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익은 것들을 놓아보는 연습
남편은 종종 나를 마이너스의 손이라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만지는 많은 것들은 곧 유명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남편을 만났을 때부터 많은 것들이 나를 만나서 부서지고 상하고 또 깨지며 흔적 없이 사라졌다. 오늘은 역시나 설거지를 하다가 아끼고 아끼던 컵을 깨고야 말았다. 좋아하던 카페에서 사장님과 친해지며 받았던 리미티드 굿즈였는데 잠깐의 실수로 컵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말았다. 청소기로 몇 번이나 바닥을 밀고 행주로 바닥을 훔치며 나의 칠칠맞음을 추스른다. 다시는 쓸 수 없는 컵을 아쉬워하면서.
이런 나의 성격은 물건에 대한 욕심을 확실히 내려놓게 만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것도 물건에 대한 욕심을 사라지게 한 또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삶과 죽음이 이렇게나 가까이 있는데 무언가를 소유하려고 발버둥 치는 일들에 무의미함을 느끼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들에 크게 마음을 두지 않는다. 멋지고 깨끗한 옷을 사고 싶을 때도 있지만 요즘의 내 옷은 아이와 함께 놀아줄 때 그리고 운동할 때. 딱 두 가지 버전으로 정해져 있고 또 살아가는데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신발도 두세 켤레로 늘 돌려 신고 냉장고도 꽤나 비어있을 때가 많지만 꽉 차 있는 것보다는 부족함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아끼는 것들이 서너 가지로 정해지고 늘 똑같은 패턴으로 같은 물건을 쓰며 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나를 안정적으로 만든다. 가지고 있는 것들에 더 마음을 쓰고 소중히 여기게 된다. 가격을 떠나서, 내 손에 익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 물건은 그것으로 충분히 나에게 가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처럼. 가진 것이 없고 보풀이 잔뜩 일어났을지라도,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사람을 내가 만난 것처럼.
아끼는 컵을 이렇게 보내게 되었지만, 이 기회로 다시 취향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쇼핑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나에게는 또다시 시험적인 시간이 되겠지만 내 손에 꼭 맞는, 글을 쓸 때마다 내 곁에서 함께 해줄 반려컵을 찾기 위해 또다시 노력을 쏟는 시간이다. 보내줘야 다시 또 새로운 것을 얻게 되는 법. 세상의 모든 이치처럼. 낡고 닳아버린 것을 내려놓고 나에게 맞는 무언가를 찾아낼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