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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Aug 18. 2021

아직은 예비 작가, 예비 매니저

매니저의 일 1 - 예비작가 워밍업 워크숍

작은 인형 만들어서 동네 여행하기

연극놀이하면서 상상력 경험하기

종이박스로 내 나라 만들기

콜라주, 스크래치로 표지 만들어 보기


'예비작가 워밍업 워크숍'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아이들이랑 이것저것 했다. 아직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이었다. '책을 만들어볼래요.' 하는 어린이들에게 '이 정도는 해 봐야 해.' 하는 기간이었다. 아이들이 예비작가였던 것처럼, 어른도 예비 매니저였다. 어디까지나 예비, 예비. 워밍업이 왜 필요했을까, 워밍업 기간을 계획했던 이유는 1. 아이들을 관찰하고 싶다. 2. 아이들이 이야기를 만들기 전 더 자유롭고, 더 광활한 몸이 되었으면 좋겠다 등등이었다. 예비과정은 재미있기도 했고, 재미없기도 했다. 예비 작가한테도, 예비 매니저한테도. 한결같이 재미있고, 한결같이 재미없는 건 없듯이.


예비과정을 지내고 나서, 언제 우리가 예비 과정을 거쳤지 하는 시간이 돼서야, 작가 매니저를 자임하는 나는 알아차렸다. 아, 예비과정을 진행한 까닭에는 내 욕구가 제일 컸구나. 나는 눈치채고 있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시점부터, 예비를 떼고 본격적인 작가 과정이 시작되면, 다시는 이런 구조화된 과정을 진행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구조화된 과정을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교사인 어른인 내가 우위에 서서 제안할 수 있는 시간은 이게 전부일 수도 있다는 걸 막연하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가능한 새로운 기법, 새로운 재료를 주고 싶어서 콜라주와 스크래치로 표지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 아이들은 신나서 죽죽 찢고, 검은색 종이를 하도 긁어서 책상 위에 검은 때가 한가득했다. 아이들의 결과물이 본격 작업에 적용되었냐면, 아니다. 어떤 아이도 콜라주와 스크래치를 자기 책 만들기에 사용하지 않았다. 열심히 혹은 신나게 만들었던 표지를 기억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다.

종이 박스로 만들었던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내 나라는 색의 나라고, 내 나라는 변신하는 나라고, 내 나라는 그냥 나라라고 했지만, 그 각각의 나라는 그 순간의 나라였고, 금방 바뀌었다.

연극놀이와 인형이랑 동네 여행하기는 그것만으로 흡족한 시간이었다. 가게 현수막 앞에서, 담벼락에 놓여 있는 화분 아래서, 3월 초순 노란 봉오리의 산수유 옆에서 쉬고 있는 포일 인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도 나도 환해졌다. 보자기가 어떤 무엇으로도 가능해지는, 망토와 호주머니와 가방으로 바뀌는 연극놀이는 언제 어디서든 아이들을 무장해제시킨다.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를 연극으로 만들었던 것도 재미있었다. 몇 개의 장치만으로 방은 배가 되고, 아이들은 고양이와 강아지, 양과 돼지가 되었다. 그러나 역시 연극놀이는 연극놀이, 인형의 여행은 인형의 여행이었다.


책 만들기, 본격적인 작가 작업 과정에 딱 부러지는 확 드러나는 영향을 주지 못했던 예비 과정은 사실상 별로였을까? 음, 어떤 사람은 실패입니다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다. 그건 절대 반대다. 교육 과정에 실패란 있을 수 없다. 만약 교육을 실패라고 규정하는 건 결과 중심의 평가에서나 등장하는 판단이다. 요즘, 결과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어떤 사람은 없을 거라고 믿으면서.

로? 별로가 아니다. 다만 그 효과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아이들의 시간은 어른보다 훨씬 빠르다. 그 빠른 시간으로 금방 잊고, 금방 변한다. 잊고 변하는 동안 아이들의 시간은 몸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장딴지 근욕과 조작 가능한 소근육 발달, 튼튼한 폐활량은 물론, 뇌 속의 어딘가에 심장의 어딘가에 시간은 쌓인다.

예비 과정이라고 이름 붙였던 시간도 그중 하나였다. 예비 과정 동안 상상력이 얼마나 커졌는지, 나의 나라를 만드는 동안 '나'라는 자의식이 얼마나 단단해졌는지, 재료에 관한 과감한 사용이 가능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결과를 측정하는 전문적인 방법이 있다면 한 번 사용해보고 싶을 정도로 나도 궁금하다.

그렇다면 어떤 자신감으로 별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이들이 예비 과정을 거치고 난 후 책을 빨리 만들자고 아우성을 쳤다는 사실.

네 시간 동안 나랑 더 친해졌다는 사실.


무엇보다


내가 아이들이랑 하고 싶었던 걸 할 수 있었다는 점. 교사든 매니저이든 어린이와 함께 하는 어른이 하고 싶은 걸 할 기회는 짐작보다 적다. 정말 적다. 얼마나 좋은가. 작은 인형이랑 여행을 떠날 수 있다니, 아무것도 아닌 박스로 열 개가 넘는 다른 나라를 마들 수 있다니, 언제 아이들이랑 맘껏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언제 아이들이랑 맘껏 검정 바탕을 죽죽 그을 수 있을까.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제는 본격적인 작가 과정. 아, 매니저인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은 예비 과정이 마지막이었음을, 그때는 완전히 실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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