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피해의식도, 비현실적 낙관도 아닌 현실 인식이다.
0. 신년이다. 1월부터 2월 내내 새해복 많이 받으라는 말과 함께 모든 단톡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다. 한 단톡에서 어떤 멘토는 "한국이 참 젊은 사람들 능력 대비 살기 어려운 나라인것 같다" 라고 했다. 그러게. 왜 이렇게 됬을까. 힘들다 힘들다 이야기는 많아도 왜 이렇게 됬을까 라는 고찰은 적은 화두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피해의식도, "그래도 해가 뜰거야!"라는 비현실적 낙관도 아닌 현실 인식이기에 이 글을 쓴다.
1. 단군 아래 최고의 스펙을 갗춘 90년대 베이비 붐 세대의 앞날은 막막하다. 앞날은 하루하루 바뀌어 가는데 이수한 교육 과정은 낡은 것들 뿐이다. 소위 명문대라는 학교 출신의 졸업생도 당장 생존을 위해 취업지옥에서 아등바등 발버둥친다. 취업을 한다 해서 계속되는 경쟁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건 뭐지" 직장인 사춘기에 시달린다.
2.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며 전 세계적으로 힘들어지고 있고 경제성장 대비 분배구조가 열악한 한국에서는 중산층 가구의 20대 자녀들은 난민이 된다.
취업난민, 주거난민, 자신을 더 알아가고 싶은데 YOLO라는 상업적 패러다임 속에서 허우적대는 난민.
3. 내가 직장에서, 사회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겪은 바에 기반해서 생각해 봤을 때, 이러한 사회 현상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부실한 교육제도다. 내가 종사하는 업계가 광고, 마케팅, 디지털으로 변화의 일선에 서있는 분야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세상이 하루하루 변해 간다. 그런데 교육제도가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낡은 교육을 이수한 교대생, 교육학과생들이 어떻게 코딩을 가르칠 수 있을까. 언어든 생활양식이든, 인간은 모방을 통해 배운다. 책에 나와 있는 개론으로 시험보는 임용고시는 과연 변하는 세상의 지식들을 반영하고 있는가.
학생들에게 변하는 세상 속 변하지 않는 가치는 뭐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자세는 어떤 것인지 알려줘야 하는데 지난 12년간 공통교육과정을 겪어온 나로서는 그런 건 교육 제도에서 1도 못배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아직도 기억나는 중학교 기술가정 과목 시험 문제는 닭강정 레시피를 외우는 거였는데 상식적으로 닭강정 레시피는 가정마다, 식당마다 다른 건데 그걸 그렇게 외우고 조금이라도 틀리면 틀렸다고 했다.
3-1. 제조업 기반의 산업 패러다임 속 정형화된 노동자를 찍어대던 교육제도의 수명은 이미 다했다. 각국의 선진국들은 새로운 교육 제도를 설립하기 위해 혈안이다. 대한민국의 사교육 시장과 유학시장, 대안 학교가 이렇게 부흥하는 것은 공교육 체제가 부실하다는 것을 어느정도 보여주는 반증이다.
4. 80년대, 90년대를 거쳐 대한민국은 분단 이후 유례없는 성장을 했다. 그 시대 역시 지금의 21세기처럼 폭풍과 격동의 시기였을 거다. 노력한 사람들은 중산층이 되어 국가 경제의 든든한 근간이 되었고 새로운 산업 먹거리를 우연적으로 접한 일부 계층의 부는 증식하고 축적되었다. 교육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급변하는 사회와 달리 고정적었다. 지금도 통탄할 정도로 고정적이다. (내가 한국지리를 배울때 울릉도의 지역 특색은 우데기 였는데 한국지리 선생님이 자기 때도 우데기를 외웠는데 지금 울릉도에서 우데기는 볼 수도 없다고 했다. )
낡은 교욱 제도 속에서 닥치고 열심히 해라 라는 기조 안에서 열심히 살아온 젊은 세대는 막막하다. 이제까지 배워 온 것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90년대 생의 전반적인 특징은 청춘 특유의 투지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5. 교육 체계의 노후화에 이어서 여기서 또다른 원인이 발생한다. 고도 성장의 역사 속 한국은 세대별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여기서 형성된 20대의 특징 역시 현재 상황에서 불리하다.
