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넘기에 대한 고찰

아무튼 복싱_#3 줄넘기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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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에서 스트레칭을 한 다음 순서는 바로 줄넘기이다. 민첩하고 순발력이 필요한 복싱에서 몸을 가볍게 만드는 일이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인데 체중 감량에도 매우 적합한 운동이다. 미국과 호주에서 급격하게 찐 10킬로그램의 살을 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줄넘기였고 주변에서도 줄넘기로 체중의 앞자리를 두 번이나 줄인 친구가 있었기에 줄넘기에 대한 효과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줄넘기 실력은 여전히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 두 달 동안 복싱을 다니면서도 이러한 나의 실력은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는데 컨디션이 좋고 나쁨에 따라 겨우 줄에 걸리지 않고 줄을 넘을 수 있느냐 아니냐가 결정되었다.



복싱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환복을 하고 스트레칭을 한 다음 줄넘기를 뛰는 흐름으로 운동이 시작된다. 3분 동안 쉬지 않고 줄넘기를 하고 30초를 쉬고나면 다시 그 다음 세트를 이어간다. 이 것을 적어도 3세트 이상 진행하는 것이 우리 체육관의 룰이다. 복싱이라는 운동은 온전히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적당히 스스로와 타협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복싱장 천장에 붙어있는 몇 몇의 문장들과 곁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자극하곤 한다. 어떠한 타협도 없이 땀에 젖은 얼굴로 자기와의 싸움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운동을 하다보면 나 역시도 3분이라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엄청난 시너지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나의 자존감을 높이는데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 앞에 남편과 나란히 서서 줄넘기를 넘는다. 좁은 체육관에서 여러 명이 한꺼번에 줄넘기를 하는 것은 꽤 어렵기 때문에 다들 저마다의 안락한 공간을 확보한 후 운동을 시작하곤 했다. 내가 늘 사용하는 줄넘기는 원색의 연두색 줄넘기로 그립감이 꽤 좋은 녀석이다. 너무 많은 이들의 손을 거친 터라 이미 옆구리가 터져버린 줄넘기도 있고 새로 들어와 다른 것보다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줄넘기도 있지만 도구를 탓하지 않는 편이 좋다. 하루 고작 10분 남짓의 시간일 뿐인데 도구를 탓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 아닐 수 없으니 말이다. 스트레칭으로도 채 풀리지 않는 몸은 줄넘기를 넘으며 완벽하게 풀리기 시작한다. 온 몸의 무게를 두 발에 실어 제자리를 뛰는 것 뿐인데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이 창 밖의 온도가 영하라는 것을 잊게 한다.

3분을 뛰고 30초 휴식 다시 3분을 뛰고 30초 휴식 그리고 마지막 3분을 뛰고 30초 휴식의 루틴을 끝내고 나면 복싱 전 워밍엄의 절반을 끝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몸이 채 풀리지 않거나 땀이 적당히 나지 않는 날이면 줄넘기를 한 세트 더 늘려주는데 고작 4세트를 뛰고도 숨을 헥헥거리는 나와는 달리 대회를 앞두고 워밍업을 하는 사람들은 과묵한 얼굴로 가뿐하게 줄을 넘곤 했다. 우연히 그런 사람들과 나란히 서서 줄을 넘기라도 하는 날에는 1분에도 몇 번씩 줄넘기 끝에 발이 걸리는 나와 그들의 흔들림없는 줄넘기 실력을 비교하게 된다.









벌써 두 달째 복싱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줄넘기 실력에 웃음이 난다. 노력과 실력은 꼭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한 가지 칭찬해주고 싶은 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나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 매일 노력하고 있다는 것. 오늘보다는 조금 더 줄넘기를 잘하게 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다보면 추운 바람이 사정없이 부는 날이나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도 체육관으로 향하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딱 이만큼의 삶의 자세로 오래오래 천천히 걸어가고 싶다. 복싱장에서 몸으로 배운 것들을 삶에 아낌없이 녹여가며 살고 싶어 졌다.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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