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에서 쓰고 그리는 그림일기
남편의 휴무일에도 종종 남편의 회사 혹은 인근으로 작은 소풍을 간다. 주말 내내 아이와 어디서 시간을 보낼지를 고민하는 일이 쉽지 않기도 하지만 가끔 남편이 회사에 놀러 가는 일을 제안해 주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정말 해야 할 일이 많다) 덕분에 남편이 자주 가는 밥집에서 현지식(분띳느엉)을 먹기도 하고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현지 카페에 앉아 커피(카페 쓰어다)를 마신다.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인사 연습을 시키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어젠 남편 회사의 프로젝트 촬영을 구경하기 위해 회사를 따라나섰다. 어설프지만 남편이 사준 중고 카메라를 어깨 한쪽에 메고 말이다. 현장을 둘러보며 남편이 어떤 모습으로 일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지, 어떤 생각으로 호치민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어렴풋이 느끼고 돌아왔다. 어린 시절에는 공장에서 일하시는 아버지의 일터 견학 같은 숙제가 종종 있기도 했는데 다 큰 어른이 되어서 돌아보니, 아빠가 일하시는 현장을 방문하고 땀의 가치를 느끼고 돌아오는 일은 꽤나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알루미늄을 압축하고 찍어내는 기계 작업을 하던 아빠의 35년 지기 삶.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두툼하게 입고 희미한 담배 냄새를 풍기며 돌아오던 모습들이 그저 당연하게 느껴지던 시간들이었는데,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서 그때를 돌아보니 책임감을 가지고 누군가를 먹여 살리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도 가치 있는 일인지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삶의 가치로움을 한껏 느끼고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남편의 손을 잡는다. 그간 흘러온 세월의 흔적이 몇 개의 파도가 되어 남았다.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돌아오던 날, 모두 내려놓고 싶었던 날, 구멍 난 양말을 보며 고단했던 그런 날들마다 파도가 밀려와 주름이 되었을 것이다.
밀려왔다가 다시 되돌아가기도 하면서.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스스로 위안하기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