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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Aug 17. 2021

예술의 태도, 교육의 태도

자기 책을 만드는 어린이와 함께 하는 일 4

주황색 코끼리 두 마리, 왼쪽 코끼리와 오른쪽 코끼리는 비슷한 듯 닮았다.  자세히 보면 오른쪽 코끼리가 코와 귀, 몸통과 다리 균형이 잡혀 있고, 왼쪽은 어딘가 엉성하다. 색의 쓰임새도 오른쪽이 다양하고 조화롭다. 하지만 두 코끼리는 둘 다 환하고 유머스럽다. 제일 좋은 건 두 마리 코끼리가 같이 있다는 사실. 나란히 나란히 서로를 보고 있는 코끼리는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 "친구. 오늘 아침에는 뭘 좀 먹었어?" "커피 한 잔 마셨지." "커피만 마셨어. 빵은 안 먹고." "맞다. 빵 먹는 걸 잊었네. 너는 어때?" 이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할 것 같고, 속상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험담을 할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기후 위기에 관한 진지한 토론을 할지도 모른다. 이 두 그림의 작가는 다르다. 왼쪽은 어린이 작가, 오른쪽은 그림책 작가 김중석( <나오니까 좋다> <그리니까 좋다> 작가 선생님이다.


아이들과 책을 만들어보겠다고 작정한 게 언제부터일까 더듬어 보면, 그때였던 것 같다. 아이들에게 뭔가 예술의 기운을 마구 마구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2019년 가을이었다. 김중석 작가님은 그때 짠하고 등장하셨다.

선 긋기 연습, 자세히 관찰해서 그리기, 재료에 대한 설명, 구도 등등.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만큼 큰 전지, 크레파스든 색연필이든 뭐든 쑥쑥 그려보는 일, 쑤욱 쑤욱, 어떤 걸 그려도 돼. 마음대로 한 번 그려봐. 내가 한 번 그려볼게. 쑤욱 쑤욱. 와, 이 멋진 뱀은 뭐지. 나무에 열매를 달아볼까. 쑤욱 쑤욱.

아이들은 선생님을 한 번 쳐다보고, 자기 종이를 한 번 쳐다보더니,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정말 뭔가였다. 하늘, 나무, 졸라맨, 구름, 사자, 괴물. 뭔가를 그리고 웃고 좋아하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림을 벽에 붙였다.

옆에서 보는 나는 샘이 날 정도로 부러웠다. 저렇게 쑥쑥 그림을 그리게 만드는 선생님도, 쑤욱 쑤욱 재미있어 죽겠다는 얼굴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도 모두 부러웠다. 맞아, 저거야 하던 순간이고 장면이다.


그리니까 좋은 그림처럼, 책 만들기도 그렇게 시작했다. 재미있잖아, 만들면 되는 거야, 하자 아무것도 아닐 거야 하고. 물론 우리의 시작만큼 책 만들기 과정이  만만하지는 않았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예술 작업 역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눈을 질끈 감고, 흔들리는 감정을 부여잡고, 언젠가는 결과물이 나오겠지 하는 참을성이 요구된다. 아이들은 중간에 그만두겠다고 징징대고, 울고, 화를 내기도 했다. 어린이 작가의 매니저를 자처하는 나 역시 한 숨이 나온다. 어르고 달래고 싸우고, 심지어 협박까지 한다.

그럴 때마다 '처음'을 시작한다. 그리니까 참 좋지, 이야기를 만드니까 참 좋지, 이건 어때, 저건 어때의 처음을.


만약 어린이 작가 과정의 처음이 직선과 곡선 연습을 합시다. 물감은 이렇게 사용합니다, 구도는 이렇게 잡는 게 좋겠죠로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아이고. 상상하기 싫다. 무엇보다 작가가 되겠다고 손을 드는 어린이들 숫자가 지금의 반의 반도 안 될 것 같고, 매니저인 나는 스트레스 만빵이었을 것 같다. 그리니까 참 좋지라는 처음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의 갈등은 이렇게 풀어야지, 캐릭터의 일관성이 없잖아, 색감이 너무 어울리지 않잖아, 하고 나와 작가들을 괴롭히는 어른이지 않을까. 아마 그랬다면 나는 매니저가 될 수 없었을 것 같다. 미술 전공 강사를 섭외하는 아동센터 교사로 머물렀을 것이다.     


예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혹은 어떻게 예술 행위를 체현하고 있는가는 거창한 질문 같지만, 현실에서는 간결할 때가 많다.(물론 특별한 예술가가 아닌 나 같은 보통 사람인 경우를 말한다. 오해하지 마시길) 누군가는 그림 한 장을 그리면서 어깨를 누르는 긴장에 좀처럼 손을 움직일 수 없고, 누군가는 그냥 자유롭게 여러 색의 선을 한 장 가득히 그린다. 또 누군가는 나무 한 그루를 그리면서 지우개 절반을 다 쓰고도 완성을 하지 못하고, 어떤 누군가는 그 반대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자신의 상상과 현실과 모든 세계를 자신만의 말과 그림으로 전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렇지 못한다.

매니저, 교사, 이름이 무엇이든, 아이들 옆에 있는 어른인 나는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편안하게 익숙하게 서슴지 않고 예술 행위의 주체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어떤 뭔가를 하고, 그 어떤 뭔가는 '교육'의 한 과정이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이 교육 과정 역시 예술을 어떤 태도로 대하냐 와 긴밀한 연관성을 지닌다. 예술은 자유롭게, 교육은 형식적으로, 예술은 거창하게, 교육은 소소하게는 모순이다. 왜 모슨인지, 왜 긴밀한 연관성이 있는지를 여러 이론이 설명할 것이다. 그건 그것 대로.


현실이 알려준다. 생생한 살아 있는 아이들이 알려준다. 예술과 교육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다는 사실을. 이렇게 교육적으로 접근했을 때는 이런 예술 작업을, 저렇게 교육적으로 접근했을 때는 저런 예술 작업을 한다는 걸 확인시켜 준다.


예술의 태도와 교육의 태도는 서로 어깨를 걸고 같이 간다.


다시 주황색 코끼리를 바라본다. 두 마리는 다른 듯 닮았다. 아직 매니저의 태도는 예술가의 태도에 못 미치는  것 같다. 파이팅을 해야겠지. 조금 더 조금 더. 하지만 뭐. 못 미치면 어떤가. 계속 계속 어린이들 만날 테고, 만나는 동안은 어린이 작가 매니저로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때까지 해 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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