짹짹고래 상장은 어때?

준현이 이야기

by 열무샘

'짹짹고래' 짹고리샤

이샤이샤 망가 이샤이샤 망가

오 마이 짹짹 오 마이 짹짹


아이들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역시 ‘'짹짹고래'’다. 삼십칠 년 전에도 '짹짹고래'를 좋아하던 얘가 있었다. 바가지 머리에 얼굴이 새까만 얘였다. 걔는 툭하면 입을 내밀고, 입을 내밀면 볼도 같이 부풀어 올랐다. 그 얘는 '짹짹고래'를 부르면서도 입을 쭉 내밀었을까?


다섯 번이나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에게 ‘짹’ 글자가 몇 개 있냐고 찾아보라 했다. 아이들이 여섯 개다, 일곱 개다 신나게 대답한다. ‘샤’ 글자는 몇 개 있냐고 물으니 다섯 개라고 답한다. ‘ㅐ’ ‘ㅔ’ ‘ㅑ’ 글자는 참 어렵다. 발음도 비슷하고, 이게 뭔지 저게 뭔지 구별하기 힘들다. 그냥 외우는 편이 낫다. ‘'짹짹고래'’ 노래가 ‘ㅐ’ ‘ㅔ’ ‘ㅑ’를 외우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신이 났으니까 그걸로 됐다.

받아쓰기 차례다. 오늘은 무조건 777점을 받는 날이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자기네 나이가 여덟 살이니 888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럴 때 나는 아이들한테 지지 않는다. 행운의 777점이라고 고집을 피웠더니, 아이들이 그러자고 한다. 일 번은 ‘새’, 이번은 ‘해’, 삼 번은 ‘짹짹’, 아이들이 곧잘 정답을 쓴다. 못 쓰는 아이들은 칠판을 보면 되니까, 평화로운 받아쓰기 시간이다.

“사번도 쉬워. 귀!”

뭔가 이상하다.

앗, 실수를 했다. 귀는 쉬운 글자가 아니었다. 쓰는 아이 반, 못 쓰는 아이 반. 그런데 준현이 얼굴이 이상하다. 눈이 축 내려가고, 입 꼬리도 따라 내려갔다. 눈꺼풀이 실룩실룩한 게 금방이라도 울 기세다. 준현이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진다. 준현이는 일단 울었다 하면 아무 말도 안 하고, 고개를 푹 쑥인 채,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꼼짝을 안 한다.

“준현아, 왜 그래?”

역시 아무 말 안 한다.

“준현아, 말로 해야 알지. 말 안 하면 나는 몰라.”

준현이가 대답을 할 리가 없다.

3분도 안 지났는데도 힘이 든다. 나는 준현이 의자를 끌어서 칸막이 옆에 놔둔다. 의자 위에는 준현이가 무릎 사이로 고개를 박은 채 앉아 있다.

“말할 때까지 여기 있어야 해.”

내가 너무 심한 걸까? 아니다. 규칙은 규칙이다. 한글 교실 아이들은 속상하거나 요구할 게 있으면 반드시 말을 해야 한다.

사번부터 십 번까지 글자를 부르고, 777점을 매기고, 다른 아이들이 두 번씩 쓸 때까지 준현이는 꼼짝하지 않는다. 쉬는 시간이 돼도 마찬가지다.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준현아, 마지막 기회야. 공부하고 싶으면 고개 끄덕여.”

준현이가 삼십을 세고도 남을 느으린 속도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의자에 앉은 준현이를 다시 제 자리로 데리고 왔다.

“준현아, 왜 그랬는지 이유를 말해줘.”

준현이가 모기 같은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아니, 모기 소리가 더 클 것 같다.


“몰라서 속상해요.”


그런 거였다. 준현이는 모르는 게 속상했다. 깔깔마녀는 쉬운 글자라고 하는데 자기는 모른다. 머릿속이 캄캄하고, 속상하니까 눈물이 난 거다. 준현이 눈이 빨개지더니,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 준현아. 네가 그동안 한글 교실에서 흘린 눈물을 모았다가 너한테 주고 싶구나. 1.5리터 콜라 병에 가득하고도 남을 거야.

