아름다운 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가 보다. 섞이고 섞이지 않고 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주목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건, 저렇게 시끄럽게 반응하는 아이들 한 사람 혹은 같이 웃고 떠드는 아이들과 아이들 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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