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보다 두려운 미용실

어떤 트라우마에 대해서

by Jessie
미용실_pinterest.jpg @STUDIO BENICKY , Pinterest (사진과 글 내용은 무관합니다)




큰 맘 먹고 미용실에 다녀왔다.


나에게 미용실에 간다는 것은 치과에 가는 일보다 더 두렵고 엄청난 일이라 나는 고작해야 일 년에 두 번 정도의 빈도로 미용실에 가는 편이다. 그 이유는 언제나 머리를 끝내고 내 모습을 보았을 때 한번도(정말 단 한번도)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거니와 4-5시간의 노동력에 지불해야하는 금액이 20만원을 훌쩍 넘어가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엔 31만원으로 최고금액을 갱신하고 말았다. 머리숱도 없고 머리가 길지도 않은데 이렇게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한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가끔 명치 언저리가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물론 내가 내미는 카드를 기다리고 있는 미용사 앞에서는 언제나 덤덤한 표정을 짓다가 마지막엔 "할부도 되나요? 3개월로 해주세요"라는 멘트를 날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울고 싶은 기분을 받아든 카드와 함께 주머니에 넣고 나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재빠르게 미용실을 빠져 나가 집으로 향한다.



미용실에 가면 언제나 어떤 헤어스타일을 원하냐는 질문을 듣는다. 그렇기에 미용실에 가기 전에는 적어도 내가 어떤 머리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가지고 가야 하는데 하고 싶은 머리와 할 수 있는 머리의 괴리가 큰 나에게는 사실 하고 싶은 머리를 가져가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머릿결이 얇아서 염색도 안되고, 펌도 자주 할 수 없고 왠만해선 자연인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는게 좋다는 답변을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상담부탁드립니다'라는 멘트를 예약과 함께 남겨두곤 한다. 그리고 이번 미용실 방문도 마찬가지였다.



"이 머리 상태로는 할 수 있는 스타일이 별로 없어요. 들고 오신 스타일로도 스타일링이 불가능하구요. 그냥 단발 C컬을 하는게 어떨까요?"



이번에도 지하철에 탔을 때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헤어스타일을 권유 받았다. 새까맣고 머리가 그다지 작지 않은 또 곱슬기까지 있는 내가 이 스타일을 하는 것이 옳은지를 채 고민하기도 전에 이미 머리는 싹뚝싹뚝 잘려지고 있었다. '이 머리를 기르기 위해 3년을 참았는데'라는 아쉬움도 잠시뿐이었다. (야한 생각을 아무리 해도 머리카락이 자라는데는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개인 임상 실험을 통해 도출할 수 있었다)



미용실의 잘 닦여진 거울 앞에 앉을 때마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고공 하락하는 기분은 중학생 이후로 언제나 똑같았다. 직모에 머리숱도 많은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 받았더라면 미용실에 올 때마다 이렇게 슬프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운이 없게도 나는 정반대인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 받았다. 미용실 유목민인 내가 미용실에 들어서면 언제나 그들은 머리 숱이 많지 않다는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상기 시켜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숱에 대한 디스카운트라곤 그 누구도 적용시켜 주지 않았다.



그닥 많지 않은 머리숱에 얇은 머리털 그리고 미용실 트라우마도 가지고 있는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에 두어번 쯤 미용실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건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두고 보기엔 안쓰럽고 고데기를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머리 말이다. 참다 못하고 12월 말의 일요일에 충동적으로 미용실을 예약하고 말았다. 거울 속에 놓여있는 그을린 버섯같은 얼굴을 보며 좌절하고 있는데 미용실 언니는 "이 머리는 특수약품을 써서 72시간 후에 머리를 감아야 된다"며 3 번을 이야기해 주었다.


월요일인 오늘, 이제서야 머리를 한지 24시간이 지났고 회사에선 많은 이들이 나의 짧아진 변화를 눈치채고 큰 소리로 버섯스러운 나에게 주목해주었으며 나는 내일 31만원짜리 머리를 감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혹은 아픈척을 하고 반차를 써야하는 지 그게 아니면 모자를 써야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머리는 확실히 약속이 없는 주말을 앞둔 금요일에 해야되는 것이며 무엇이든 다다익선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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