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언니, 이 사람 만나봐야 할까요? 지금 이런 상황인데, 만나야 좋을까?
제일 좋아하는 동생 E가 점심을 함께 먹자며 여의도로 왔다.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는 요즘,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가주는 이들은 늘 내 지난한 인생의 힘이 되어 준다.
1. 모든 인간은 종교적이기에 본인이 믿은 대로 보고 그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또한 모든 충고는 자전적이기에 본인이 겪은 대로 이야기 해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조언을 할 때 조언을 구하는 자는 온전히 조언을 들을 수 없고,
조언 하는 사람은 사실 비슷한 상황의 지난날의 자기 자신에게 조언하는 것이다.
2. 알지도 못하면서 훈수두는 사람을 싫어한다.
감히 내가 예쁘고 파릇파릇한 E의 고민을 판단할 수 없었기에
나름의 공감과 이런저런 이야기로 짧은 점심 약속을 끝냈지만,
이 사람 만나야 좋을까? 라는 질문은 계속 내 안에서 메아리쳤다.
아프고 미숙하고 서툴었던 지난 3년 반의 사랑동안,
난 상처줬고 또 상처받았다.
E도 질문했고, 그 시절의 나도 질문했다.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까, 라고 질문에 지금의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4. 이 글로서 E의 질문에 늦은 대답을 대신한다.
난 네가, 너의 슬픔으로 피워낸 꽃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
옛 말에 오장육부를 짜낸 진액이 눈물이라는데,
그 눈물 방울들로 피워낸 꽃을 예뻐해주고, 그 가치가 얼만큼인지 알아주고,
그에 합당한 대접을 해주는 사람.
4-1. 시간을 돌려 그 시절에 나에게
이 사람을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그때의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할 것이기에
떠올리면 그저 그 시절의 내가 안타까워서 많이 아프다.
난 동생들이 상처 없이 크기를 바라는 동시에,
상처를 입더라도 굳건히 다시 일어나길 응원한다.
성숙과 더 넓은 시야를 얻어내는 과정에서 아픔은 어느정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 시절의 나는 만나지 못했지만, 너는 그렇지 않기를.
더 나아진 너 자신을 단순히 소비하기 보다는,
그 아픔까지 알아주고 함께 세상을 맞설 사람을 만나기를.
*이 글을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나누어준 E에게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