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빛을 포함한 흰색
처음은 한 마디였다.
“깔마, 흰색 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거야?”
a는 놀이터에서 마음에 드는 돌을 찾고, 그 돌을 간직하곤 한다. 돌에 이름을 붙여주고, 집을 마련하고, 돌의 동생도 만들어주곤 한다. a가 좋아하는 돌은 하얗고, 동그랗고 매끈한 돌이다. a가 좋아하는 하얀 돌, 매끈하고, 동그란 돌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얗고 동그랗고 매끈한 돌을 제외한 나머지 돌은 너무 많은데, 딱 그런 돌은 어쩌다 한 번 발견되곤 한다.
아이들은 돌을 발견하고, 돌을 모으는 어느 시기가 있는 것 같다. 우리 집에도 몇 개의 돌이 있다. 검은색과 흰색 돌 몇 개, 호박 빛의 작은 돌. 흰색 돌을 살펴보았다. 우리 집 흰색 돌은 a가 좋아하는 돌처럼 새 하얗지는 않다. 노란빛이 감도는 흰색, 초록이 섞인 흰색이다. a의 흰색 돌과 우리 집 흰색 돌은 다르네, a는 더 완벽한 흰색 돌을 좋아하지. 그래 흰색이 모두 같지는 않지.
흰색은 여러 빛의 합성 색이다. 나는 감각에 매여 있는 존재라, 이 과학적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일곱 색의 무지개 빛을 다시 합치면 백색광이 된다는 걸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어떤 흰색은 푸른빛이 돌아서 차갑고, 어떤 흰색은 노란빛이 돌아서 따뜻한 게, 흰색이 여러 빛이 합쳐졌다는 증거라는 거지, 하고 중얼거린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흰색은 뭔가 섞여 있다는 거잖아, 그런데 물감을 다 섞으면 검은색이 되잖아, 아, 색과 빛은 다르지. 아, 어렵다 계속 중얼거린다.
책상 주위의 흰색을 둘러보았다. 노리끼리한 흰색 책 표지, 갈색이 감도는 달력 하단 흰색, 자세히 보니 그 위 사진에 갈색 나무 사진이 있다. 그래서 갈색을 품은 흰색으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회색에 가까운 흰색 상자, 연둣빛의 흰색, 푸른빛의 차가운 흰색, 다리와 바닥이 다른 의자의 흰색. 그냥 흰색은 없었다. 어떤 색이 느껴지거나, 때로는 옆에 놓인 어떤 색을 반영하기도 했다.
요즘 나는 무엇이든 세분화하면 더 세분화하는 게 필요하다는 쪽이다. 우월감도 같은 우월감이 아니다, 저 열등감과 이 열등감은 다르다. 이런 경우는 거짓말이지만, 저런 경우는 거짓말이 아니다. 둘 다 사실을 왜곡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지랄 맞은 거 맞다. 이유를 대자면, 자세히 보고 정교하게 봐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좋은 단어와 근사한 명언으로 결론을 내보았자, 해결되는 일은 없다. 문제는 쌓이고 쌓여서 결국에는 해결해야 할 내 짐만 늘어날 뿐이다.
책상 주위의 흰색이 모두 다르고, 우리 집 돌멩이의 흰색이 다르고, a가 원하는 흰색 돌이 다르다는 걸 굳이 알아보는 건, 내 지랄 맞음의 변명일지도 모른다.
a가 마음에 쏙 드는 특별한 돌을 발견하는 건 일 년에 몇 번쯤 될까? 만약 a가 마음에 쏙 드는 것에 더 많은 조건, 반드시 따뜻한 느낌이어야 하고, 좀 더 완벽한 흰색에 가까워져야 한다는 조건을 붙인다면, a는 일 년 내내 특별한 돌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아이는 스무 개의 돌을 줍고, 어떤 아이는 열 개의 돌을 줍고, 어떤 아이는 세 개의 돌을 모으고, 특별한 무언가를 찾는 아이는 한 개의 돌을 사물함 저 편에 간직할 테다.
다 같은 흰색이 아니듯, 문제가 다 같지는 않기 때문에, 그래도 요즘은 피곤하다. 모든 빛이 합쳐진 흰색처럼 쉬어야겠다 싶다. 그럼 또 힘들어지는 건 나겠지. 모든 존재는 다 다르지, 그러니까 특별하지, 아, 특별한 건 역시 어렵구나. a의 흰색 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