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선물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책에 얽힌 습관들에 대하여

by Jessie


책을 좋아하는 것에 비해 책을 빨리 그리고 많이 읽진 못하지만 어쨌거나 책에 대한 기호를 조사한다면 나는 책을 좋아하는 축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책을 선물해주는 사람을 오래 기억하는 편이다. 책을 선물하는 사람이 나의 상황이나 취향을 기억하고 그와 관련된 책을 고르기 위해 책꽂이 주변을 서성이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좋아하는 누군가가 타고 올 버스를 기다리는 일과도 조금은 닮아 있다. 서재 한편에 놓여있는 책꽂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책을 선물해준 이들의 마음을 생각할 때면 페이지 위로 까맣게 박혀 있는 글자들이 나에게 위로처럼 쏟아지는 것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가 선물해준 이병률 씨의 '끌림'은 심심할 때마다 아무 페이지를 펼쳐 읽을 만큼 여러 번을 읽은 책인데 당시 파격적이었던 그의 책은 여행에 대한 나의 세계관을 넓혀 주었고, 감옥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던 누군가에게 추천받은 '개밥바라기별'의 한 구절은 나에게로 와서 인생철학이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던지 '나는 왜 네가 아니고 나인가'와 같은 인디언 잠언집까지 다양한 책들을 선물 받곤 했는데 그 책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책을 선물해준 사람을 여행하고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책을 선물해 준 이를 스쳤던 문장들이 나에게로 닿았을 때의 온기는 사람의 체온과도 꽤 닮아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책을 읽으며 받았던 감동과 위로를 나에게 선물하기 위해 책을 고르고 내 앞에 마주할 때까지의 시간이 나에게는 고스란히 느껴져서 이따금 서울 생활에 지치고 외로워질 때면 선물 받은 책들이 가득 꽂힌 책장 앞에 서서 마음을 채우는 일을 종종 하곤 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을 때면 가장 먼저 구경하게 되는 곳도 바로 그 누군가의 책꽂이였다. 책꽂이를 볼 때면 그 사람의 세계관을 잠시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에 빠져 드는데 이는 누군가가 우리 집에 왔을 때에도 마찬가지의 것이어서 서재를 보여주는 일은 유독 부끄럽게 느껴지곤 했다.



나의 가방에는 언제나 책 한 권이 들어있다. 처음엔 선물 받은 책이 주는 위로가 너무 따뜻해서 들고 다니기 시작했지만 이젠 단 한 페이지를 읽게 될지언정 공중에 부서지는 시간들을 함께 하기 위해 나는 기꺼이 책의 무게를 감당하는 선택을 한다. 어디에도 책이 동행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래서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닌 기억이 없기도 하지만 나는 가방에 책이 있어야만 비로소 안심이 되는 유형의 사람 중 하나여서 기꺼이 튼튼한 팔이 되는 일을 자처했다. 예쁘고 소박한 가방을 들고 다니는 일보다 크고 투박한 가방을 드는 일이 언젠가부터는 나에게는 더 어울리는 일이 되었다. 아주 솔직히 가끔은 곁에 있는 이보다 더 소중해진 몇몇의 책들이 주는 감동을 떠올리면서 나는 몇 번이고 가방 표면으로 느껴지는 그것의 모서리를 쓰다듬는 버릇이 있다.




세상을 등지고 가장 날카로운 모서리에 올라있는 동안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밥 먹었냐는 인사와 함께 책을 건네곤 했다. 어설픈 "힘내"라는 말보다 그것이 더 큰 삶의 위로가 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감히 깨닫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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