걔도 그랬다. 툭하면 울었다. 입을 내밀고 볼을 부풀리고 뚝뚝뚝 눈물을 흘렸다. 누가 놀려도 울고, 아프다고 울고, 무엇보다 자기가 못 하는 게 속상해서 울었다. 한 번은 성당 퀴즈 대회에 나갔는데, 한 문제도 못 맞추었다고 펑펑 울어버렸다. 어찌나 울었는지, 퀴즈 대회를 구경하던 엄마한테 등짝을 맞기까지 했다. 아마 엄마한테 맞았다고 더 울었겠지. 걔가 흘린 눈물을 다 모았다면, 콜라병 몇 개가 나올까? 아마 십 년을 마시고도 남았겠지.

쉬는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이 모여든다. 다시 ‘'짹짹고래'’를 부르자고 했더니 아이들은 처음보다 더 잘 부른다. 준현이도 노래를 부르며 웃고 있다.

시간이 흘러 걔는 마흔 살이 훌쩍 넘는 나이가 되었다. 당연히 그때보다 키가 크고 얼굴은 덜 까맣다. 어지간해서는 입을 내밀지 않고, 볼은 푹 꺼져서 부러 바람을 넣지 않는 한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잘 우는 건 안 바뀌나 보다. 걔는 요즘도 잘 운다. 남들 앞에서는 안 울려고 기를 쓰기는 하지만 자기가 못하는 게 있으면 안달 복달 속상해하는 건 여전하다. 그리고 걔는 요즘도 ‘'짹짹고래'’ 노래를 부른다.


걔도 그렇고 준현이도 그렇고 모든 아이는 자기가 못하는 게 속상하다. 한글 교실의 우리 아이들 모두 자기가 못해서 자기한테 화가 난다. 그런데 나는 자꾸자꾸 아이들이 속상하다는 사실을 까먹는다. 어쩌면 일부러 까먹는지 모른다. 그게 정신 건강에 좋으니까.

준현이는 느린 아이다. 말, 글자 쓰기, 걸음걸이 모두 다 느리다. 느린 만큼 아는 것도 천천히, 천천히 익힌다. 집에 학습지 선생님이 오고, 한글 교실에도 꼬박꼬박 나오지만 한글을 익히는 속도가 아주 느리다. 준현이는 준현이다. 느린 준현이가 갑자기 빨라질 수는 없다.

준현이만 느린 게 아니다. 지능 검사를 받아야 하는 아이, 오랜 방치로 소통이 안 되는 아이, 한글 공부를 차분하게 익힐 기회를 놓쳐버린 아이. 한글 선행 학습이 당연시되는 1학년 교실에서, 우리 아이들은 평균 속도 보다 느리거나, 느릴 수밖에 없다.

대안은 성취를 목적으로 교육을 하지 않고, 각각의 속도에 따라 스스로 익히는 교육을 실행하면 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 한글 교실도 힘들다. 대안이 대안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아니다. 내가 방법을 몰라서, 내가 노력을 안 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모르는 척 하나보다. 아이들이 속상하다는 사실을.


걔는 왜 자꾸 울었을까, 아마 걔는 칭찬받고 자랑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니까 속상했을 거다. 칭찬이 뭐라고, 자랑이 뭐라고 하기에는 걔가 좀 안됐다.

툭하면 울던 걔는 상장을 무척이나 받고 싶어 했다. 한 번은 뭐든지 잘하는 친구 집에 갔는데, 벽 한쪽에 상장이 가득 걸린 걸 보았다. 상장이란 이런 거구나, 벽에다 거는구나, 나는 왜 상장을 한 장도 못 받았지. 부러워하면서 친구와 상장을 번갈아 보았다.

준현이도 상장을 좋아하겠지? 우리 아이들 모두 상장을 좋아할 거야. 그런데 무슨 상장을 줘야 하나? 공부 잘하는 상, 봉사 상, 성실 상. 시시하고 지루하다. 더 재밌는 상을 주고 싶다. 척척박사님 상? 활짝 웃기 상? 하루 종일 누워있기 상? '짹짹고래' 상장은 어떨까? 그건 안 되겠지. 상은 상이고, 노래는 노래니까.


오늘은 상장을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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