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기 교안을 소개하면서
저는 시를 잘 쓰지 못합니다. 열여섯이었을 때, 고3이었을 때, 스무 살과 서른 사이에 썼던 시를 지금 보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시를 읽기는 합니다. 좋아하는 시인도 있고, 자주 들춰보는 시집도 몇 권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를 그리 자주 읽지는 않았습니다. 어린이 곁에 있는 사람으로서, 어린이에게 글쓰기를 권하는 사람으로서, 조금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어린이들을 시인이라 부르고, 함께 시를 씁니다.
자랑하고 싶어요. 제가 만난 어린이들은 시 쓰기를 좋아합니다. “시 쓰기요? 쉬워요!”라고 말합니다. 물론, 어린이들이 쓴 시가 세상의 기준으로 보기에 ‘잘 쓴 시’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산문처럼 쭉 쓰고는 시라고 생각하고, 운율이나 리듬은 찾아보기 어렵고, 맞춤법도 자주 틀립니다. 그래도 저는 만족합니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쓴 시를 발표하겠다고 의기양양하게 손을 들고, 자신의 말을 내보일 때, 정말 많이, 많이 행복합니다.
어린이들과 저 사이에 ‘시’를 두게 된 데는 조금 오래된 사연이 있습니다. 십 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우연히, 글자를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비문해' 어린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는데도 글을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1주일에 한 번, 운이 좋으면 두 번, 아이들을 만나면서 이것저것 했습니다. 가장 간단하고 아름다운 글을 함께 읽고 싶어서, 유아용 동시를 꺼냈습니다. 어린이들은 시를 좋아했고, 가끔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 시에는 ‘사랑해요’라는 말이 자주 나왔습니다.
어린이 복지 현장에는 늘 다 다른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글을 잘 읽고,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는 어린이.
논리적인 어린이.
생각은 많지만,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말 하기가 두려운 어린이.
한국말이 서툰 어린이.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어린이.
자기 생각을 좀처럼 갖지 못하는 어린이.
글쓰기를 무척 사랑하는 어린이.
그 사이에서 저는 늘 갈팡질팡하는 어른입니다. 그 갈팡질팡을 고백하고 싶지만, 그건 일단 나중에. 시 쓰기는 갈팡질팡 속에서 새로운 길을 내주었습니다.
<시 쫌 쓰는 어린이>는 교안이라기보다는, 활동 흐름을 따라가는 작은 기록입니다. 아직 진행 중인 활동이라, 차근차근 써보려 합니다.
박준 시인이 말했습니다.
“어떤 말이, 일상의 말 중 어떤 말이, 그 말은 따뜻할 수도, 차가울 수도 있지만, 그 말이 다가오면 시가 된다.”
어린이들이 시를 쓰며 주고받은 말들, 그 말들이 어쩌면 우리의 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