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연료로 멀리 날아가는 사람

감정일기 #불안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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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명사]

1.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함.

2. 분위기 따위가 술렁거리어 뒤숭숭함.

3. 몸이 편안하지 아니함




미국에서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25살, 그 때의 나는 미국에서 먹었던 마음을 현실에서 이뤄내기 위해 돈이 필요했는데 운이 좋게도 요가 학원의 원장님이 운영하시던 영어 학원 보조 선생님 역할과 함께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을 맡는 기회를 우연히 얻게 되었다. 특히 방과 후 수업을 했던 곳은 내가 국민학생이라는 이름으로 2년의 시간을 보낸 시골의 초등학교였기에 그 곳이 주는 의미는 나에게는 조금 더 특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읍내에 있던 조금 더 큰 초등학교로 전학을 갈 때 즈음에는 다른 아이들도 하나 둘 농촌을 떠나며 시끌벅적했던 교정은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내가 어른이 되어 그곳을 찾았을 때에는 한 반에 스무명도 채 안되는 아이들만이 학교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곧 폐교 위기를 앞두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봄에 피는 식물들처럼 푸르렀다. 주변이 온통 논과 개구리 소리로 둘러 쌓인 그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대게는 영어나 국어보다는 사랑과 관심이 더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대부분이 부모님의 손보다는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 밑에서 크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3일을 그 곳에서 일했다. 내 수업이 있기 한 시간 전에는 원어민 교사인 세스가 수업을 진행했는데 하루 이틀 그렇게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얼굴을 익히며 우리는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회색의 눈동자, 금발의 곱슬머리. 전형적인 미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던 세스는 말 통하는 이가 없는 작은 마을에서 나를 만난 것을 반가워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시골 마을을 한참 걸어 버스를 타러 가던 길이었다. 세스는 본인의 친구들과 함께 진해 군항제에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궁금했던 나는 망설임없이 그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 우리는 진해행 버스에 올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보는 진해 그리고 그 곳으로 향하는 버스는 상상 이상으로 북적였고 우리는 극적으로 버스의 마지막 탑승객이 되어 진해로 출발했다.


세스와 나 그리고 그의 친구 2명까지 우리는 운전 기사님의 옆 자리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기사님이 주신 엿을 나눠 먹으며 그동안 서로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하나 둘 읊어대기 시작했다. 내가 플로리다의 디즈니 월드에서 일을 했다던 이야기에 그들은 흥미를 보였지만 사실 나는 한국까지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온 그들의 삶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이리도 먼 나라까지 긴 여행을 떠나온 것인지 말이다.

그 중 가장 점잖고도 호기심이 가득했던 친구 데이빗이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의 순간을 나는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그의 이야기는 내가 지금껏 들어온 이야기 중 가장 반짝이고도 흥미로운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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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친구와 기숙사에 누워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나누던 중이었다. 막연한 미래와 불안감을 앞에 두고 침묵만 흐르고 있을 때 그와 함께 있던 친구가 지구본을 들고 와 그의 곁에 앉았다. 친구는 지구본을 돌리며 어디든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장난처럼 그에게 던졌다. 불안에 시간을 허비하기 보단 불안을 동력삼아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서 경험을 쌓아보자고 말이다. 그들은 지구본을 돌려 손가락이 가르키는 장소를 향해 무작정 떠나기로 했다. 무모한 청춘이 가리킨 곳은 지구본 위 아주 푸르고 드넓은 망망대해였지만 구글 맵으로 확대해 본 그 곳에는 아주 작은 섬이 있었다. 그들은 그 곳으로 가기 위해 섬의 크고 작은 기관들에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숙식을 제공받으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 있으니 불러달라는 것이 이 청춘의 무모한 제안이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그 섬에 있던 누군가의 회신 덕분에 몇 개월 후 거짓말처럼 그들은 그 섬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들은 난생 처음 들어본 나라에서 청춘을 소비했다. 바다와 머지 않은 숙소에 머물며 햇살처럼 맑고 투명한 아이들과 때론 바다가 너무 파랗다는 핑계로, 때론 하늘에 구름 한점 없다는 핑계로 수업 대신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며 공놀이를 하고 물고기를 잡고, 미국에서 들고 간 프링글스 통으로 허술하고도 어설픈 로켓을 만들어 하늘로 날려 보내기도 했다. 친구들이 다 가지고 있는 스펙 하나 쌓지 못했지만 대신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게 청춘을 낭비했노라고 그는 말했다. 2년의 꿈같은 시간이 지나고 그의 친구는 취업을 위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을 때 데이빗은 또 다른 불안을 소비하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끊었다. 그리고 벚꽃이 하얗게 핀 4월의 어느 날 우연처럼 나와 진해를 여행하는 중이었다.



나는 불안을 곁에 두고도 이토록 밝은 사람을 지금껏 본적이 없었다. 직장을 잡고 아이를 가진 친구들의 삶이 부럽지 않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당장 내일을 알 수 없지만 무작정 떠나온 자신의 삶이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말하며 그는 되려 웃어 보였다. 스스로를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어느 곳으로 흘러간다해도 결국 바다에 이르기 위함이었다며 웃을 수 있는 사람, 나는 그 친구가 지나쳐 온 시간들이 무척이고 마음에 들었다. 불안과 무모함을 순풍으로 만들어 더 먼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그의 능력이야말로 오늘의 우리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이었다고 나는 그에게 몇 번이고 알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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