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동네'일까?

<동네 쫌 아는 어린이> 교안을 소개하면서 1

by 열무샘

<동네 쫌 아는 어린이>의 '동네'는

내가 자주 다니고, 눈에 익은 곳들을 말해요.

친숙한 골목, 아는 얼굴, 자주 가는 가게처럼

몸이 기억하고 마음이 반응하는 거리예요.

행정구역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반경이에요.



어린이들과 동네를 배경으로, 동네를 주제로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또 동네야?"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저도 습관처럼 반복하는 건 아닐까, 때론 의심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동네를 강조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싶습니다.


1. 왜 동네일까?

우리는 온몸으로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며 살아갑니다. 감각하고, 경험하고, 기억하면서 삶의 의미를 쌓아갑니다. 가치, 지식, 정보, 지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이 살아감에서 얻어지고 차곡차곡 쌓입니다.어린이는 특히 그러합니다. 동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동네 학교에 가고, 동네 친구들과 놀고, 동네 어른들을 만나고, 동네는 어린이가 살아가는 가장 가깝고 중요한 장소입니다.


일곱 살 무렵이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친구네 세탁소가 있었고, 그 세탁소에서 위로 올라가면 구멍가게가 있었습니다. 겁 많은 아이였을까, 저는 세탁소에서 구멍가게까지 올라가는 게 어려웠습니다. 저기를 올라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가지를 못 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친구 두 명이 저기 가게에 가자고 하는 걸, 못 가겠다는 말을 못해서 따라나섰습니다. 올라가는 그 길이 가파른 오르막길처럼 느껴졌습니다.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나만 왜 이럴까하는 부끄러움과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얼마나 올라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드디어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친구들과 같이 가게에 들어가 뭔가 과자를 샀던 것 같고, 가게를 나온 다음 밑을 내려보았습니다. 친구네 세탁소가 보였습니다.


내가 해냈구나, 나도 할 수 있구나


50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내려다보았던 풍경을 기억하고, 그 꽉 찬 느낌을, 그때 그 감정을 기억합니다. 시간이 한 참 지난 뒤, 그 동네에 갔습니다. 우리 집도, 세탁소도 다 사라졌지만 길은 여전했습니다. 세탁소 자리에서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구멍가게는 당연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길, 그 가팔랐던 길은, 도착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던 것 같은 그 길은 사실 100미터도 되지 않는, 평범한 골목이었습니다.


제가 만나는 어린이들도 그때 저 같을 것 같아요. 그래서 동네는 어린이의 성장을 돕는, 놀이와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2. 그럼에도 왜 동네일까?

물론 어린이는 예술, 자연, 가정, 여행, 가상공간에서도 감각을 깨우고 경험을 쌓아갑니다. 어쩌면 동네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자극과 전환의 계기가 됩니다. 그럼에도 동네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가정, 맞아요. 가정은 중요합니다. 어린이 복지 현장에서 마주치는 어려움 중 하나도 바로 '가정'입니다. 때로는 어린이의 모든 것을, 성장의 가장 중요한 열쇠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복지 현장의 어른들에게, 큰 무력감을 안겨줍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므로, 할 수 있는 걸 찾는 게 '복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동네'입니다. 복지 현장 역시 아이들이 살아가는 동네의 한 부분입니다. 혼자서 며칠을 보내야 하는, 겁이 나지만 혼자 잠을 자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먹어야 하는 어린이가 있으니까, 동네는 중요합니다.


광활한 자연, 숭고한 예술, 낯선 여행, 새로운 가상공간의 경험이 주는 영향이 중요한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영향은 일상적이지도, 가깝지도 않습니다. 문턱이 꽤 높아서,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네는 다릅니다. 일상이고, 생활이고, 반복을 통해서 근육을 만들어 주는, 많은 어린이가 들어올 수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스스로 좀 모자라 보여도

동네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혼자라도 다짐하면, 진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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