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ssie Jul 03. 2019

사랑하고 연애할 때 난 제일 많이 배웠다

0. 사람은 원래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 관심이 없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보다는 나에게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존재가 자아를 위험할 수준으로 내려놓는 마법같은 순간이 있다. 그 흔치않은 순간은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다.


1. "사랑"이라는 설레고 새콤달콤한 감정을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위로와 즐거움을 얻는 나 자신이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 한 명이 순수하게 궁금해지는 순간이 일생에 한번은 온다.


저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왜 그렇게 생각하고,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그 사람 자체의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고 온연히 나도 겪어보고 싶어진다.

예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것, 거북했던 것이 그 사람의 일부라는 이유로 나에게도 호감가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사랑은 나 자신을 더 공고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나 자신의 지평을 흔들고, 열어주는 파괴적인 감정이기도 하다.


2. 파괴란 아이러니하게도 성장과 성숙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내 자신의 도그마를 깨뜨리고,  

정확하게는 도그마인줄도 모르던 것을 깨뜨린다.

순수하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하고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오직 사랑으로부터 비롯하지 않던가.


그 파괴의 과정이 유쾌할때도, 처절할 때도 있고,

파괴의 결과 역시 나 자신에게 보상을 줄 때도 있지만 뒤통수를 칠 때도 있고,

스스로로 하여금 처참하게 무너지게도 한다.


어찌 되었든 본인을 살게 했던 가치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사랑으로 쉽지 않은 이타심을 베풀었던 상대가 나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한다면 더욱 아프다.


원하든 원치 않든 틀려봤던 사람은 유연해진다.


3. 성숙의 과정은 결국 순탄하지만은 않다.

결국 무릎꿇어봤던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서 이 사람의 지평이 넓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의 좌절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처절하게 실패했던 과거의 나에게 감사한다.


4. 공감을 한다 해도 공부를 충분히 한 후에 공감을 해야할 때가 있다.

알지도 못하고 두는 훈수는 언제나 충고받는 이를 상처받게 하기 마련이다.


아 힘들겠다,라고 해도 결코 겪어보지 않고는 감히 그 감정을 들여다 볼수도,

창의력을 발휘할 수도 없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사람은 자신이 틀렸음을 직면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5. 그래서 난 사랑하는 동생들과 내 주위 사람들이 되도록이면 불필요한 실패를 거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상처 없는 사람보다는 처절하게 실패해봤던 사람이 친구로서, 동료로서 의지가 된다.


앞으로도 내가 나 자신을 내려놓고 타인에게 진심으로 다가간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알고,

그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할 줄 알고,

내가 틀릴수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견지하며

앞으로 더 유연해지는 것을 이전보다 덜 겁낼수 있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