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이라는 여정의 시작 (1)
취업준비로 열과 성을 다하던 하루하루를 보내며
약 100개 정도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 지쳐서 우울감이 나를 1/3 정도 집어삼킬 때쯤
인터넷 창을 끄다가 우연히 카타르 항공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다.
'그래 어릴 때 하고 싶었던 일이잖아'
누구에게나 인생을 바꾸는 순간이 온다고 하지 않는가?
그게 나에게는 그때였던 것일까.
그날 이후 꼬박 며칠 밤을 고민해서 만들어 낸 CV를 제출하고
급하게 승무원 사진을 검색해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얼마 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미친 듯이 채용에 대해 검색해 보았고
많은 후기들이 '나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길래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오던 취업준비는 '나는 이 회사에 이래서 잘 맞는 인간입니다.'를 최대한 어필해야 했고
그것을 증명하듯 인적성이나 조직문화에 관한 시험을 쳐야 했고
취업준비를 하던 학원에서도
진짜 내가 아닌 회사가 원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오던 말이었다.
내게 맞지 않는 옷을 몸을 구겨 넣어 입으라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나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주라니
항상 나 자신을 숨기고 회사의 방향으로만 맞추는 것에 지친 나에게 이 점 또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나에게 맞는 옷을 입는 것인가 기대했다.
그래서 나는 면접에서 '나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주기로 다짐했다.
진심이 통한 것일까
그렇게 나는 승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은 지 딱 한 달이 되는 날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다.
모두가 트레이닝이 어렵다, 출국할 때까지 합격이 아니다, 트레이닝이 끝나도 비행기를 타야 진짜 합격이다 등
말이 많은 항공사였지만
2년 이상 짓누르고 있던 취준생 딱지를 뗀 것 만으로 나는 너무 행복했고 충성?을 다짐했다.
카타르에서의 생활도 순조로웠다.
운이 좋게 좋은 배치메이트 즉 동기들을 만났고
거기서의 생활이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 같다고나 해야 할까
아니면 대만 교환학생때와 비슷했다고 해야 할까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웠다.
그러면서 스스로 '중동살이 쉽지 않다더니 별거 없네'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쭉 편안하고 안온한 생활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욕심이 많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는 항상 이런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교만함 때문일까?
카타르 항공 승무원이 된 지 3개월 차.
모두가 대부분 1순위로 가고 싶어 한다는 항공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꼭 이직을 하겠다 보다는 다른 회사의 면접은 어떨지 궁금함이 더 컸다.
운명의 장난인가 아님 필연인가.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 간 면접에서 덜컥 합격을 하고 말았다.
기쁨도 잠시 비자문제며 퇴사문제까지 겹쳐
굳이 이직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때 친구가 많은 사람이 1순위로 가고 싶어 하는 곳이면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말에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더 좋은 환경과 조건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직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이직을 했다.
카타르 때와 별 다를 것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바로 옆나라, 비행기로 4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곳
그곳에서 나의 두 번째 중동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직한 회사에 대해 조금 설명하자면 이름은 밝힐 수 없으나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항공사라 할 수 있을 것이고 규모도 굉장히 큰 항공사였다.
카타르도 굉장히 크고 유명한 항공사였기에
그리고 중동이 어떤 곳인지 알기에 큰 기대를 하고 오지는 않았다.
다만 모든 사람들의 말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을 것이라 해서 왔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내가 기대를 했었나보다.
첫날부터 제시간에 오지 않는 크루버스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 회사, 충격적인 숙소까지
난 그때 바로 도망갔어야 했던 것일까?
신기하고 웃기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었는지
정말 그다음 날 바로 3명이 도망을 갔다.
그때 나도 따라갔었어야 했나 보다.
그놈의 기대가 날 아직도 이곳에 있게 만들었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