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깔깔마녀

민희와 은희 이야기

by 열무샘

이른 아침이다. 전화기 진동소리를 듣고 발신인을 확인했더니, 민희와 은희다. 일요일 아침에 무슨 일이지, 아직 교회 갈 시간은 아닌가, 나쁜 일은 아니겠지,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든다. 햇볕은 따뜻하지만 공기는 쌀쌀한 11월 아침이다.


민희와 은희는 쌍둥이 자매다. 바가지 머리가 똑 같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동그란 얼굴도 똑 같다. 자세히 보면 민희는 민희고, 은희는 은희다. 민희는 멜빵 바지를 좋아하고 은희는 치마 입는 걸 좋아한다. 민희 배가 은희 배보다 엄지손톱만큼 더 나왔다. 은희는 잘 삐치고, 민희는 몸싸움을 잘한다. 내가 민희와 은희를 처음 만난 건 민희와 은희가 2학년 때다. 한글이 서툰 아이들을 모아 놓은 방과 후 한글교실, 나는 선생님이었고 민희와 은희는 학생이었다.

담당 교사가 아이들이 한글을 많이 모른다고 했지만, 모르면 얼마나 모를까 싶었다. 책을 읽어주고, 놀다 보면 금방 시를 쓰고 독후 감상문도 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이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 찬 남자 아이, 유난히 통통한 여자 아이, 하얀 얼굴에 잘 웃는 남자 아이, 똑 같이 생긴 쌍둥이……. 아이들은 긴장한 얼굴로 멀뚱멀뚱 날 쳐다보았다. 아이들에게 내 이름을 알려주겠다며, 칠판에 글자를 썼다.


깔깔마녀


“마녀?”, “까?” 몇 마디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예상 못한 반응이었다. 보통은 칠판에다 깔깔마녀를 쓰자마자 교실이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해진다. 설마…….

“얘들아 나는 깔깔마녀야.”

그제야 아이들이 마구 웃었다. 까까마녀가 더 좋아요, 진짜 마녀 맞아요, 이름이 왜 그래요, 마녀랑 닮았어요, 마법 한 번 부려보세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는데도, 같이 웃을 수가 없었다. 짐작 보다 더 심각한 상황, ‘깔깔마녀’를 읽을 줄 아는 아이가 한 명도 없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이들은 2학년이었다.

노래를 부르자며 칠판에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가사를 썼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한자 한자 짚어주었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가는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손뼉을 치며 “꽃은 참 예쁘다.”를 부르자, 아이들이 따라 불렀다. 두어 번 되풀이했더니, 능숙하게 노래를 불렀다. “이 꽃 저 꽃, 저 꽃 이 꽃”를 부를 때쯤 민희와 은희가 벌떡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손으로 하트를 만들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다른 아이들도 민희와 은희를 따라 했다. 쌍둥이 민희와 은희가 춤을 추고, 아이들은 방긋 방긋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나는 기분이 좋았져서, 내 노래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생각도 않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한글 교실 아이들을 만난 후 한 달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글자를 얼마나 못 읽고, 못 쓰는지 확인하고 놀라는 게 다였다. 무조건 양보만 하는 지영이는 받침 글자까지 쓰는가 싶었는데, 사실은 ‘사’와 ‘자’를 구별하지 못했다. 현미, 은수, 기찬이, 동희도 조금씩 차이가 나기는 했지만 한 문장을, 한 줄을 읽기 힘들어했다.

그렇게 나는 학교 안 비문해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가 한글 수업을 한다고 말하면, “요즘도 한글을 모르는 얘들이 있어요?”라며 눈이 동그래진다. 조금 안다는 사람은 “다문화 아이들이죠?”라고 묻는다. 아니라고, 학교에는 글자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꽤 많다고, 담임교사가 해결하기란 어렵다고,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교육 시장에서 한글 교육을 전담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긴 설명을 한다. 아니다. 지금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예, 많답니다. 점점 숫자가 늘어나요.”라고 짧게 대답한다.

