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거의 대부분 불안과 긴장을 뿜어내는 표정을 하고 있다. a가 나한테 높은 옥타브로 말한다. “그러니까 교사들이 다 치워.” 팽팽한 목소리와 팽팽한 얼굴, 나는 순간 화가 났다. ‘니가 뭔데 나한테 그래.’였다. 자존심이 상했을까? a 옆에 있는 저학년 아이들 보기가 부끄러웠을까? 일종의 수치감이고, 지기 싪다는 승부욕 그런 감정이었을까? 나 역시 팽팽한 목소리와 팽팽한 얼굴로 화를 냈다. a가 갑자기 울상을 지었다. 이제까지 교사인 나를 이겨보리라는 표정이 순간 사라지고, 실망과 당혹의 얼굴이었다. “깔마는 너무해. 농담한 것 가지고 이렇게 화내야 해.” 며칠 공들인 관계의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겨우 말은 통하는구나 했는데,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그 날 저녁 나는 힘들게, 겨우, a와 통화를 했다. “미안해. 내가 농담과 진담을 구분 못해.”
사실 나는 농담과 진담을 구분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딴생각을 하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때는 농담과 진담을 혼돈하지만, 대체로 보통의 수준으로 농담과 진담을 구분한다. 그런데 아이들과 있을 때, 특히 몇몇 아이와 있을 때는 그 구분 능력이 떨어지곤 한다. a랑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a는 주위의 공기를 바꾸는 아이 중 하나다. 어떤 아이는 a가 무섭다고 하고, 어떤 아이는 a에게 모욕감을 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굴기도 한다. a는 교사를 예민하게 만든다. a가 어떤 감정 상태에 놓여 있느냐가 방과후 하루를 바꾸기도 하니까.
교사인 우리는 주로 a가 왜 그럴까에 초점을 맞추었다. 매번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지만, 또 이야기는 a는 왜 그럴까였다. 나는 이런 식의 고민과 회의가 답답했다. 답답했지만, 명쾌한 정리를 하지 못하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백. 나는 a가 등장하면 그 자리를 떠나곤 했다. 변명이 아니라 이유가 있었다. 감당 못하니까, 감당 못하고 화를 내면, 좋은 게 하나도 없으니까.
a의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여 화를 냈던, 늦은 밤 사과를 해야 했던 사건은, 신기하게도 a에 관한 인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전환이 아니라 계기였다. 아주 작은 계기, 내 머릿속에서 a를 다르게 보자라는 메시지를 슬쩍 던져 놓았다. a의 목소리와 표정으로 판단하지 말자. a의 표정은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다. 상황과 맥락에서 a의 표정을 이해하자라고.
<감정은 어떻게 단련되는가>에 등장하는 사진(책 속의 사진을 그대로 옮기지 못했다. 이 사진은 내가 구글을 검색한 사진)이다. 이 사람은 지금 어떤 감정 상태일까? 나는 공포라고 짐작했다. 울부짖음, 비명, 충격을 읽었고 그 총체는 공포가 아닐까 하고.
같은 사진의 전체다. 전체를 보니 내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겠다 싶다. 테니스 경기 중 결정적 실수를 한 뒤의 얼굴이 아닐까 하고. 나는 이미 얼굴 표정을 클로즈업한 사진에서 ‘공포’를 읽었기 때문에, 그 연장선 속에서 이 사람의 표정을 부정적인 감정과 결부시켰다. 놀랍게도 사진은 반대였다. 환희의 표정이었다.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 사진의 주인공인 세레나 윌리엄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이런 표정을 지었다. 만약 세레나 윌리엄스와 그녀의 우승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첫 사진부터 공포가 아닌 환희를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 대한 어떤 사전 정보도 없었다. 다시 첫 사진을 본다. 이제 표정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a의 표정, a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한 가지 짚어야 할 부분은 있다. a의 진심이 어떻든 a는 가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더 배워야 한다. a가 농담을 했는데, a의 주위가 농담을 진담으로 받는다면, 그래서 번번이 문제가 생긴다면, a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a는 배워야 한다.(아이의 욕망과 자연스러운 감정, 사회화와 관련해서 모든 어른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나는 아이는 배워야 하고, 어른은 배움을 안내해야 한다는 쪽이다.) 하지만 배우기 전에, 배우기 위해서, 배우는 중에, 배우면서 꼭 필요한 게 있다. ‘존중’이다. 존중은 한 사람의 의견, 합리적 사고, 생각, 판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a의 감정 표현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a는 농담도 진담처럼 팽팽하게 전하고 있고, 그런 표정과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a의 표정과 목소리에 매이지 않아야 한다. a가 어떤 메시지를,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 격하고 흥분에 찬 표정과 목소리를 통과해서.
요즘 나는 a와 거리는 많이 좁혀졌다. 순간, 순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요령이 생겼다고나 할까. 하지만 여전히 a는 불편함을 선사한다. 어쩔 수 없다. 이건 내 일이니까. 표정을 통과하는 일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