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진이 이야기
편지가 왔다.
희진이가 숨을 할딱할딱 거리며 손바닥 크기로 접은 흰색 도화지를 건넸다.
“깔깔 마녀, 깔깔마녀한테 편지 주려고 뛰어왔어요. 받아요.”
희진이 편지가 내 손 안에 들어왔다. 희진이가 내게 보낸 첫 번째 편지다.
가만히 펼쳐보았다.
분홍색 하트, 하트 속에 들어 있는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 그림을 제법 잘 그렸다. 희진이는 그림을 그리자고 하면 “나 못해요.”라고 이야기한다. 글씨도 또박또박, 희진이는 손에 힘이 없어서 색연필로 글씨 쓰는 걸 힘들어한다. 음……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미진이가
미진이는 희진이 언니다.
희진이가 생글, 생글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음…….
“희진아. 고마워. 깔깔마녀도 희진이 사랑해.”
반성문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닌데, 글을 쓰다 보면 꼭 창피해진다.
한글 교실 첫해, 나는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책도 줄줄 읽고, 글자도 능숙하게 쓰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주, 아주 열심히 매우, 매우 잘 가르치는 한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만 재미없다 싶으면 지루해하고, 눈썹과 입술과 두 뺨으로 ‘억지로 공부하고 있어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부글부글 뜨거운 연기가 돌아다녔다.
그 때도 머릿속이 전쟁 중이었나 보다.
“애들아. 한글 모르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바보요.”
갑자기 아이들한테 미안하고 속상했다. 바보라니, 우리 아이들은 절대 바보가 아니야.
“그건 아니고, 아무튼 큰 일 나.”
“무슨 일이요?”
그게 말이야. 음…….
“만약에 음식점 가서 메뉴 책 보고 만두를 시켜야 하는데, 만두 글자를 몰라서 양파를 시킬 수도 있으니까. 그럼 맛있는 만두 말고 매운 양파를 먹어야 한다고.”
아이들이 의아하다는 듯이 날 쳐다보았다.
“깔깔마녀, 사진이 있잖아요. 사진 보고 만두 시키면 돼요.”
앗! 메뉴판에 사진이 있었지. 그걸 몰랐다니 정말 멍청하다. 아니 그전부터, 그러니까 한글 모르면 어떻게 되는지 물었을 때부터 나는 멍청했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글자가 더 정확하니까, 아무튼 글자를 알아야 해. 만두를 시키려면.”
마무리도 참 멍청했다.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었다. 변명을 하자면, 그만큼 간절하고, 절실하고, 강력하게 아이들이 한글을……, 원했다고나 할까.
교사교육 자료에 자주 등장하는 문장.
‘아이들이 답을 가르쳐 준다.’
처음 교육 비슷한 걸 했을 때는, 뭔 소리가 싶었다. 신비하고 거룩하기는 하나 뭔가 사기 같은, 무지 관념적으로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이들이 답을 가르쳐 준다.’의 예찬론자다.
아이들에게 꼭 가르쳐주고 싶었던 글을 읽고 써야 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글자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만두 대신 양파를 시키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걸 가르쳐 준 이도 바로 아이들이었다.
매년 봄 한글 교실을 새로 시작하고, 두 달쯤 이면 나는 심드렁하고 시니컬한 아줌마에서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사랑받는 사람으로 바뀐다.
교실 칠판에 자주 등장하는 글자.
‘깔깔마녀 사랑해요.’ ‘깔깔마녀 예뻐요.’ ‘깔깔마녀 고마워요.’
아이들은 그림도 그려준다. 머리가 길고 눈동자 안에서 커다란 보석이 빛나고 레이스 치마를 입은, 가끔은 왕관을 쓴 예쁜 여자가 나라고 말해준다. 내 머리는 짧고, 치마는 일 년에 열 번 정도 입을까, 눈동자 안에 보석이 있을 리 없는데도, 나는 아이들이 그려준 내가 무마음에 든다.
며칠 전에는 예슬이가 눈을 감고 같이 걷자고 했다. 30초쯤 걸었을까, 예슬이가 시키는 대로 눈을 떴다. 하얀색 보드판 위에 검은 글자가 보였다.
‘깔깔마녀, 사랑해요.’
나는 뜨겁고 사랑의 이벤트를 받는 이런 사람이다.
편지도 써준다. 역시 사랑해요, 예뻐요, 고마워요. 내가 답장을 쓰거나, 쓰지 않거나, 아이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아닌 누구라도, 깔깔마녀가 아닌 낄낄마녀, 호호마녀, 무뚝뚝한 중년 아저씨라도 아이들은 편지를 쓸 것이다.
