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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Aug 15. 2021

그러니까 작가

자기 책을 만드는 어린이와 함께 하는 일 2

예쁘고 귀엽게, 어린이답게, 그림과 글이 빼어난 작품도 있고, 열심히 노력을 해서, 이런저런 도움을 받아 책이 만들어졌으니 칭찬과 격려를 받을만한다. '작가'는 이 칭찬과 격려를 대표하는 말이 되곤 한다. 장래희망이 작가인 어린이라면 더욱더 작가라는 단어가 가슴에 꼭 박힐 것이고, 진로를 생각하지 않은 어린이가 있다면 이 과정을 통해 장래 희망을 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린이 작가 과정 같은 프로그램과 활동 제목을 접할 때 연상되는 그림은 이럴 것 같다. 이런 상상을 하는 누군가에게 묻는다. 당신은 여기서 어린이에게 붙은 '작가'라는 단어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작가'라는 호칭은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진짜 작가가 아닌 가짜 작가, 완성은 커녕 미흡하고 미흡한 작가,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서 작가, 알맹이가 아닌 그럴싸한 포장인 작가를 떠올리고 있지 않나요?  

 

"나는 어린이들한테 작가라는 말 붙이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어떤 예술가가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약간의 모욕감을 느꼈다. "어른들이 도와줘서 작품을 만들고, 유명한 작가가 한 번 다녀와서 너희도 작가야라고 칭찬해 주고, 그러면 작가가 되는 건가요?" 이어지는 말은 솔직하다 못해 적나라해서, 모욕감은 더 커졌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을 온전히 담아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면 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닌가요?" 나의 대답이었다. 답 안의 괄호에는 이런 말이 숨어 있었다. (학위를 따고 전시를 열고 돈을 멀고 유명해져야 작가냐 흥!)

예술가가 알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또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작가라면 엄중한 비평의 무게, 타인과 세상에 자신과 작품을 드러내는 책임을 지녀야 하는데, 어린이들이 그럴 수는 없지 않나요."

이 말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아쉽게도 그럴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다는 못하고 혼잣말을 했다. "아이들도 얼마나 힘들어하는데..."

모욕감도 느끼기는 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한다. 예술가는 이런 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어린이에게 붙이는 '작가'라는 단어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냐는 문제, 진짜 작가. 완성은 아니더라도 완성을 위해서 온 몸과 마음과 정신을 다 하고 있는가, 형용사가 아닌 명사로서 작가, 호들갑스러운 상찬의 수식어가 아닌 '작가'라는 단어가 가진 내용과 알맹이를 지니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작가라는 누구일까? 작가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와 내용을 지니고 있을까?         

   

2020년에서 현재까지, 내가 만난 어린이들은 작가라는 호칭을 부여받기에 충분했다. 형용사가 아닌 명사로서 작가, 수식어가 아닌 알맹이로서 작가가 아닌 진짜 작가였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 중 어떤 아이도 "내 꿈은 작가야, 그래서 열심히 할 거야."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두어 명 정도의 아이가 시작 전에는 장래희망과 꿈에 대해 당당한 포부를 밝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 사라졌다. 장래 희망을 바꾸고 싶을 정도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힘들었다.

완성을 위해서 아이들은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쳤다. 이게 마음에 안 들어서, 저게 성에 차지 않아서 속 상해했다. 계속 수정 수정을 하다, 못하겠다고 나자빠졌다. 완성도, 완성도의 객관적 기준이 있는 걸까? 아이들은 아이들 각자의 완성도를 기대하고 있었다. 어른이 내가 오히려 "이걸로 충분해. 즐기면 되는 거야"라고 교육의 문장을 되풀이했다.

비평의 무게, 맞다. 책을 만든 아이에게 어른들은 아이가 의기소침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잘했어, 이거 멋지구나, 참 잘 그렸구나, 이야기 재미있다, 나 역시 그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칭찬과 격려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관련해서라면 도가 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어른들이 자신을 칭찬해줄 거라는 걸, 그러니 어른의 말에 혹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마음에 들지 않아요, 창피해요, 내 책 못 보겠어요, 제발 저 책 치워주세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아이들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날카로운 비평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 자신과 작품을 드러내는 일.        


직업으로서 예술가, 공식적으로 이름을 부여받은 작가가 아닌 보통 어른을 떠올린다. 나도 보통 어른 중 한 명이다. 자랑, 견해, 느낌, 인용, 소감이 아닌 자기라는 존재에 밀착한 언어를 우리는 얼마나 사용하고 있을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자기를 표현하는 자리에 스스로를 초대한 적이 얼마나 있을까? 잘 그리지 못해서, 글을 잘 쓰지 못해서는 물론이요, 내 이야기는 시시해서, 내 이야기는 창피해서, 내 이야기는 너무 슬프고 비참해서, 입을 다물거나, 혹은 타인과 비슷한, 무난한 언어를 쓰고 있지 않을까?

그것이 글이든 그림이든 몸짓이든 무엇이든 '예술'에 기대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경험하지 못했던 보통의 우리가 안타깝다. 나 역시도.


아이들이 자신을 드러냈다면, 드러낸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그 작품이 어떠하든 나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다. 보통의 어른은 잘 못하는 일이야, 그런데 너희는 해 냈구나, 정말 좋아, 멋져, 네가 부러워하고.


세상에 자신과 작품을 드러내는 일의 책임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나는 보통 사람이라, 내가 만난 아이들은 보통의 어린이들이라. 몰라서 잘 모르겠다. 책임감을 지녀야 하는 게 진짜 작가라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이 진짜 작가인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못 내리겠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린이 작가 과정을 개설하는, 어린이 작가 되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전국의 많은 선생님이 대개 다 그럴 것이다. 아이들은 만만치 않게 '작가'라는 호칭에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을 마주하면서, '작가'라는 단어의 무게에 어른으로서 부담을 느끼고, 아이들이 이 무게를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현명하게 안고 갈 수 있을지, 어른인 우리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어린이도 작가라는 이름을 달 수 있다.

아니,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한다면, 그 표현의 도구가 무엇이든, 작가라는 이름을 달아줘야 한다.

책임감, 비평의 무게, 세간의 인정은 저 뒤에 뒤에 달린 이야기다.


그러니까 나는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작가야. 너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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