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일기2 #9
0. 2016년 멍청해지는 걸 경계하기 위해 신문을 읽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쓰기란 내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하는, 유익하지만 직접적인 인센티브 없는 작업이다. 글이 잘 될 때도 있었고, 귀찮거나 바빠서 무기한 미뤄둘 때도 있었다.
특히 요새처럼 회사랑 학교랑 취준을 병행하는 지금은 진짜 눈 깜빡하면 일주일 가있고 ㅠ
1. 언제 내가 글이 잘 써졌더라? 맨날 밤을 새고, 하루에 20시간 가까이 쓰면서도 글을 내가 왜 썼더라... 생각해보면 바빴을 때 오히려 글을 썼던 거 같기도 하고.
돌이켜보면, 나는 불행할 때 글을 썼다.
1-1. 너무너무 힘들고, 처절하고 냉정하게 나 자신을 아프게 바라봤던 그 순간.
뭐 그렇게까지 불행하진 않더라도 이렇게 해봤자 의미가 있을까 회의가 드는 순간.
나를 사랑해주는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들뜬 순간이 아닌, 묵묵하게 나 자신을 정리하고 싶을 때.
그 순간에 글을 썼다.
2. 사실 행복할 땐 생각 잘 안하지 않나? 물들어 올때 노 젓든, 행복에 취해서 잠깐 안주하든 잘될 때 오히려 생각 없고 경계도 잘 안 한다.
뭐 굳이 늘 serious 하게 살 필요가 없기도 하니까. 행복할 때는 행복하게 사는게 정답이다.
그러니까 너무 행복에 집착하지 말고 불행할 때는 불행해 보자.
3. 재하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읽어보라 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가 발견한 젊은이들의 '행복'은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하지 않기에 가능하다. 쉽게 말해, 미래를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지다."
3-1. 행복은 순간에 있는 것이라 했던가. 죽어라 월급쟁이로 벌어도 금수저의 매일 쓰는 용돈보다 못하고, 지방에서 상경한 모범생들은 서울에서 주택담보대출,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벅차다. 열심히 하면 다 된다고 했는데, 현실에 부딪혀보니 이제껏 믿고 따라온 세계관은 거짓말 같다.
이런 사회구조적 문제를 생각해봤을때 사실 소확행/욜로/힐링같은 건 사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좋을 때 나아갈 수 있는 힘, 슬플 때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는데 나아가 봤자 답이 없고 생각하면 더 답이 없으니 현재에서 재미와 행복을 추구할 수밖에.
4. 문제는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의 자세가 현실에 주저앉아 버린다는 것이다. 언제나 세상은 젊은 세대로 하여금 바뀌어 왔듯이, 이 미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분노나, 새로운 외침이 현재의 눈가림에 너무 쉽게 자리를 내줘 버렸다. 우리는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느라 아픔에서 무엇을 배우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비슷한 맥락에서 개인적으로 힐링이라는 말을 별로 안좋아한다. 난관에 부딪혔으면 우선 한숨 돌리고 잘 쉬는게 생각해보는게 맞긴 한데 잘 쉬는 게 문제를 해결해주는게 아니다. 잘 쉬고 에너지 삼아 그 문제를 이겨냈을 때 진짜 힐링이지. 물론 우리 사회에서 이게 너무 어렵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 머물러버리는 건 결국 개인에게 제일 안 좋다.
그러니까 당신이 불행하다면, 그 이유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 보자. 생각보다 생각할 기회는 많이 주어지지 않으니까.
5. 개인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순간은 실은 잘 될 때보다 더럽게 안 될 때다.
그리고 그 정체기, 실패기, 넘어진 순간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느냐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다.
내가 글이 잘 써졌던 순간, 생각하지 않고서는 못 배겼던 순간.
내가 분노하고 문제의식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게 되었던 순간들은 다 조금 힘들 때였다.
6. 그 힘들 때 정말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이게 다 부질없는 것 같아서 새로운 사회에 도전하기보다는 그냥 부모님이 구축해놓은 사회에 안주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고민할 때마다 그래도 한번 더 해보자는 선택을 했고, 그때마다 선택에 대한 나름의 이유가 붙었다. 그 선택에 대한 한계도 받아들일 수 있기도 했고.
고민하는 건 쉽지 않은 순간이긴 했지만 헬렐레 나 자신의 성공이나 사랑받음에 취해서 정말 큰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도와줬다.
6-1. 물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실패를 할 수 있는 상황 매니징 능력은 중요하다. 우리는 시간과 자원을 성공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니 만큼 실패에서 의미를 찾되 실패의 의미에 중독되지는 말자.
7. 인생에서 편한 순간만 가득 찰 수는 없다. 비오는 날도, 햇빛 비치는 날도 있고, 그렇게 나날이 열매는 익어 가듯이. 힘든 일도 있고, 안 힘든 일도 있고,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모든 순간들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힘든 때도 그럭저럭 괜찮지 않을까.
좋지 않은 순간이 정말 도전인 이유는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이게 정말 엿같은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앞으로의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계단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8. 그래서 당신이, 살면서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불행하길 바랍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이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내 꽃길은 내가 깔아야 한다 해도 그다지 나쁜 삶은 아니잖아요.
길을 걸을때나 꽃길을 깔 때나 그 순간을 정답으로 만드는 건 지금 나한테 달려 있으니까 오늘도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더 좋게 바꾸어 나가길.
덧) 그래도 역시 편하게 사는게 좋긴 하죠. 의미있다고 쓰고 사서 고생이라고 읽는 삶을 사는 저 포함 모든 분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