5-1. 지금의 40대-50대, 즉 1960년대 70년대 출생들은 현재 대기업이든 중기업이든 사회 각 분야에서 최고위층, 리더 계층에 포진해 있다. 제조업과 기반 산업, 정보화 사회의 각종 산업 혁명을 몸으로 받아내며 산업을 리드한 그들은 현장에서 숨쉬며 지금의 산업 기반을 만들었다. 군부독재와 격동의 시기 속 투지와 끈기로 자신들의 산업을 키웠다.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 대한민국에서 그들은 투사였다. 지금도 그들은 강하다. 중산층은 중산층대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학 등록금을 충당하며 자녀들을 대학에 보낵내고 부동산 규모를 늘렸다.
그당시 성장했던 제조와 건설 분야의 회사들이 아직도 빡센 사내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다 싶다. 이어서 꼰대의 역설도 여기서 시작될 지도 모르겠다.
5-2. 30대의 경우 1차 베이비 붐 세대인 40-65년생의 이른 산업군 포진으로 그들이 설 자리가 많이 없었다. 산업고도화와 성장의 역사를 함께온 그들 역시 강하지만 그들의 특징은 선포진한 윗세대에게 반항심리가 강하다는 거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 시대의 tension point 를 자극하며 문화의 아이콘이 됬다.
5-3. 지금의 20대는 앞선 두 세대에 비하면 순둥이다. 산업이 고도화되고 체계가 정립되며 강한 윗세대는 아래 세대에게 기존의 지식을 먼저 습득하게 했다. 객관식과 주관식으로 이루어진 미리 정해진 답을 찾게 하는 지금의 교육 체계가 그렇다. 객관식과 주관식은 원래 있었지만 미리 정해진 지식이 더욱 공고한 위상을 지니며 20대는 점점 가만히 있는 세대가 되었다.
** 5번의 경우 개인적인 분석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거나 더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댓글을 통한 논리적인 피드백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
6. 실버 사회가 시작되고 저출산 역시 심각해지고 있다. 다가오는 복지비 부담을 그대로 떠안을 20대는 자신의 앞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앞날도 떠안아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20대 힘들다고 징징대는 피해의식도, '그래도 우리에게 해가 뜨잖아!'라는 비현실적 낙관도 아니다. 우리에겐 현실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해결책을 이끌어 내야 한다.
6-1. 사회적으로 지원하는 복지 체계의 내실화, 교육체계의 효율화는 너무나 포괄적인 목표이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안 된다. 구체적 파트마다 담당자의 현업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적절한 해결책을 구가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공무원은 그냥 철밥통이 아니라 나랏돈 받고 나랏일 하는 사람이다.
6-2. 20대 개인적 차원에서는 자신의 분야에서 엣지를 살려 경쟁력을 확보해놓는 것이 중요하다. 기회가 곧 온다. SNS 패러다임과 온라인 광고시장을 바꿔버린 페이스북 CEO 마크주커버그는 겨우 30대다. 젊은 사업가들의 젊은 서비스가 세상을 바꾸고 있고, 기존의 기간 산업을 이끌어온 인재 못지 않게 현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젊은 인력이 절실해지고 있다. 이러한 인력에 대한 필요성이 임계점에 다르면 이제까지 역사가 보여주었듯 산업 구조는 완벽하게 뒤집어 진다. 기회는 준비된 자 혹은 운좋은 자가 잡는다. 운과 준비, 둘다 갖출 수 있도록 세상을 스스로 읽는 시도를, 자신의 길을 닦는 시도를 게을리 하지 말자.
7.(별첨) 요새 내가 제일 무서운 건 내가 언젠가 정말로 지쳐서 멈춰버리는 일이다. 20대 중반이 되니까 하루하루 예전같지 않은데 앞으로 갈수록 더 그렇겠지. 스스로 세상을 넓히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건 깡밖에 없는데 깡으로 버티다가 몸을 혹사하고 입원도 해보고 번아웃도 겪어보니까 현명한 관리의 중요성을 알 것 같다.
한계는 분명이 있다. 모든걸 스스로 책임지고 이뤄나가야 하는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내가 주저앉거나 지치거나 안주하지 않고 그렇게 나아갈 수 있기를. 나와 내 주위 사랑하는 이들 역시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는 삶 속에서 변함없이 자기 자신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