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백점, 혹은 모두 다 빵점

by 열무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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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조건 백점 받아쓰기’ 시험을 본다. 틀렸다는 표시는 하나도 없고 빨간 동그라미만 있는 무조건 백점! 우리 아이들은 받아쓰기 시험을 볼 때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다 100점을 받는다.

한글을 모르던 아이가 백점을 맞다니, 그것도 모든 아이들이, 아이들이 정말 열심히 공부했나 보네, 멋진 이야기야! 라고 생각하는 건……. 음, 그건 좀 곤란하다. ‘무조건 백점 받아쓰기’는 다른 받아쓰기와 다르다.

‘무조건 백점 받아쓰기’의 규칙을 알려주겠다. 첫째, 다른 친구 걸 봐도 된다. 둘째, 다른 친구에게 보여줘도 된다. 셋째, 깔깔마녀가 칠판에 쓴 글자를 본다. 넷째, 칠판 글자와 다르면 얼른 고친다.

그건 받아쓰기 시험이 아닌데, 아이들에게 컨닝을 알려주는 거 아냐, 그래서 아이들 한글 실력이 늘어날까. 당신은 어째서 그런 이상한 받아쓰기 시험을 보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묻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신이 어느 쪽이든 나는 우리의 ‘무조건 백점 받아쓰기’를 자세히 이야기 하고 싶다. 자존감, 평가, 훈련, 두려움과 배움, 협동, 경계, 현재와 미래, 교육 정책……. 아마 나는 온갖 단어를 사용하며 장황하게 설명을 할 것이다. 그럼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 말에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일까,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 아니냐고 반문할까, 혹은 교육 문제는 골치 아프다며 눈살을 찌푸릴까.

결국 나는 내가 뱉은 말 때문에 스스로 피곤해 하며 입을 꼭 다물 것 같다. 처음부터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일, 이, 삼, 사, 오를 세는 순간 수증기가 되어 밖으로 뛰쳐나올 주전자 안 물 알갱이처럼, 그렇게 말들이 입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도 가만히 있어야한다.




“얘들아! 받아쓰기 시험 칠거야.”

교실 여기저기서 에이, 휴우, 싫어요 소리가 들린다.

“그냥 받아쓰기가 아니라 무조건 백점 받아쓰기야.”

“그게 뭐예요?”

“모두 다 백점을 받는 받아쓰기지.”

아이들 눈이 동그래진다. “진짜에요?”, “정말 봐도 돼요?” 내가 고개를 끄덕여도 믿기지 않은 눈치다. 규칙을 설명한다. 역시 아이들은 규칙 외우기가 귀찮은 모양이다. 규칙을 열 번 설명해도 소용없다. 당장 받아쓰기 시험을 보는 게 훨씬 낫다.

“일번, 타조.”

몇 명은 글자를 쓰고 몇 명은 가만히 있다.

“모르는 사람은 친구 꺼 보기.”

먼저 글자를 쓴 아이 중 하나가 싫다고 도리질을 친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자기 혼자 글자를 썼는데, 그건 자기 글잔데, 자랑스럽게 빨간 동그라미를 받을 수 있는데 친구한테 보여주라니 얼마나 싫을까.

“친구 꺼 안 보이는 사람은 깔깔마녀가 꺼 보자. 자, 타에 조!”

아이들 모두 공책에 ‘타조’ 글자를 쓴다.

“이번, 토마토.”

토마토를 쓴 아이, 친구 토마토를 베끼는 아이, 자기 스케치북을 가린 아이, 칠판을 보는 아이, 한참이 지난 후에야 스케치북에 토마토가 가득하다.

삼번 투투에서 십 번 피자까지, 아이들 공책에 열 개의 글자가 적혀 있다. 공책에 글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친구가 볼까봐 자기 공책을 가리던 아이도 긴장을 푼다. 친구가 보든지 말든지 그건 상관없어. 난 혼자 글자를 쓴다고!

