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도그와 초코파이

'나쁜 기분'을 전염시키는 복지 이야기

by 열무샘

작은 것 보다 큰 게 좋다. 큰 걸 먹어야 배가 꽉 찬다. 단 맛 하나 보다 짠맛, 고소한 맛, 단 맛 다 들어 있는 게 맛있다. 무엇보다 씹는 맛으로 따지면 초코파이는 핫도그를 따라올 수 없다. 폭신폭신한 밀가루 빵, 어느새 등장하는 쫀득쫀득 소시지! 핫도그는 오래 동안 씹고 굴리고 삼킬 수 있다. 그에 비해 초코파이는 금방 입 안에서 사라지고 만다. 핫도그가 초코파이보다 맛있고 초코파이보다 핫도그를 먹고 싶은 건 당연한데, 그런데 ‘나쁜 기분’은 자꾸자꾸 옆으로 퍼져 나간다.


“성준이, 너무 예의가 없어요. 오늘은 초코파이 말고 핫도그를 달라고 그래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두 선생님이 이야기한 아이는 성준이뿐 아니다. 정해진 양보다 훨씬 많이 먹는 설영이 남매, 문을 열기도 전에 복지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세은이, 딸기 잼 말고 복숭아 잼을 발라달라고 요구하는 민재, 대상자도 아닌데 흘깃흘깃 아침 조식을 훔쳐보는 희진이.

학교에서 일 학년 이학년 아이들을 골라 매일 매일 조식을 준다. (준다는 표현 너무 싫어!) 어떤 날은 토스트와 잼, 어떤 날은 핫도그, 어떤 날은 우유와 초코파이. 한글 교실 아이들 중 몇 명이 아침 대상자다.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조식 시간에 이 아이가 어땠고, 저 아이가 어땠는지 듣게 된다. 들을 때마다 편치 않지만 입을 다물려고 노력한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난 1년 계약직 한글 강사니까 “조식 서비스 꼭 해야 해요?” 정도로 그친다. 왜 조식을 하는지 이유를 잘 아니까.

하지만, 하지만 기분이 나쁘다. 축 늘어진 양배추와 무만 둥둥 떠 있는 된장국을 먹을 때 느끼는 그런 ‘나쁜 기분’이 스멀스멀 머리를 돌아다닌다.

아이들이 아침 빵에 바를 잼을 고르는 게 왜 이상하지? 많이 먹을 수도 있잖아, 나는 아침이면 아무것도 먹기 싫다는 내 아들이 더 싫다. 냄새가 나니까, 씹는 소리가 나니까 먹성 좋은 희진이가 교실을 쳐다보았을 텐데 그건 너무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핫도그가 초코파이보다 훨씬 더 맛있는데, 나라도 초코파이 보다 핫도그를 먹고 싶을 텐데, 왜 성준이 보고 뭐라는 거지? 조식 서비스를 받는 아이들은 모두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하나.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선택할 자유도 없는 복지 서비스 따위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두 선생님

스무 명 가량의 아이들, 아이들의 아침을 준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예산을 올리고, 장을 보고, 레인지를 돌리고, 토스트기에 식빵을 넣고, 뒷정리에 일지까지 써야 한다. 교장 선생님은 처음에 밥을 지으라고 했다. 간단한 주먹밥 좋지 않냐고, 학부모들에게 반찬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모든 게 일이다. 혹 아이들에게 탈이라도 나면 누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가 복잡하다.

두 선생님은 아이들을 좋아하고 귀하게 여긴다. 하지만 매일 매일 아이들을 보는 건 마음과 다른 문제다. 흘리고, 떠들고, 재촉하고, 짜증내고. 가족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힘든 데 아이들은 스무 명이다.

두 선생님은 생각한다. 자신들이 정규 교사가 아니라서, 계약직 업무 직원이기 때문에 모든 걸 다 시킬 수 있다고 믿으시는 높은 분들이 계신다고. 틀린 생각이 아니다. 학교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임금, 휴가, 업무량, 호칭, 경어 사용, 온갖 영역에서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차별도 그런 차별이 없다.

조식 서비스를 실행하라는 명령부터 기분이 나빴는데, 아이들은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무난하게 아침을 먹고 교실에 돌아갔으면 싶은데, 도와주지 않는다. 요구 사항은 많고, 서로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한다.

초코파이와 우유를 준비하는 건 그나마 간단하다. 하지만 두 개씩 이분 동안 레인지를 돌리는 걸 열 번 반복해야 하는 핫도그는 힘들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핫도그를 구입하지만, 매일 매일 핫도그를 준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런데 성준이가 밥투정을 한다. ‘핫도그를 주세요’라고.

‘나쁜 기분’이 두 선생님 모두에게 동시에 폭발한다. 두 선생님은 ‘나쁜 기분’ 속에 숨어 있는 게 뭔지 안다. 핫도그 속 소시지는 맛있지만, ‘나쁜 기분’ 속 ‘차별받는 나’를 마주치는 건……. 마주친 사람만이 안다.


핫도그를 좋아하던 아이

복지실에서 초코파이와 핫도그를 먹었던 아이는 금방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겠지. 아니 꼭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그 전이라도 내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일, 필연일 수도 우연일 수도 있는 어떤 사건을 상상해 보자.

아주 못돼 먹은 애들이 있다. 친구한테 상처가 될 만한 말만 골라하고, 쑥덕쑥덕 뒷담화에 천재고, 오 대 일로 놀려 먹기까지 잘 하는 애들이다. 그런 애들 꼭 있다. 그런 애들 중 한 녀석이 아이에게 말한다. “너 아침마다 복지실에서 밥 얻어먹었지?” 말만 했으면 다행이다. 소문까지 낸다. 반격을 하려고 한 대 때렸더니, 다른 아이들까지 데리고 와서 “거지래요. 거지래요.”라고 놀린다.

아이가 겪을 ‘나쁜 기분’을 가늠할 수 없다. 나는. 다만 아이가 초코파이와 핫도그를 싫어할 것 같다고, 초코파이와 핫도그만 보면 화가 날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다.




이게 다 과시를 좋아하고 실적을 올리고 싶어 하는 교장 선생님 탓이라고 말해 버릴까, 그럼 속이 편할 것 같은데. 아니면 복지를 자선 기부쯤으로 이해하는 사회적 인식 탓이라고 정리할까, 정리해도 대안이 없으니 공허하긴 마찬가지다.

그럼 나는? 나도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그랬다. 왜 저렇게 짜증을 내는 거지, 왜 저렇게 간식을 달라고 하는 거지, 왜 저렇게 스케치북을 함부로 쓰는 거지. 무엇보다 가끔 내가 아주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누가 나 좀 알아줬으면 마음이 없는 게 아니다.


아침을 챙겨줄 보호자가 없어도, 한글을 몰라도, 복지 대상자여도 아이들은 비슷하다. 비정규직 노동자여도, 1년짜리 강사여도, 어쩌면 교장 선생님도, 더 높은 사람들도 다 비슷하다. 핫도그가 초코파이보다 맛있다. 아닌가? 그것도 당신 착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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