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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ul 16. 2019

나름대로의 실연을 견디는 법

0. 내 세계였던 사람과 절연하고 거의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했다.

그 시절 베트남에서 2주 좀 넘게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때 함께했던 모든 사람에게 아마 난 평생 잘해야 할 것 같다.


(무슨 말만하면 예민하게 반응하고 모난 말만 뱉었던 나를 따듯하게 위안해줬던,

존재 그자체로 위안이 되주었던 모두에게 이 기회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1. 돌아오고 나서는 일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캠퍼스의 여기는 무슨 건물이고, 저기는 뭘하는 데고, 그런걸 함께 알아갔었는데

모든 걸 너랑 함께했었는데. 아니, 그냥 이 공간은 그저 "너와 함께하는 곳"으로 정의되었었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국제학사로 돌아가는, 걸어 올라가는 그 길이 그저 마음이 아팠었다.


미친 사람처럼 일에 몰두했다. 그때처럼 괴물같이 일했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퇴근해서는 안자고 공모전하고, 매일 늦게까지 야근했다.

안 힘드냐고 주위에서 물어봤는데, 난 절연한 내 자신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게 더 힘들어서 일에 파묻힌 채 도망을 쳤다.


2. 돌아보면 그건 충격요법이었다.

너를 내 인생에서 드디어 들어냈음을 자각하기가 아파서,

일로서 나를 혹사시켰다.

찰나의 순간마다 찾아오는 아픔이, 일때문에 힘든거라고 나 자신을 착각주기 위해서.


그 시절의 나는 너무 충격받았던 나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를 몰랐었던 것 같다.

왜 그땐 힘들었던 나 자신을, 내 주위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법밖에 몰랐을까.

그때의 내가 돌아보면 많이 안쓰럽다.


시간이 가고, 더 좋은 사람들을, 나와 더 잘 맞고 더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차츰 나아졌다.

괴로움보다는 재미로, 열정으로, 웃음으로,

스케이트보드로, 배드민턴으로, 밤샘 UX 작업으로 바꿨다.


3. 실연을 이겨내는 방법은 어쩌면

내 주위 사람을 바꾸거나 환경을 바꾸는 것 이전에 내 자신에게 있는지 몰라.

내 자신을 바꾸는 것이 결국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만약 내가 23살의 이지수로 그대로 남아있다면 난 아직도 그 사람이 없어서 많이 힘들것 같다.

멀쩡하게 잘 지내는 척하고 크게 웃다가,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돌연 외로워 질 것 같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외워버린 번호로 연락하고, 다음날 다시 자책하고,

너에게 다시 실망해서 되려 내가 더 많이 다쳐버리는 그런 일이 반복되었을 것 같다.


난 이제 니가 더이상 보고싶지 않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기에,

이모습 이대로 시간을 돌린다면 반할 것 같지도 않고 사람으로서 친하게 지낼 것 같지도 않아.


더이상 원망도 하지 않고 그저 나보다 다른 사람이 중요해지는 그 기적같은 경험을 아프게 겪어냈음을,

내가 잘못했었던 부분도 있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4. 실연은 반복된다.

연인이 되었든, 이제는 떨어져 살게 된 부모님이 되었든, 죽고 못살것 같은 친구가 다시 만나면 어색하다든지,

그런 장난같은 일은 반복된다.


요새 내 인생의 지지대가 되어주었던 사람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느라 얼굴 한번 못보기도 하고,

참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함께했던 친구를

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떠나보내기도 한다.


네 인생의 궤적에서 지금처럼, 지금보다 더 빛나길 응원해.

찰나의 순간이니만큼 재미있게 보내줘서 고맙고,

다시 만나면 우리 예전처럼, 그리고 예전과 달리 함께 서로를 채워주길.


좋은 헤어짐이든, 아픈 실연이든 둘다 어쩌면 관계 상의 변화이기 이전에 내 인생의 turning point이다.

내가 좀더 내 자신으로 거듭날 계기이기도 하고,

나에게 소중했던 이와 더 큰 지평에서 만날 개인적인 준비시간이기도 하다.


결국 이 변화의 순간, 실연의 순간

우리는 앞으로 난 어떤 사람이 될지 결정해야해.


4. 다행히도 어떤 인연을 잃더라도, 잠시 헤어지더라도,

우리 주위를 대신해서 채워줄수 있는 것들은 많다.


내 커리어이기도 하고, 내가 생전 안해보던 일이기도 하고,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때로는 좋은 노래, 친한 언니가 하는 스푼 방송이기도 하고,

타인에게서 얻던 위안을 스스로 어떻게 구할지 고민하고 발전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어떤 이가 떠나간 만큼 약해지기보다는 그만큼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지는,

그렇게 자기 그릇을 스스로 채워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실연 후 아프고 외로운 감정에 최선을 다하며,

그렇게 다시 한발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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