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지하철에 적응하는 중입니다.

서울 생활 3년 차, 여전히 지하철 출퇴근은 적응되지 않는 일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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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지하철은 다른 날보다 유난히 더 붐비는 편이다. 조금 서둘러 하루를 준비하지만 7시 10분 언저리에 지하철을 탄 오늘도 역시나 '억' 소리와 함께 아침을 시작했다. 영하 4도를 가르키는 온도계 덕분에 오늘 아침 7호선 지하철은 유난히 검은색의 두툼한 패딩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일까 지하철에 올라 탄 사람들 사이엔 간격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존재하지 않았고 면목, 사가정, 중곡 같은 역에 멈출 때마다 검은색 패딩 스치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옆에 계신 할아버님은 유난히 힘들어 하시는 눈치였지만 지하철은 발디딜 틈없이, 노약자에 대한 배려없이 사람들이 가득 구겨져 태워지고 있었다. 여자치곤 큰 키를 가진 덕분에 사람들 사이에서도 조금 나은 공기를 마실 수 있지만 이따금 왜소하신 어머님과 함께 시루떡 여정을 해야할 때면 마음이 먹먹해지곤 한다. 이른 아침부터 돈을 벌러 가는 옆자리 어머님의 모습이 4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우리 부모님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손을 쓸 수조차 없는 지하철 안에서 이따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가와 카톡을 하고 있거나 영상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데 아침부터 시원하게 직장 상사 욕을 하는 카톡을 엿보게 될 때면 '누구나 다 비슷한 모습으로 사회 생활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영상을 보며 웃고 있는 이의 뒤에서 나도 모르게 웃을 참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랄 때도 있다. 2호선으로 환승 후에는 유독 심해지는 자리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 하기 위해 눈치를 보는 사람들을 보며 지하철만큼 인간적인 장소는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한다. 다들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이따금은 작은 위안이 된다.






색채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하철에서도 가끔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괜시리 더 반가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디지털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책을 읽는 상대방은 모르는 나만의 은밀한 동질감 같은 것이다. 그 사람이 읽고 있는 책 제목을 확인 하고서야 나는 비로소 지하철 탐방을 마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요즘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고있다)


핸드폰보다는 책이나 주변 풍경을 바라보는 일을 더 좋아하는 나에게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 하는 일이 아직은 채 적응되지 않은 일 중 하나이다. 엄마와 아빠는 서울의 출퇴근 풍경이 이런 모습이라고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을만큼 평온하고 조용한 시골에서 살아 오셨으니 우리가 서울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얼마 전 시골에 다녀왔을 때 엄마와 할머니는 내가 잔뜩 예비었다며 염소를 지어 보내오셨다. 서울 사는 게 얼마나 여의치 않겠냐는 의미에서 였다. 가끔 시골 사는 친구들과 통화를 할 때나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자금으로 시골에선 더 큰 집을 살 수 있는 사실을 마주 할 때, 나의 도움이 더 자주 필요해진 부모님을 마주했을 때 나는 시루떡 같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 하는 일이 더 고단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래도 매일 놓치지 않는 일이 있다면 강변에서부터 잠실나루까지 풍경을 매일 빼놓지 않고 감상하는 일과 퇴근 길 청담에서 뚝섬유원지까지 야경을 바라보는 일이다. 바쁘고 힘든 서울 생활 속에서도 이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작은 위로와도 같아서 나는 창가 가까운 곳에 서있기를 좋아한다. 그래도 이 풍경이 없었다면 내 서울 살이는 얼마나 삭막했을까를 생각하면서 오늘도 무사히 출근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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