우리는 자주 편지를 쓴다. 아이들이 글씨를 알거나 모르거나 상관없다. 내가 칠판에 먼저 써 준 다음, 그대로 베껴 쓰기도 하고, 쓰다가 모르는 글자는 물어보라고 한다. 띄어쓰기는 엉망이다. 편지를 받을 사람이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지적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엄마에게 쓰자는 말은 안 한다. 아빠에게 쓰자는 말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 중에는 엄마, 아빠, 혹은 엄마, 아빠 모두와 같이 살지 않는 아이가 있다. 그냥 가족에게 편지를 쓴다. 윤상이는 한 살 아기 동생에게 쓰겠다고 한다. 아기가 글자를 모르니까 자기가 읽어줄 거란다. 담임선생님께도 편지를 쓴다. 담임선생님은 우리 아이들 편지를 격하게 반겨주시겠지? 서로 편지를 쓰자는 이야기는 안 한다. 인기투표가 돼버리곤 해서, 모자라는 교사인 내가 결과를 감당하기 힘들다.
우리가 글자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편지를 쓰기 위해서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편지가 아니라면 굳이 이 복잡하고 괴상한 무늬를 해독할 필요가 있을까?
가끔씩 아이들 개별 일지에, ‘지능 및 전반적인 발달 검사가 필요합니다.’라고 적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특수교육의 도움이 필요한 특징을 단번에 찾을 수는 없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지능이 경계선이거나 그 이하로 예상되는 아이들이다. 한글을 쓰고 읽기는 하나 문장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학 능력이 떨어진다. 이야기를 할 때, 눈을 마주치지 않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상관없이 자기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학교 복지사에게 희진이가 검사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희진이는 언제나 찰랑찰랑 단발머리를 흔들면서 교실 문을 열고 날 쳐다본다.
“오늘 한글 교실 해요.”
처음에는 “그럼, 내가 교실에 있으니까 당연히 한글 교실 하지.”라고 말했는데, 요즘은 “어서 들어와.”라고 한다. 희진이 질문은 그냥 인사니까, 어떤 날은 한글교실이 좋고, 어떤 날은 한글 교실 대신 집에 가고 싶다는 인사니까 말이다.
다른 아이들이 편지를 쓰고, 칠판에 글씨를 쓸 때, 희진이는 물끄러미 날 쳐다보고만 있었다. 날 쳐다보는 희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희진이 머릿속에는 무슨 말과 어떤 그림이 들어 있었을까?
희진이의 머릿속.
희진이의 머릿속을 상상해 본다.
희진이가 좋아하는 껌, 한글 수업이 끝나면 꼭 찾아가는 담임선생님, 과자를 자주 사주는 엄마, 언니 미진이, 한글 교실, 친절하다가고 화를 내는 깔깔마녀, 글자, 편지……. 내 상상이 맞을까? 아니다, 내가 상상하는 말과 그림은 희진이 것과 많이 다른 것 같다. 아무리 애를 써도 어렵다. 나는 희진이의 머릿속을 알 수가 없다.
희진이와 내가 마주 보았을 때, 내 머리와 희진이 머리 사이의 거리는 가로 30센티미터, 세로 40센티미터. 결코 먼 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희진이 머릿속을 도저히 볼 수 없다. 깜깜하다.
희진이가 날 쳐다보았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내 머릿속에는 무슨 그림과 어떤 말이 있었을까?
답답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편지 한 번 써볼래, 집에 가자마자 낮잠을 자야겠어, 배고프다, 저녁 준비를 해야겠지, 그냥 시켜먹을까, 내가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어, 희진아, 어떻게 하면, 답답해.
누군가 그랬는데, 알 수 없으니까 이해할 수 없으니까 더 노력해야 하고, 그런 게 사랑이라고. 그 말도 사기 같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알 수 없는 건 그냥 캄캄한 거고, 더 노력하고 싶어도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많다.
희진이의 머릿속.
희진이가 편지를 배달했다. 언니 미진이가 엄마, 아빠에게 쓴 편지. 편지를 배달하는 희진이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잘 못 배달된 편지일까? 아니다. 편지는 제대로 배달되었다. ‘희진이가 깔깔마녀에게’ 라고 쓴 편지를 꼭 받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다음 시간, 나는 희진이를 잡고 편지 쓰기를 했다. 희진아, 깔깔마녀한테 편지를 써야 할 때는 깔깔마녀에게라고 먼저 써야 하는 거야. 희진아,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희진이가 모르겠다고 생각이 안 난다고 했다. 그럼 깔깔마녀, 사랑해요라고 적어줘. 희진이가 고마워요도 쓰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은 오늘 날짜를 쓰고, 희진이 가라고 하는 거야.
또 그다음 시간. 희진이는 엄마, 아빠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무척 좋아할 거라고 하면서.
나는 아직도 희진이 머릿속을 알 수 없어서 답답하고 힘들다. 그러려니 하는 게,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좋은 거라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그러려니가 있는 그대로가 힘들다. 그냥 나 생긴 대로 종종거려야겠다.
희진이가 친구에게 편지를 건넸으면 좋겠다. 멋진 연애편지라면 더 좋겠다. 혹시 그 연애편지의 발신인과 수신인이 희진이와 희진이 친구가 아니더라도, 편지를 받는 사람이 희진이 손에 따뜻한 입맞춤을 선물하면 좋겠다.
결론은 아름답게! 자, 우리 모두 편지를 써요. 편지 배달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