나는 아이들 공책에 동그라미를 그려주고, 크게 100점이라고 쓴다. 아이들이 떠든다. 먼저 자기 점수를 매겨달라고, 100점을 한 번 더 써주면 안되냐고, 100점을 다섯 개까지 써 줄 수 있다고 하니까 모두 100점 다섯 개를 원한다.

공책에 좍좍 그어진 가위 표시를 동그라미 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1 하나에, 동그란 0이 두 개나 붙은 100! 이토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숫자라니. 이 세상에 100점을 받고 기분 나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혹시 계시다면 죄송!




휴우.

꿈속에서 시험을 봤다. 졸업 학기 기말고사, A학점을 못 받으면 졸업을 못하는데, 답안지에 답이 제대로 안 적혔다. 쓰고 또 쓰는데 맞춤법은 틀리고, 지우개로 지우다 보니 시험지가 너덜너덜해졌다. ‘나 졸업해야 해요.’하고 절규를 했지만, 날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꿈속에서 ‘이건 꿈이야.’라고 중얼거리며 겨우 깨어났다.

대학 시험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꿈속에서 나는 고3. 분명히 총정리를 했는데, 요약 공책이 텅텅 비었다. 벌벌 떨면서 시험장 안엔 들어갔다. 이미 나만 빼고 모두 다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다. 첫 번째 문제를 푸는데, 시간이 다 됐다고 누군가 소리쳤다. 꿈이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나의 생애 첫 시험은 받아쓰기였다. 몇 점을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짝이 내 시험지를 보고 엄청 웃어댔다. 점수 때문이 아니라, 이름 때문이다.

‘신거은.’

엄마가 이름은 알아야 한다며 알려 준 내 이름 세 글자, 외운다고 외웠는데 가운데 ‘지’를 ‘거’로 그리고 말았다. 한 동안 내 이름은 ‘신지은’이 아닌 ‘신거은’이었다. 이름도 제대로 못 썼던 아이가 한글 선생님이 되다니. 그 때 날 놀렸던 짝을 만나면 꼭 내가 한글 선생님이라고 말해야겠다.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짝이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무조건 백점 받아쓰기’를 좋아한다. 동그라미에, 백점 다섯 개와 ‘참 잘 했어요.’ 도장까지 찍어주면 더 즐거워한다. 한글 선생님이 된 지 만 이 년이 되던 늦가을, 그날도 여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받아쓰기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미영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미영이는 다문화 가정 아이다. 엄마가 베트남 분이라고 하는데, 그냥 보면 깜찍하고 까무잡잡한 여자 아이일 뿐이다.

나랑 미영이는 소소하게 부딪혔다. 미영이가 말끝마다 “저는요. 다문화라서요.”라고 하는 게 싫어서, 잔소리를 했다. 창피하다. 아홉 살 아이를 앞에 두고 다문화가 어쩌고, 엄마 나라와 친구가 어쩌고 했으니 부끄럽다. 내 입은 가끔가다 ‘야, 그만해.’라는 머릿속 명령을 듣지 않고 혼자 떠든다. 한 번은 미영이가 자기는 다문화기 때문에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하는데, 한글 교실에서만 과자 선물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난 그만 짜증이 나서 평소보다 열 배는 더 길게 잔소리를 해댔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우리나라 다문화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씩씩거렸다. 왜 나는 항상 타인의 마음에 닿기 전에, 먼저 판단하고 먼저 결정하는 걸까. 창피 곱하기 창피, 창피 곱하기 열 번 곱하기다.

손을 든 미영이가 말했다.

“깔깔마녀, 무조건 백점 받아쓰기 지루해요. 다른 거해요.”

맞다. 아무리 100점이래도 계속 100점을 받으면 지루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100점은 좋은 건데.

다른 아이들이 맞장구를 쳤다. 마음속으로 100점 받기가 얼마나 힘든데, 진짜 받아쓰기 시험 한 번 쳐 볼래 심술이 났다.

