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싸움을 걸 용기

아무튼 복싱_ #4 마음의 근육

by Jessie


복싱이 나에게 주는 것들,


복싱장_어쩌다복싱4.jpg 복싱장 선택에 있어 우선순위는 1. 가격 2. 코치님의 내공 3. 거리의 순서였다.



복싱장을 고르는 일은 꽤 까다로웠다. 남편과 함께 할 생각이기도 하거니와 회사는 언제 그만둘지 모르기에 회사보다는 집 주변에 있는 복싱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집 주변에 있는 복싱장 세 곳을 하루에 모두 방문할 만큼 나는 복싱에 굉장히 목말라 있었다.(운동에 있어서는 마음먹은 것을 실행하는 능력이 아주 탁월하다) 나를 두 번째로 고려하고라도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집(혹은 지하철)에서 가까운 거리가 필수였는데 역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복싱장에는 껄렁껄렁(?)하고 문신을 하고 있는 어린 코치들이 꽤 여럿이라 나는 복싱장 문을 닫고 나오며 리스트 위에 엑스자를 그렸다. 물론 외모로 그들의 능력을 넘겨짚었던 것은 아니었다.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의 아주 작은 태도가 내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아무튼 다들 비슷한 가격대였기에 거리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코치님의 내공을 우선으로 복싱장을 선택하기로 남편과 합의를 했다. 그리고 결국 내가 선택한 곳은 반년 전, 프립을 통해 원데이 클래스로 복싱을 배웠던 곳이었다. 지하철역에서는 도보 13분, 집에서부터는 빠른 도보로 4분의 거리이기에 자칫 잘못하면 귀차니즘에게 지배당해 걸음을 옮기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는 곳 말이다. 거리보다는 코치님에 대한 내공이 우선이었기에 가능했던 선택이었다. 그리고 우리 둘 모두 사람에 대한 태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귀차니즘을 이겨내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던 것이다.






체육관 등록을 하러 간 날, 우리는 바로 붕대를 감고 글러브를 꼈다. 3개월 등록을 한 덕분에 붕대와 글러브를 받아 바로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고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전통 복싱은 생각보다 단단하고도 오밀조밀한 운동이었다.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 같은 동작을 반복 또 반복해야 했는데 체육관 기둥에 붙어있는 말마따나 복싱은 자기와의 싸움과도 같았다. 관장님이 차례대로 자세와 기본기를 잡아주시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혼자 거울을 보고 기본 동작을 단련하고 또 샌드백을 연습 삼아 치면서 스스로의 체력을 뛰어넘는 연습을 해야 했다. 체육관 거울 위에 붙어 있는 작은 텔레비전에는 세계적인 복싱 선수들의 경기 장면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급소를 가격 당하고 피를 흘리면서도 종이 울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대단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복싱은 링 위의 상대를 가격하고 쓰러트리는 싸움이 기본적인 모습이지만 링 위에 서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시켜야 비로소 링 위에 오를 수 있다. 링 위에 오른 뒤에는 어떤 대회에 출전했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시간으로 경기를 진행하게 된다. 아마추어를 비롯해 지역 선수권, 세계선수권 대회 등은 3분의 시간 동안 상대와 싸우고 1분간 휴식을 가지는 룰로 3회전이 진행된다. 프로 선수의 경우는 한국은 10회전, 동양 타이틀은 12회, 세계 타이틀은 15회이니 엄청난 체력 싸움이 아닐 수가 없다. 상대와의 싸움이 주를 이루는 전반이라면 자신과의 싸움이 주가 되는 후반을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연습에 매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매번 내게 싸움을 걸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더 중요하다. / 파퀴아오



거울 속에서 인생의 크고 작은 경기들에 패배 판정을 받고 잔뜩 움츠러든 내 모습을 봤다. 마음속에 이렇다 할 근육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채로 사는 것이 맞는 지를 자꾸만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체력도 없이 시작한 일들이 오래가지 못하고 금세 시들고 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관장님이 작은 텔레비전에 흠뻑 빠진 나를 보며 이야기를 건네셨다.


"스스로와의 싸움을 통해 체력을 잘 길러둔 사람이야말로 마지막 라운드까지 견뎌서 위너가 되더라고요"


상대와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수많은 핑계들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체력과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가는 일임을 체육관을 나서며 생각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며 기초체력을 쌓아나간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조차도 꾸준히 해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매일 줄넘기를 하며 느꼈다. 크고 거창한 것이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들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는 내가 바뀌는 일이고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 가는 일임을 운동을 하며 배워가고 있다. 나는 매일 복싱장에서 마음의 근육을 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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