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다시 일어서게 할 경험
모든 선택에는 정답과 오답이 공존합니다.
그러니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지 말고 선택을 해봤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겁니다.
/ '여덟 단어' 중에서
나는 나를 꾸미는 일에 꽤나 인색한 사람이다. 겉치장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을 포장하는 것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 우둔하게도 여전히 진심이 통한다고 믿는 부류의 사람 말이다. 이런 성격 때문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스스로에게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요?'라는 말을 듣곤 한다. 이건 아마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너무 오래 입고 있던 탓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면서 쉽사리 다른 옷을 찾아 입지 못했기 때문에 말이다.
나이가 서른셋이 되도록 직업운이 없어 몇 번이고 사표를 냈고 3년이라는 시간 동안 5번의 직장을 경험했다. 미국과 호주, 산티아고 순례길을 아낌없이 경험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내 나이는 스물아홉의 1분기를 넘기는 중이었고 나는 지인분을 통해 어렵사리 면접 자리를 얻어 헬스케어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스물여덟의 끄트머리에 저지른 단 한 번의 실수로 산더미처럼 쌓인 마음의 빚과 마이너스를 갱신 중인 통장 그리고 어렵사리 구한 어두침침한 원룸이 내가 스물아홉에 마주하고 있는 리얼한 현실이었다. 나에게 맞는 직업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조차 사치였던 시간들이었기에 나는 어느 곳이든 뽑아주신다면 열심히 하겠다며 반짝이는 눈으로 면접을 보았지만 애써 꾸며내는 것들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런 나의 고민을 토로할 때면 직장 생활을 오래 해온 지인들은 나에게 '철이 없는 것 같다'라거나 '다들 그렇게 살아'라는 말을 하곤 했다. 어렵사리 한국에 돌아와 서울 한 복판에 취업을 했지만 이미 주임이나 대리 직급을 달고 있는 의젓한 직장인 친구들과 만나고 돌아오는 날엔 자꾸만 신림으로 향하는 지하철과 짙은 회색의 아스팔트만 바라보며 내 처지가 점차 서글프게 느껴지곤 했다.
한 때는 호주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다. 호주의 서쪽에서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좋은 경험을 나누는 일이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잘하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일 년 중 300일 이상이 맑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유롭고 너그러웠으며 그들에게는 배울 점이 많았다. 아무도 없는 도시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매일 블로그의 일기에 써내려갔고 이따금 그 곳에 남겨지는 모르는 이의 위로와 공감이 4년이라는 시간동안 나를 그 도시에서 살아가게 했다. 할 수만 있다면 평생을 살아도 좋을 것 같은 꿈의 도시였다. (물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으니 더 운명 같은 도시라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매일의 장면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내 모습을 부러워하던 이들이 많았지만 사실 프레임 밖에는 꽤 아이러니한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있었다. 우연히 나와 함께 일을 했던 경험이 있던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는 그런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제안을 했다.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하는 것은 두 번째 이유였고 첫 번째 이유는 존중받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이따금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과 싸우는 나를 그가 보게 되면서부터 였다. 나는 스물아홉에서야 비로소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었다.
눈이 몇 번이고 내렸던 2017년도의 겨울. 쌈짓돈으로 집을 구하기 위해 서울대 입구역의 언덕배기를 걸어다닌 기억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꽤나 생생하다. 친구의 집에 얹혀 눈치를 봐야하는 피곤함과 함께 500만원의 보증금으로는 제대로 된 지상층의 방을 구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직접 경험하던 중이었다. 얇은 천 운동화에 그리 두껍지 않은 겨울 옷을 입고 마주했던 1월의 추위 그리고 "500만원으로는 반지하 집 밖에 못 구해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부동산 중개인의 말을 들으며 한참이나 만지작 거렸던 구멍난 호주머니의 감촉은 시간이 오래 지난 뒤에도 손 끝에 남아 있었다.
회사가 끝난 저녁, 캔 맥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는 어두운 방 한 켠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그 시절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주위 사람들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나의 처지와 감정들을 문장으로 써내려가는 일이었다. 까끌거리던 호주머니의 감촉이 남아있는 손가락으로 슬픔을 덜어내고 희망을 채워넣은 문장들을 마무리하면서 몇 번이고 눈가를 훔치던 노력은 1년 치 방 값을 지원해주는 공모전에 당선이 되는 행운을 가져다 주었고 나는 그제서야 반지하가 아닌 지상층의 원룸을 어렵사리 얻을 수 있었다. 나의 가장 지질했던 경험을 팔아 돈을 벌었던 웃픈 순간이었지만 이 경험 덕분에 나는 오늘까지도 문장을 써내려가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결혼 준비하는 일을 글로 써서 결혼 준비에 작은 용돈을 보탰고 요즘은 남편과 살아가는 시간들을 그림과 글로 담는 일들을 하고 있다)
글을 쓰는 일과는 별개로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에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몇 해를 버텼지만 올 해는 유독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진지하게 제안을 했다. 당장 입에 풀칠하는 일보다도 '잘 어울리는 일'을 조금 더 찾아보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내년 초면 끝날 전세 계약과 언젠가 생길 2세를 생각한다면 쉽게 꺼낼 수 없을 제안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실패와 불안을 연료 삼아 문장을 써내려가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1년 하고도 9개월을 다닌 회사에 사표를 냈다. 어떤 경험이든 그 것이 내일의 우리에게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줄 거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남편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처음으로 돌아가 용기를 담은 문장들을 써내려가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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