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도 반짝이는 시절이 있었다는 걸
엄마의 유일한 자유는 아이가 잠들고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걸음마를 떼기 위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붙잡고 서기 시작한 아이는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어딘가에 상처를 남기기 십상이어서 요즘의 나에게 여유는 사치가 되어버렸다. 아이가 깨어있는 동안에는 화장실에서 마음 놓고 볼 일을 보거나 식사 준비를 하는 일까지도 쉽지 않은 엄마의 삶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만 하는 역할이었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존재이지만 아이의 낮잠 시간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건 아마 세상 모든 부모들의 모습이 아닐까. 아이는 잠잘 때 제일 예쁘다던 누군가의 농담을 떠올리며 이젠 나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아주 조금은 육아에 일가견이 생겼다.
오전 일곱 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는 바늘이 열 시를 가리키기 시작하면서부터 눈을 비비기 시작한다. 그 틈을 타 자장가를 켜고 쪽쪽이를 물려보지만 한참을 침대에 누워 함께 뒹굴거려야 아이는 겨우 잠이 든다. 나 역시 그 곁에 누워 달콤한 낮잠을 자고 싶지만 아이가 잠들어야 비로소 가질 수 있는 나만의 자유를 포기할 수 없어서 엄청난 유혹을 뿌리치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식탁에 앉는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거나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일 그리고 이따금 글을 쓰는 것이 바로 그 길지 않은 아이의 낮잠 시간 동안의 내 작고 소중한 일과이다.
늘 똑같은 삶에 신물을 느끼던 어느 날, 아이를 재우고 비로소 찾은 자유에 기쁨의 만세를 부르며 책상에 앉았을 때였다.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아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책상 구석에서 외장하드 주머니를 발견했다. 외장하드에는 미국에서부터 호주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길 풍경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추억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담겨 있었다. 디즈니월드에서 일하며 몇 달간 열심히 모은 돈으로 블랙 프라이데이에 구매했던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는 몇 년의 시간 동안 대륙과 대륙 그리고 섬과 섬 사이를 넘나들며 인간이 채 넘볼 수 없는 자연과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 그리고 사람 냄새 가득한 누군가들의 뒷모습을 담았다. 몇 년 동안 꿈꾸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동행해준 존재이기도 했으니 함께 했던 시간만큼이나 무모하고 아름다웠던 청춘이 앵글에 담은 사진도 늘어갔다.
하지만 철없는 청춘에게도 한계는 늘 존재하는 법이었다. 언제까지고 가벼운 주머니의 방랑자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뒤늦게 돌아온 한국에서 나는 매 달 돌아오는 월세를 메우느라, 눈 깜짝할 새 바뀌어버리는 사회에 적응하느라 또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사느라 과거의 무모하고 푸르렀던 청춘의 기억을 하나 둘 잊고 살게 되었다. 늦기 전에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어야 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동안 추억들은 점차 바래져갔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정신없이 엄마가 되어 하루하루를 가까스로 버티던 내가 그 외장하드를 발견하게 된 것은 꽤나 감사한 일이었다. 맥주 한 잔을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오래된 보물상자를 꺼내보는 기분은 마치 겨울 코트 주머니에서 잊고 있던 지폐 한 장을 마주한 느낌이랄까. 아이를 키우느라 한참이나 잊고 지냈던 내가 사진 속에서 아주 환하게 웃고 있었다. 행복할 때는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어떤 풍경인지, 5년이나 간절히 바랐던 순례길 위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웃었는지를 외장하드 속 사진들이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유식이 여기저기 묻어있는 티셔츠를 입고 땀에 절은 채로 산책을 하는 오늘의 내가 있기 이전에 분명 운동화 끈을 단단히 고쳐 묶고 석양이 지는 호주의 강변을 달리던 내가 있었고, 10킬로그램의 배낭을 짊어지고 멀디 먼 스페인 땅을 횡단하던 내가 있었고, 백혈병 아이들을 돕기 위해 자전거로 사막을 횡단하던 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가장 자유로웠지만 늘 불안하고도 미숙한 존재였다.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끝도 없이 고민하면서 남과 스스로를 비교하고 채찍질하며 살았다. 선택의 오롯한 책임을 지는 일이 버겁고 어렵던 시절이었다. 밝게 웃는 사진 뒤에는 종종 그 불안을 이기지 못해 벌겋게 변한 눈으로 잠이 들던 내가 있었다. 가정을 꾸린 지금은 까마득한 불안 대신 치열하게 현실을 마주하고, '엄마'로서 책임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중이다. 울었던 기억이 까마득할 정도로 하루하루를 쉴 틈 없이 아이와 강아지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지낸다.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쌔근쌔근 꿈나라로 떠난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분명 지금의 선택이 훗날 후회로 남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충 올려 묶은 머리의 거울 속 내가 안쓰러워 보이거나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보고 목이 메일 때, 아무렇게나 허기를 채우는 엄마로서의 삶이 버거워질 때면 늦은 밤 가끔 외장하드를 꺼내 여행을 떠나겠노라고 마음먹어 본다. 시원하게 들이켜는 맥주 한 잔의 취기가 함께라면 여행은 충분히 충만해질테니까. 불안했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웠던 청춘이 나에게도 존재했다는 사실이, 엄마의 삶 이전에 나에게도 반짝이는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오늘을 견디는 충분한 위로가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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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철들지 않은 3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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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전히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