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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플렛메이트가 결핵이라고요?

승무원입니다. 일하기 싫은 - 기기괴괴콜렉터가 된 시작점

by 구름 Feb 24. 2025

이 사건은 내가 기기괴괴 콜렉터로 불리게 된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카타르에서 트레이닝을 한참 하고 있는데

클리퍼드가 나를 불렀다.

우리 사이에서는 항상 인자하고 따뜻해서 클버지라고 불렀었는데

그날따라 차갑고 무거운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오늘 오후에 회사에서 전화가 올 것이라고

받으면 놀라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 따라 하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그 어느 것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무서웠다. 내가 뭘 잘못했나...?

한 3시간쯤 그런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띠리 리리-


"헬로?"


"하이 네가 ㅇㅇㅇ이니?"


"응"


"너의 플렛메이트가 전염병에 걸려서 너도 검사를 받아봐야 해

이번 주 토요일이 쉬는 날이니까 가서 검사를 받고 와

교통편은 몇 시로 예약을 해 줄 거고 갔다 와서 결과를 업데이트해줘"


"무슨 전염병?"


"그건 지금 알려줄 수 없어 결과가 나오면 업데이트를 해줘 끊을게."


정말- 진짜 뒤통수를 한참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치면 나와 같이 트레이닝받는 애들 모두가 검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같은 공간에서 10 시간 넘게 트레이닝하고 다른 애들은 그 아이랑 같이 밥도 먹던데...

근데 그냥 내가 플렛메이트라는 이유 하나로 나만 검사하면 된단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내가 전염병에 옮았을 확률을.


1. 주방을 같이 썼지만 그 애와 겹치는 시간에는 쓰지 않았고 식기도 물론 따로 썼다.

2. 화장실도 따로 쓴다.

3. 에어컨도 따로 쓴다.

4. 나는 항상 방에 박혀있었다.

5. 말도 거의 섞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여러 개를 나열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확률적으로 매우 적은 가능성이었다.


사실 나는 그 애를 좋아하지 않았다.

솔직히 싫어했다.

2주간 같이 살았는데 씻는 것을 못 봤고 100미터 밖에서도 냄새가 났다.

50도가 넘어가는 중동에서 항상 에어컨을 끄고 다녔고 나는 또 그 애가 끈 것을 따라다니며 키고 다녔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인해 그 애가 더 싫어졌다.


아무리 그 애를 탓해도 불확실성이 주는 그 두려움과 이 먼 외국 땅에서 혼자 큰 병원에 가고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듣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고

흔쾌히 같이 동행해 주기로 했다.

정말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다.


이런 망할

아니 그냥 내 옆에 있어주는 거만 한다는데 회사에서 안된다고 퇴짜를 놨다.

나의 감정 따위는 전혀 신경도 안 쓰는 회사다.


여러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애써 괜찮은 척을 하며 병원에 도착했고 내 순서가 왔다

피를 5번 뽑았고 결과는 2주 뒤에 전화하라고 했다.

사실 무슨 검사를 하는 건지도 몰라 그때 병원에 가서 물어봤다.

결핵검사란다


망할


아니 이놈의 회사는 왜 그런 것까지 아니 나의 안전과 알 권리는 어디로 간 것인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2주 뒤,

나는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추적 검사를 해야 한다며

2달 뒤 또 한 번의 같은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2달이 지나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나름 경험이 있다고 그리고 이미 음성이니까 그런지 떨리지 않았다.

똑같은 의사에게 피를 뽑고 2주 뒤 음성이면 아무런 연락이 안 올 것이고 양성이면 연락이 가서

추후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음성일 거니까 기분 좋게 병원을 나왔다.


2주 뒤 일요일

갑자기 문자가 왔다.

무방비상태로 잠결에 본 그 문자는 나를 떨게 만들었다.


Doha National Hospital..


음성이면 아무런 연락이 안 온다고 했는데...

떨리는 숨을 참으며 떨리는 손을 붙잡고 애써 태연하게 문자를 눌렀다.

Reservation on Tuesday...

왜 예약이 되어있는 거지..?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는 건강한데..? 아무런 증상이 없는데...? 1차 검사도 음성이었는데...?

나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병원에서 음성이면 아무런 연락이 안 갈 거고 양성이면 치료를 위해 추가적인 연락이 올 거라는데

병원에서 예약문자가 왔어 나 어떡해..?


엄마는 괜찮을 거라며

의사가 그때 전화번호 준 걸로 전화해 보라고

병원에도 전화해 보라고 했다.

엄마는 참 위대한 게 엄마도 놀랬을 텐데 항상 나의 안위부터 걱정해 주고 붙들어준다.


하필 그날이 일요일 오전 7시였고

그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24시간을 지옥에서 보냈던 것 같다.


월요일 오전 6시부터 나는 열심히 전화를 했다.

7시가 되자마자 의사한테도 전화를 했다.

그렇게 수백 통의 전화를 시도하다가 7시 45분 드디어 나의 검사를 진행한 의사 선생님이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는

" You are NEGATIVE , NO NEED to COME again"


안도의 한숨과 함께 화가 났다.

"그럼 이 문자는 뭐야? 내가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는지 알아? 난 예약을 한 적도 없단 말이야!"


의사 선생님은

혹시나 네가 양성일까 봐 병원 측에서 미리 예약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진짜 카타르 일처리 너무 화가 난다.

하지만 내가 음성이란 사실이 모든 것을 용서하게 했다.


엄마에게 전화했고 다행이다 다행이다 그 말에서 그동안 엄마의 시름이 느껴졌다.

엄마도 나만큼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이 무서워했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과 함께 웃으며 돌아갈 수 있었고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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