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첫 여행
얼마 전 엄마와 함께 첫 여행을 다녀왔다. 샛별이를 낳고 100일이 되었음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의미에서 남편이 경주의 호텔을 예약해 준 덕분이었다. 서른넷의 인생을 사는 동안 엄마와 단 둘이 떠나는 일이 처음이라 나는 꽤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단풍으로 사람이 북적거리는 경주로 향하는 한 시간 동안 엄마는 아이처럼 가방에서 대추즙이나 바나나 같은 간식거리를 하나둘 꺼내어 운전하는 내 입에 넣어주었다. 첫 여행이니 괜히 짐 되는 것들은 가져오지 말고 사 먹자는 내 이야기에도 엄마는 기어이 무언가를 챙겨야 마음이 편한 모양이었다.
엄마는 이곳 경주에서 신혼여행이라는 명분으로 코오롱 호텔에 묵었다고 했다. 선을 본 남자와 세 번째 만남에 결혼을 하는 황당한 일이 그 옛날에는 꽤 흔했다고 하니 가히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그날 밤 허니문 베이비로 내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결국 스물셋의 엄마에게 달콤한 신혼과 다정한 남편이라는 말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그때 그 결혼이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를 이야기하며 보문단지로 향했다. 단풍철을 맞은 경주는 꽤나 붐볐다. 이따금 사고 난 차량을 지나치며 운전이 능숙하지 않은 나는 꽤 진땀을 흘려야 했지만 한껏 들뜬 엄마는 빨갛게 물든 가로수들을 보며 소녀처럼 설레어하고 있었다.
보문단지에 있는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배정받은 방으로 향했다. 엄마는 내가 꺼내 준 호텔 실내화를 갈아 신고 테라스에 앉아 경주월드를 바라보다가 문득 가장 무섭다고 소문난 경주월드의 놀이기구를 타봤노라고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어쩌면 나의 꽤 도전적인 성향은 엄마에게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우리는 빼곡하게 들어차 있던 도로를 떠올리며 첨성대 쪽으로 가보기로 한 일정을 변경해 엑스포공원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걷는 걸 좋아하는 엄마와 나는 운동화로 갈아 신고 공원을 하염없이 걸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미술관과 박물관에 가본 적이 없다는 엄마의 이야기에 이번 경주여행은 엄마에게 '처음'을 선물하는 일을 하겠노라 다짐했는데 엑스포공원의 미술관에서 미술작품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조금은 고생스럽지만 몇 번이고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나는 주위가 깜깜해지는 시간까지 하염없이 걷고 멈춰 서며 처음으로 단 둘이 가을을 즐겼다. 내가 친정집에 두고 간 원피스, 스카프로 잔뜩 멋을 낸 엄마를 뷰파인더로 보고 있노라니 그간 엄마에게 옷 한 벌 사준 적이 없었던 가난한 나의 지난날들이 떠올라 괜히 고개가 무거워졌다.
언젠가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장모님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말이다. 엄마는 딱히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파스타를 먹으러 가본 적도 없다는 이야기에 이번 여행에서는 꼭 근사한 식당에서 맛있는 파스타를 대접해드리겠노라 생각했었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지역 사람들에게 꽤 정평이 나있는 이탈리안 식당에서 명란 크림 파스타와 바질 페스토 피자 그리고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다. 에이드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파스타를 한 입 먹을 때마다 맛있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엄마의 접시 위에 피자를 얹어둔다. 애교가 없는 딸의 가장 날 것의 애정표현은 이렇듯 일상적이기만 하다.
우리는 맥주 한 캔과 과자를 사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목욕가운을 입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엄마와 '엄마로 사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샛별이를 낳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나의 수많은 '처음'은 엄마와 함께였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체온을 나눈 것도, 숟가락을 처음 쥐던 순간도, 옹알이를 하며 엄마를 부르던 일도, 처음으로 걸음을 떼던 날도, 유치원에 첫 등원하던 장면도 말이다. 앞으로 남은 우리의 가장 젊은 날들 중 내가 엄마에게 줄 수 있는 '처음'을 아무리 끌어모아도 엄마가 나에게 준 '처음'만큼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처음'들이 우리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기꺼이 조금 더 나를 희생하겠노라고. 아이처럼 설레어 침대에서 한참을 뒤척이는 엄마를 보며 부디 그녀에게 더 값진 '처음'의 순간들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