쉽게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교육과 가난이, 가정과 학교가 얽히고설켜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풀 수는 있는 건지 어려운 문제다. 그러니까 설명이나 설득 같은 건 하기 싫어졌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조바심이, 안달이 났다.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일곱 명의 아이들과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 실력이 쑥쑥 늘어날 거라고 기대하는 게 무리였다. 그런데도 자꾸 자꾸 아이들이 책을 읽고, 일기를 쓸 수 있어야 한다며 혼자 짜증을 냈다. 아이들을 다그치고 야단치기도 했다. 어떤 날은 책상에 머리를 박고 이런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징징거렸다.

한해, 두해,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는 계속 변했다. 여전히 조바심이 불쑥불쑥 올라오지만, 아이들을 기다리려고 노력한다. 받아쓰기 보다는 노래를 부르는 게 한글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걸 확인했고, 어떤 아이는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끔씩 내가 어쩌다 한글 선생님이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도서관에서 글자를 하나도 모르던 5학년 아이를 만났기 때문일까, 학교 선생님의 하소연을 우연히 들어서였을까.

난 읽고 쓰는 게 좋은 사람이다. 웹툰을 보며 깔깔거리고, 신문을 읽으며 펑펑 울다가, 누군가의 소설을 읽으며 위로받는다. 한 문장, 한 문단을 완성할 때 다가오는 충만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끼고,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아이들도,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도 나처럼 글과 이야기를 좋아하기를, 시를 쓰고 이건 정말 근사하다며 환호성을 지르기를, 우리가 함께 좋아하는 책을 읽고 수다를 떨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한글 선생님이 된 이유도, 여전히 한 글 선생님인 이유도 그래서다.




민희와 은희가 전화를 했던 아침은 한글 선생님이 된 지 햇수로 2년째 되는 해, 민희와 은희가 3학년이 되던 해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저 편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깔깔 마녀, 뭐해요?”

“그냥 누워 있었지. 그런데 민희야? 은희야?”

“난 민희에요. 은희 바꿔줄게요.”

은희가 전화를 받았다.

“깔깔마녀, 깔깔마녀가 준 수첩을 찾았거든요.”

2학년 겨울방학 때 아이들과 짧은 편지 쓰기를 했다. 수첩에 내가 ‘오늘 아침에 뭐 먹었니?’ 같은 짧은 글을 쓰면 아이들이 답장을 섰다. 용케 자기 힘으로 답장을 쓰는 아이도 있었지만, 내가 칠판에 써 주거나 대신 써 주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내가 읽어볼게요.”

“정말? 우리 은희 공부 잘하는구나.”

민희와 은희가 까르르 웃었다.

“은희야, 왜 빨간 색 옷을 입었어? 예쁘니까요. 저녁에 일찍 잘 거니? 싫어요.”

은희는 더듬더듬 편지를 읽었다. 수첩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전화기에 귀를 대고 은희가 읽어주는 문장을 들었다.

“은희야, 씩씩하게 지내. 깔깔마녀가. 와! 끝이에요.”

옆에서 민희가 “나도! 나도!” 외치더니 전화기를 뺏고 수다를 떨었다. 오늘은 교회에 못 갔다, 할머니가 아프다, 보고 싶다, 오빠가 때렸다, 민희는 할 말이 많았다.

어쩐지 방 안 공기가 따뜻해져서, 내 심장도 따끈따끈해진 것 같았다.

“민희야, 깔깔마녀한테 편지 또 써줄 수 있어?”

내가 말했다.

“예! 그럴게요.”

민희가 대답했다. 옆에서 은희가 같이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민희와 은희는 5학년이다. 편지 써준다고 해놓고는 소식이 없다. 민희와 은희답게 잊어먹었나 보다.

가끔 아니 종종 아이들은 내게 편지를 건넨다. 맞춤법은 틀리고, 글자 모양도 엉망이다.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깔깔마녀 사랑해요. 깔깔마녀 예뻐요.” 안 예쁜 나를 예쁘다고 해주니 좋기는 한데, 가끔 다른 내용을 받고 싶어 질 때가 있다. 순전히 내 욕심이다. 성급한 욕심. 그럴 때마다 이른 아침 내게 편지를 읽어주던 민희와 은희를 떠올린다.

아이들에게 알려준다. 편지를 쓸 때는 처음에 인사를 하는 거야. 아이들이 편지를 건넨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근사한 문장이 쓰인 편지를.


안녕! 깔깔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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