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해의 마지막. 백석.
진절머리가 나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줄기차게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그는 또 어떤가. 상냥함, 다정함, 포근함이 다른 이를 옥죄고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는 걸까. 의도는 아니겠지.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쯤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지 싶었다. 아이를 때리는 부모, 아이의 폭력을 눈감고 싶어 하는 부모. 모르는 사람이라서, 일면식도 없어서 다행인 사람도 있다. 자식을 떠나보내고 단식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사람들 옆에서 자장면과 피자를 먹어 치우는 이들. 유아성폭력과 인권말살을 놀이로 즐겼던 이들. 각종 다양한 폭력과 비리를 장전하고 있던 고등학교 체육선생, 아이들을 발로 짓밟던 고3 담임. 그리고 내게도 평생 보고 싶지 않은 친인척이 있다.
알고 싶었다. 도대체 사람은 뭐고, 사람은 왜 이러는 걸까 하고.
며칠 전에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다 눈이 뜨거워졌다.
“모자 사이래도 좋을 두 연놈이 벌거벗고 붙어 있었다두만.”
“늙은 서방은 어떻게 하고?”
“오두막에는 둘뿐이었다지.”
한 영감이 말했다.
“죽었겠지.”
“죽였겠지.”
다른 영감이 오른손으로 목 자르는 시늉을 했다.
“손으로 죽였을까, 칼로 죽였을까?”
“홀딱 벗겨놓고는 물을 끼얹어 내쫓아 동태를 만들었겠지.‘
“옷 한 벌도 못 건지면, 참으로 공수래공수거네.”
“기차 지나갈 때 레일 위에 던져 토막 낸 뒤 근처에 파묵었을거야.”
“겨울 승냥이만 포식했겠네.”
부정하고 싶은, 끔찍하고, 보고 듣는 이로 하여금 오욕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철도 기관사가 달리는 기차를 운전하며 던져 준 생필품으로 살아가던 부부의 오두막이 눈사태로 얼어붙었다. 해방이 되고, 미군의 네이팜탄이 퍼붓는 동안에도 오두막을 지키던 부부였다. 철도 부대원들이 얼음을 깨고 오두막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을 기다리던 장면은 예상과 달랐다.
소설 속 백석이 저도 모르게 물었다.
“왜 그랬답니까?”
<일곱 해의 마지막>은 시인 백석의 이야기다. 아름다운 시를 썼던, 시뿐 아니라 외모와 연애 사건으로 서정을 선사하는 시인 백석은 딱 월북 전까지 백석이다. 책은 백석이 월북한 이후 알려지지 않은, 문학적으로 숙청되었던 몇 년을 상상으로 그리고 있다. 읽는 것만으로도 구토가 나는 몇 년이었다. 소설 속 백석은 붉은 깃발을 아프리카 기린에게 매달았던 이유로, 사상 검증을 당한다. 왜 이국의 기린이냐, 우리 민족 가까이에 있는 동물이 아니라, 주체적인 우리의 생활, 우리의 감정은 없냐고 추궁받는다. 소설가는 자신이 민족 반역자임을 인정할 때까지 질문을 받아야 하고, 시인은 시를 쓰지 않기 때문에, 또는 시를 써서 반동이 된다. 어른은 사형을 당하고, 젊은이는 자살한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백석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질문한다. 도대체 그 인간들은 왜 그랬냐고?
내가 왈칵했던 부분은 바로 백석의 질문을 받은, 늙은 영감의 답변이었다.
영감들이 혀를 찼다.
“이 이바이, 인생 헛살았네. ‘왜’라는 건 소학교에서나 모르는 게 있을 때 손들고 선생님한테 묻는 거지. 인간사에다 대고 왜가 어딨어?”
아무래도 나는 헛살았나 보다. 오십이 넘었으면 철이 들어야 하는데, 아직도 왜라고 묻다니. 묻기 싫어서 남들은 진저리 치는 하드코어 장르물을 보곤 했다. 스트레스를 넘어 절망을 느끼기 시작한 전조가 보이면, 2014년에도 그랬다. 인육을 먹고, 이유 없이 살해를 하고, 타인의 몸을 난도질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랬다. 사람은 이런 존재야, 동물보다 못한 존재, 폭력의 끝장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 선을 위한 투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인류를 학살할 수도 있는 존재가 인간이지 했다. 그렇게 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옆에 존재하는 인간의 일에 관해서 “왜”를 붙였다. 그래서 세상은, 나는 일말의 기대도 없는 걸까?
김연수는 나와 동년배다. 소설가가 작품을 내놓는 시기, 나도 거의 그런 감정과 생각에 잠겨 있곤 했다. 이번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도 비슷했다.
발가벗고 붙어 있던 남녀는 연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살뜰한 모자 관계를 맺고 있었고, 얼어 죽지 않으려고 서로의 육체를 의지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젊은 중국 남자는 1950년 미군과 중국군의 지난하고 끔찍했던 전투 한가운데서 불렀던 봄의 노래를 읊조린다. 중국 남자의 노래를 함께 부른 백석은 그 오지 산골에서 혼자 사랑하고 혼자 몰두했던 자신만의 세계를 살아간다. 아이들의 시를 읽고,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순한 새끼 염소가 태어나는 순간을 함께 하고, 또 아이들의 시를 읽는다.
해를 삼켰다가 뜨거워 뱉어버리고, 달을 삼켰다가 차가워 뱉어버리는 전설 속의 개.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홀로 우주로 나간 개. 해와 달. 가자미, 홍합, 꽁치, 해삼, 전복. 빵이 식을세라 모포에 감싼 채 당나귀에 싣고 온 카자프 여인들. 모닥불. 전복회, 창난젓, 은어젓, 명태골국, 가자미회국수, 해삼탕, 털게살 들어간 청포채무침. 미역오리와 굴껍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관평의 양.
백석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것들의 이름이다.
역시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 이유는 다른 이와 비슷한가 보다. 적나라하고, 생생하다 못해 과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연약하고 순한 아이들과 있으니 다행이야라고 혼자 안심을 한다.
그렇다고 “왜 그랬답니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알면서 또 묻고, 묻고 나서 답이 또 다름을 겪어내고 또 물어보겠지.
나는 혹은 당신은. “왜”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