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입니다. 일하기 싫은 -비행 에피소드
세이셸비행이었다.
세이셸은 아프리카에 위치한 휴양지로 5시간이 안 되는 비행시간과 30시간이라는 레이오버시간으로 인해
크루들 사이에선 인기가 많은 비행이었다.
기대를 잔뜩 안고 브리핑룸에 들어가서 인사를 했다.
나처럼 모든 크루들이 다 들떠 있었다.
소문처럼 스무스한 비행이었고 기분 좋게 랜딩 했고
웬일인지 제일 주니어였던 나에게 스위트룸을 하사해 주셨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휴양지에 왔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때까진 몰랐다.
세이셸에서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하고, 엄청나게 큰 사고가 나고
도하로까지 돌아가는데 큰 우여곡절이 있을지는....
크루들과 투어를 하기로 했다.
비 때문에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가이드 아저씨가 비는 곧 그칠 것이라고 하길래 믿기로 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더 심하게 왔다.
비 때문에 앞이 안 보일 정도였는데 아저씨도 애들도 누구도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물론 나 혼자는 돌아갈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반 강제로 투어는 계속되었다.
폭우 속에서 거북이를 보고 우산 대신 비닐을 머리에 얹으며 다녔다.
'에휴- 그래 내가 언제 또 이렇게 비닐을 쓰고 다니면서 세이셸에서 투어를 하겠어~'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큰 거북이를 보고 두 번째 코스로 폭포를 보러 갔다.
나는 이 폭우 속에 폭포까지 가는 게 가능하긴 한 것인지 의아했다.
파워긍정 가이드 아저씨는 갈 수 있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역시나 산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발목까지 차오르는 물을 거슬러 폭포 입구까지 걸어가라고 했다.
'아저씨 저는 못 가요'
여러 번 외쳤지만 아저씨는 자기가 폭포까지 안내를 해야 해서
내가 차 안에서 혼자 기다리는 것은 못한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이것은 투어인가 생존 리얼리티인가
산 입구에서 폭포로 올라가는 동안 발목까지 오던 물은 종아리까지 오게 되었고
이러다가 물살에 휩쓸리는 건 아닌지 미끄러져서 머리가 깨지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는 동안 폭포에 다다랐다.
폭포에 다다르자마자 나의 상상은 현실이 될 것만 같았다.
빗물에 불어난 폭포물은 아름답기보단 탁한 회색물이 쏟아졌고 금방이라도 모두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무릎을 넘어선 물살의 힘도 더 세졌다.
너무 무서워 나무를 꽉 붙잡았다.
스스로도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 짓인지 의문투성이었지만 또 힘들게 왔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군중심리의 작용인지 하라는 것은 다 따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너무 용감했던 것 같다.
겨우겨우 다시 차에 돌아온 이후 거짓말처럼 비가 멈췄다.
비가 멈춰진 이후 기념으로 바다구경을 했다.
너무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이게 세이셸의 본모습이구나'
그래도 투어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었다.
가이드 아저씨는 오늘의 폭우가 세이셸에서의 기록적인 폭우라고 말했다.
내가 괜히 이런저런 걱정을 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근데 그걸 아는 사람이 투어가 가능하다고 곧 그칠 거라고 말을 한다고?
물론 그치긴 그쳤지만 몇 시간 후 다시 엄청난 비가 쏟아졌고
우린 허겁지겁 호텔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에 돌아와서 투어를 되돌아보며
나름 뿌듯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상쾌한 마음으로 눈을 떴고 근처 산책을 나갔다.
근데 무슨 오픈하지 않은 테마파크에 혼자 들어온 것 마냥 조용하고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우연히 호텔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만났을 때 물어봤다.
"안녕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한 줄 아니?"
"너 몰라? 밤에 폭탄 터졌잖아"
"뭐라고?!!!!"
"너 못 들었어? 소리 엄청 크고 진동도 엄청 컸는데"
나는 당장 로비로 달려갔다
로비에서 직원에게 물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니?"
직원은 사고가 있었다고만 말해주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문자가 왔다.
'세이셸에서의 사고에 대해 들었고 ~~
끝까지 안전히 귀국하길 바랄게'
직후 룸으로 전화가 와서 나의 출근시간이 당겨졌다고 말했다.
출근 후 크루들에게 물어봤다.
어제 폭탄창고에서 폭탄이 터졌고 그래서 새벽 2-3시쯤 엄청난 진동과 굉음이 들렸으며
호텔도 엄청 흔들렸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세상 편하게 잠을 잔 것이다.
와 정말 나는 누가 업어가도 몰랐을 것이다. 잠귀가 밝은 편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그 일과 더불어 전날 내린 폭우로 인해 3명의 인명사고가 났고
결국 세이셸은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했고
그로 인해 호텔과 공항을 제외한 모든 곳은 영업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길거리에 사람이 없던 것이었다.
심지어 모든 학교도 등교금지 명령이 내려졌다고 했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본모습은 더 처참했다.
건물이 부분적으로 무너져있었고,
모든 유리창이 깨져있었으며,
심지어 공항의 유리창도 다 깨져있었다.
지난날의 사고의 강도가 얼마나 컸던 것인지 단편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그날 이후였던가
나는 나의 업무강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카타르 항공에서의 첫 달 스케줄은 125시간 정도의 비행시간이었고
정말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승무원의 비행시간은 비행기 문의 닫히고 다시 열릴 때까지의 시간만 계산이 된다.
즉 125시간은 브리핑, 승객의 탑승전 업무, 탑승, 하기, 하기 후 업무는 계산이 되어있지 않는 시간이다.
그때부터였다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고 느꼈던 순간이
어쨌든
그렇게 잘 돌아가나 했는데
문제가 또 생겼다.
폭우가 다시 쏟아졌고
공항의 통금시간은 다가오고
활주로는 잠겼다.
이어지는 캡틴의 PA
"활주로가 잠기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만약 통금시간 안에 이것이 해결되지 못하면 우리는 호텔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대로 세이셸에 갇히는 것인가'라고 생각할 즈음
하늘의 장난이라도 된 듯 비가 그쳤고, 활주로에 물이 빠졌고
그렇게 우리는 극적으로 이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