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아빠의 일상 관찰기
서울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만 하더라도 나는 평화롭고 따뜻한 고향살이를 꿈꾸고 있었다. 서울에서 첫 신혼살림을 꾸리던 당시 그리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적당한 가격의 가전제품과 가구들만을 들여놓은 덕분에 큰 미련 없이 대부분의 것들을 처분할 수 있었고 나름의 가벼운 몸으로 고향에 돌아온 것이라 자부했다. 그렇게 시골살이가 평화로울 거라고 단정 지어버린 건 모두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무려 15번이나 본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고향은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와도 여전히 한결같은 모습이었지만 나와 아빠는 그 '한결같음'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서른이 훌쩍 넘은 딸과 딸이 데려온 두 식구(뱃 속의 아기와 반려견) 그리고 환갑을 앞둔 채 명예퇴직을 한 아빠의 관계가 집 안의 평화를 깨는 가장 큰 복병이 되리라는 것은 올 해가 시작될 때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반년 전, 아빠는 35년의 직장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회사의 해외 이전을 갑작스레 통보한 사측과의 해결을 위해 길거리 투쟁과 노숙을 감행하던 아빠는 결국 1년 만에 현실과 타협을 하고 퇴직을 선택한 것이었다. 아빠는 늘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언젠가는 산속에서 움막을 짓고 사는 삶을 꿈꿨다. 일은 지겹게 해왔으니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겠다며 퇴직을 하기 전부터 가족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던 아빠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아빠는 우리에게 선언했던 것처럼 자유롭게 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빠가 마냥 행복해 보이지 않는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빠는 자주 술을 마셨다. 평소 말이 없고 무뚝뚝한 아빠가 현실에서 유일하게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술을 먹고 본인을 온전히 놓아버리는 일뿐인 이유에서였다. 술에 취해서야 속에 있던 말들을 겨우 입 밖으로 꺼내놓곤 하던 아빠와 임신을 하고 잔뜩 예민해진 내가 싸우게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고 고향에 돌아온 내가 느끼는 감정은 행복만큼이나 차곡차곡 쌓인 불만이었다. 출가외인이 되어버린 나와 아빠가 같은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일은 반가운만큼이나 어색한 일이었다. 아빠는 농사를 돕는다는 핑계로 매일 아침마다 10분 거리의 할머니 댁으로 무심하게 차를 몰고 가곤 했다. (무언가를 꼭 하지 않더라도 장성한 자식과 하루 종일 같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전의 할 일이 끝나고 점심시간 즈음이면 아빠는 늘 나에게 점심을 먹었는지 전화로 물어왔다. 혼자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특히나 혼자 밖에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아빠의 인생에서는 그리 많지 않은 이유에서 일게다. 부른 배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 늘 아빠는 거실의 소파에 누워 또 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 각자의 공간을 저마다의 소리로 채우곤 했다. 그렇게 매일 살얼음판 위를 걷던 우리에게 봄이 찾아오게 된 계기는 바로 내가 데리고 온 반려견에서부터 였다.
아빠는 무언가를 책임지는 일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채 중립노선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다만, 어린 시절 길에서 만난 유기견을 무작정 집으로 데리고 갔을 때 아빠는 무척이나 단호하게 거절을 했었는데 강아지를 처음 만난 곳에 데려다 두고 눈물을 훔치며 돌아오던 나와 동생에게 아빠가 하신 말씀은 "결혼해서 뭘 키우든 상관 안 할 테니 그때 가서 키워"였다. 그리고 20년 전의 말씀대로 나는 반려견을 가족으로 데리고 오게 되었고 임신을 하면서 나에게 딸린 식솔들까지 모두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아무리 중립노선을 지키던 아빠라지만 임신을 한 딸이 데리고 들어온 강아지라고 마냥 반가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부모님이 살고 계신 아파트는 지어진지 20년이 훌쩍 넘은 노후된 건물이라 방음에 무척이나 취약해 소음문제가 자주 불거지고 있었기에 분리불안이 생긴 나의 강아지가 마냥 예뻐 보일리는 만무했다. 처음에는 몇 번이고 우리를 서럽게 대하던 아빠는 반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지내며 조금씩 강아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나의 산부인과 일정으로 부득이하게 아빠에게 강아지를 맡기던 날이면 집에는 늘 못 보던 강아지 간식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요즘은 늦은 오후와 저녁까지 하루 두 번, 아빠와 함께 강아지는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다. 아빠는 본인의 일상에 해야 할 일이 생긴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는 듯 보인다. 회사를 다닐 때보다 훨씬 왜소하고 야위었지만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갈 때의 뒷모습은 내가 성장하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장면이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집에 들어오면 본인을 반겨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에 대해 아마도 큰 위로를 받고 계신 모양이다. 나이를 먹고 은퇴를 한 뒤 자꾸만 작아져가는 자기 자신을 채 인정할 수 없는 순간에도 늘 한결같이 본인을 반겨주는 존재에게 아빠는 요즘 많은 마음을 쏟고 있다. 함께 발 맞춰 산책하며 느끼는 행복, 장난감을 물어와 놀아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모습,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현관에서 반겨주는 모습에서 아빠는 요즘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쁨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기쁨이자, 남편과 나의 소중한 가족이었던 반려견이 아빠에게도 어느새 소중한 가족이자 친구가 되어주어서 늘 감사하고 고마운 요즘. 반려동물이 댓가없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사랑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자꾸만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