“그럼 어떻게 할까? 난 잘 모르겠는데.”

아이들이 시험을 안 보는 게 제일 좋겠다고, 공부하지 말자고 아우성을 쳤다. 맞다. 100점 보다 시험을 안 보는 게 더 좋다는 걸 까먹었다.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한다.

“얘들아. 그럼 우리 무조건 빵점 받아쓰기 할까?”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하다니 나 참 기특하다. 아이들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미영이가 제일 먼저 “그래요, 그래요.”라고 외치니까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무조건 빵점 받아쓰기’ 시험도 ‘무조건 백점 받아쓰기’와 같다. 내가 단어를 부르면 아이들이 쓴다. 자기 스스로 써도 되고 다른 아이 걸 봐도 되고, 마지막에는 내가 칠판에 쓴 정답을 봐야 한다. 하지만 절대, 절대 정답을 쓰면 안 된다. 반드시 틀린 글자를 써야 하고, 무조건 0점을 받아야 한다.

“일번, 바보.”

아이들이 킥킥 거리며 ‘방보’, ‘항보’, ‘박복’이라고 섰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겨우 참고 “이번, 옥수수.”를 불렀다.

‘옥숭숭’ ‘옥주주’. ‘옹수수’.

삼번, 수건, 사번 녹색.……. 글자를 다 부를 때까지 아이들은 계속 웃어댔다. 다른 친구에게 자기 글자를 보여주기 싫다는 아이도 없었다.

돌아다니며 점수를 매겼다. 가위표가 열 개, 점수는 모두 0점!

미영이가 또 손을 번쩍 들었다.

“오늘은 내가 참 잘했어요라고 쓸래요.”

“그래? 그것도 엉터리로 쓸 거야.”

“아뇨. 바로 쓸 거예요.”

미영이가 받아쓰기 공책에 글자를 섰다.

‘잠 잘 해섰서요.’

제대로 바로 쓴 걸까? 일부러 엉터리로 쓴 걸까?

다른 아이들도 ‘참 잘했어요.’를 섰다. 맞게 쓴 아이도, 틀리게 쓴 아이도 있다. 어떻게 썼든 ‘참 잘했어요.’는 0점 옆에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잡았다. 내가 그 때까지 만나 ‘참 잘 했어요.’ 중 가장 유쾌하고 통쾌한 ‘참 잘했어요.’였다.


61447_417088988351887_872348396_n.jpg 누군가 자기 이름은 백점 마녀라고 했다. 아이들은 백점을 좋아한다.


우리는 ‘무조건 백점 받아쓰기’를 본다. 미영이처럼 엄마가 베트남에서 온 성준이는 칠판을 보고 ‘코끼리’라고 써놓고, 자기가 정답을 썼다며 자랑을 한다. 강희는 친구에게 글자를 보여주기 싫다며 두 팔로 공책을 가린다. 하지만 강희가 친구 공책에 있는 100점 표시를 보고 불만을 터뜨린 적은 한 번도 없다. 자기 걸 보여주는 게 싫은 건 싫은 거고, 친구가 100점을 받는 건 100점을 받는 거다.


우리는 무조건 100점을 받는다. 무조건 0점을 받기도 하지만, 그건 아주 ‘간혹’이다. 0점 보다는 100이 보기에 더 좋으니까. 하지만 무조건 0점이 싫지 않다. 누구는 100점을 받고 누구는 0점을 받는 것 보다 모두 다 0점을 받는 게 더 근사하다.


수업이 끝난 후 교실 밖을 나가면, 우리가 맞닥뜨리는 세계는 무조건 백점의 세상이 아니다. 혼자 힘으로 버텨야 한다며 악다구니를 써야 하는 세상, 호의와 위로를 기대하기 힘든 세상, 그래도 여기서 우리는 무조건 백점을 받거나, 혹은 모두 다 빵점을 받을 수 있다. 나와 당신 그리고 작은 ‘우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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