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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ul 02. 2019

일상이 불편해서 여행을 떠났는데 여행도 실은 불편하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0. 한국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사는 여행을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혼자 가는 여행이 늘 좋았다.

나 자신의 리듬에 온전히 집중해서, 온전히 다른 라이프 스타일로 살아볼 수 있어서.


1. 많이 지쳐있었던 것 같다.

지난 5년동안 직접 용돈 벌어 살고, 주말마다 공부해서 공모전하고, 창업하고, 국제캠퍼스에서 RA하고,

소속변경을 위해 그와중에 초과학점을 들었다.

방학때 인턴하고 심지어 학기 중에도 주경야독하며 일하고

계속해서 한계에 도전하며 근성이라는 특수 에너지를 짜냈다.


몸도마음도 많이 너덜너덜해졌고 그 무엇보다 계속해서 혼자만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최근 몇개월 동안 지쳐갔다. 필사적으로 버티고 평상시처럼 웃으려고 노력했기에 주위 사람들은 오히려 깊은 고민을 이야기했을때 그 깊이를 잘 몰라 줬다.


난 당신에게도, 이 상황에도 굉장히 많이 지쳐 있는데 그걸 솔직하게 말할수 없어서 힘들었다.


2. 사람이 문제에 파묻히고 쌓인게 속에 많은데

적절한 방식으로 풀어나가지 못하면,

어떤 순간 임계치에 이르렀을때 버럭 화를 낸다. 혹은 갑자기 쓰러지거나.


난 둘 다였다.


문제에 매몰되어가자 말이 없어졌고

어느날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가 비행기 티켓을 샀다.


3. 얕은 수준의 수면 장애와 섭식 장애를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다가

혼자서 훌쩍 떠난 지중해의 섬에 이르러서는 죽은듯이 잤다.

10시에 느지막히 일어나 해변을 조깅하고

저녁마다 수평선 너머 일몰과 반대쪽에서 달과 별이 뜨는 것을 보면서 수영을 했다.


3-1. 일상이 불편해서 여행을 왔는데 여행도 불편하면 불편했지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저 장소가 바뀌었고, 거기에 맞춰서 내 마음자세도 변했기 때문에 매 순간이 포근하고 행복했다.


여행 중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실수하기도 하고, 분명히 좋은 순간도 있었다.

좋든 싫든 그저 모든 순간을 음미하고 즐기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Yoon이 나에게 말해 주었듯이,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살고 싶다고,


4. 한국 유심칩을 잃어버려도, 평상시에 좋아하는 담백하고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해도,

길을 잘못들어 좀 해매는 그 순간 모두를 즐겁게 받아들였던 그때처럼 내가 앞으로 살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5. 건강한 마음의 근육을 쓰는 연습을 하자.

올바른 자세로 올바른 근육을 쓰지 않으면 결국 안 좋은 습관으로 계속해서 살게 된다.

마찬가지로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의기소침해지면 향후에도 계속해서 문제에 매몰되기 마련이다.


스트레스를 미친듯이 받던 순간 그래도 묵묵히 견뎌 줬던 지난 6개월 내 자신에게 장하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물론 이론적으로 더 잘할수 있는 부분은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게 최선이었고 난 분명히 최선을 다했으니까.


다만 이제는 멋지게 문제를 직면하고,

두 땅에 발을 붙인 채 하나하나 내 손으로 해결해 나갈 준비가 되었기에

일상을 여행처럼 살면서 건강한 근육을 쓰는 연습을 즐기면서 해 나가고 싶다.


6. 여행은 어쩌면 목적성과는 가장 거리가 멀다.


여행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구성하는 것은 사진을 찍는 찰나의 순간이 아닌

카페에서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잠잠하게 듣고,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고,

이름 모를 길들을 걸으며 새로운 상황을 새롭게 해결해나가는 과정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배낭 하나 메고 떠날 수 있는 나이의 나라서,

그래서 인생을 더 여행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



여행이란 사실 장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편견을 바꾸는 것이다
-아나톨 프랑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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