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단상
0. 짝사랑을 하는 사람은 외롭다. 동료와 떠들며 밥을 먹다가도, 마음에 담은 사람과 눈을 맞추다가도, 어느날 밤 그 사람을 생각하다가도 그냥 먹먹하고 갑자기 외로워진다.
내 세상의 중심은 나였는데 그 중심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좋아해. 차마 전하지 못한 말이 아직까지도 아프게 다가오는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는,
그 사람이 내 세상의 중심이 되어버려 나 자신을 잃어버렸던,
그렇게까지 사랑했는데 보답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1. 사랑에 대한 온갖 환상을 미디어에서, 친구와의 수다에서 떠들어 댔고
그 무엇이 되었든 그 중의 하나가 내 이야기가 되기를 바랐다.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 라는 미련한 비현실적 믿음은 결국은 나를 절벽으로 밀어 바닥을 보이게 했다.
그만 두지 못했던 이유는 그 사람이 내게 어느정도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투명하게 피드백하는 것이 재수없는 말이 되는게 사회생활인데,
그것도 모르고 난 내 마음에 대한 얄팍하고 속 빈 응원들에 의존해버렸다.
나를 살아가게 했던 가치를 의심하고 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가치의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어 왔다면 더욱 더.
나에게 어느정도 좋은 점도 있고 주위에서도 잘 될거라고 했고,
짝사랑하는게, 그 사람과 살아가는게 내 패턴이 되어버린 순간 놓아버리는게 무서웠다.
2. 그렇게 다시 한번 세상이 무너졌었고,
그 이후로 내가 가진 것 중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들어내는 것이 쉬워졌다.
니가 없으면 정말 죽을것 같았는데,
니가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줄도 몰랐는데 난 보내고 있었고
충분히 다르게 살아갈 수 있었다.
3. 우리는 충분히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
지금 내 주위에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조직에 적응을 해야 하지만,
도그마에 종속될 필요는 없다.
조직에 적응하는 것도 내 선택이듯이,
유통기한이 지난 조직과 사람과 헤어져서 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4.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인간관계와 삶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 되었다.
너를 사랑하는 일이 어느날 나를 외롭게 했었다면,
주관이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조직과 인간관계를 계속해서 의심하기에 외롭다.
그렇기에 내가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어렵거나, 나를 유연해주게 만들어주는 것 이전에 외로운 일이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언젠가는 내가 무너지고 일어났듯이 이만큼의 절망을 들여다 봐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어리석은 희망과 함께한다.
*아픈 사랑을 해봤던 모든 분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지금의 사랑때문에 외로울 수도 있고, 이전의 사랑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얻었더라도 외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날의 외로움에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