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일기2
0. 올해들어서 기본 17시간씩 활동하고 많으면 20시간 깨어있었다. 하루를 길게 쓰고 최선을 다하며 몰입하면 확실히 나 자신의 실력이 느는 것이 보인다. 다만 안좋은 건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오랜만의 인턴일기 주제는 "누구에게나 철저하게 힘든 시간이 있다"는 것.
1. 사람이 극한으로 힘들고 인생 밑바닥을 찍으면 멘탈이 부처가 된다. 지금 내가 그렇다.. 매일매일 할 게 많고 위기가 찾아와도 담담하게 이겨내려고 노력하다 오늘 오전 졸업 면담에서 내가 철저하게 아팠던 시간을 오랜만에 다시 꺼냈다.
2. 철저하게 아파했던 시간은 아직도 내 몸에 체득되어 있다. 2016년 내 이기심으로, 미숙함으로 주변과 내 스스로를 몰아갔던 뼈아픈 잘못은 앞으로 내가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누군가는 힘들었던 시간 그 당시의 나에게 "버티는 것만으로도 잘했어/수고했어"라고 말해주라지만 난 그것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힘든 상황은 주변의 요소가 본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도 있지만 그 중 일부는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단지 버티기만 하는 건 정답이 아니다.
2-1. 2016년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자존감은 바닥을 찍고, 나 스스로를 똑바로 세우지 못해 모든 사람, 모든 일을 피해의식으로 대했던 그 순간의 이지수에게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힘든 순간을 얼렁뚱땅 넘겨버리지 않고 그 순간 더욱 철저하게 힘들어 해서 잘했어"
3. 겐조 도루의 <전설의 파는 법>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슬럼프의 원인을 어물쩍 넘기려 하지 말고 철저하게 침울해져라. 침울해지고 또 침울해지고 끝까지 침울해진 다음에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다."
3-1. 자존심이라면 지지 않았던 내가 2016년에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울고, 또 울고 너무너무 힘들어하던 그 순간 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안될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 걸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 앞으로 살면서 또 이런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현명하게 이겨내는 걸까".
고민을 고민으로 남기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참 많이 변했다. 이제 생각해보면 살면서 이룬 그 많은 것들보다 그때의 고민이 제일 잘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3-2. 힘들다고 울고나서, 내가 그 상황을 얼렁뚱땅 "이해해 줘. 내가 힘들었어" 이런 식으로 넘어가고 예전과 똑같이 행동했다면 난 지금도 같은 상황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거다. 힘들다는 변명 아래 나 자신을 바꾸지 않고 있을 터였다.
4. 누구에게나 철저하게 힘든 시간이 있다. 혹은 곧 온다. 그 순간이 바로 한 개인의 window of life라고 생각한다. 그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느냐가 한 개인의 행동 경향성을 결정하는 큰 지표가 되고, 주위 사람들이 그 사람을 떠올렸을때 대표적인 속성을 결정한다.
이제까지 자신의 세계관이나 습관이 한계에 봉착했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내 세계의 바운더리를 무너뜨리고 확장할지, 그 안에서 머물러버릴지가 여기서 결정된다.
우리는 아픔 그 자체에 너무 집중하느라 아픔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능력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4-1. 인간이 위기를 맞닥뜨리면 일단은 그 상황을 회피한다. 울수도 있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지금 현재 맞서기 힘든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시간을 벌고 넓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1차적인 회피는 이런 점에서 도움이 되지만, 회피 그 자체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울고 있으면 부모님이 불쾌한 상황을 해결해주던 시간은 지났다. 참 슬픈 일인데, 우리는 모두 성인이다.
5. 3월이었나 하은이랑 이야기했는데 하은이가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설령 겪었다고 해도 그사람의 경험과 나의 경험은 다른거고, 그래서 절대 쉽게 말할수가 없다"고 했다.
지금 현재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에게 이 글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상황을 함부로 판단하려는 의도는 없음을 밝혀 둔다. 같은 경험에서 느끼는 것이 서로 다르듯, 우리는 서로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단지 나는 이렇게 생각했고, 당신도 이 시간을 통해 생각해 나가길 바라는 뜻에서 이 글을 쓴다.
힘들었던 시간의 내 이기심을 부끄럽지만 꺼내보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순간 나의 경험과 배움이, 나 자신에게 다른 누군가에게 현실적인 위로가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