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는 용기
연필을 좋아합니다. 무엇이든 시도해 보고 직접 경험해 봐야 직성에 풀리는 성격인 저에게,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는 점은 무엇보다 큰 매력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펜처럼 분명하고 또박또박한 필체로 글씨 쓰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선명한 필체로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나답다고 믿었던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저는 그때와는 달라진 것 같기도 합니다. 부드럽지만 꾸준히, 자기만의 흔적을 남기는 방식에 조금 더 마음이 끌립니다. 그런 사람들은 틀리고 실수하는 일 앞에서도 주저함이 없으니까요. 저 역시 그런 태도를 닮아가고 싶었던 이유에서 입니다.
무언가가 사고 싶어질 때면 문구점으로 달려갑니다. 그곳에는 HB, 2B, 4B 연필들이 빼곡히 꽂혀 각자의 농도와 짙음을 품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흑연의 비율이 높을수록 부드럽고 진하게 표현되고, 점토가 많을수록 단단하고 옅어지는 연필심의 특징을 떠올리며 한동안 연필을 쥐어봅니다. 디자인을 보고 연필을 고르기도 하지만 결국은 쥐었을 때 가장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연필을 주로 선택하는 편입니다.
요즘의 저는 까만색의 2B 연필을 애용합니다. 크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생각을 부드럽게 써 내려갈 수 있다는 점에서 꽤나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낙서를 하기에도 좋은 도구입니다.
한 해씩 나이를 먹어갈수록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일은 점점 막연해지고, 그것은 종종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그래도 올해만큼은 연필의 도움으로 그 두려움을 조금은 가볍게 지워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