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멋있을까 생각해봅시다
#인턴일기2 11. 에필로그: 마케팅/브랜딩/광고/기획이 멋있어 보여서 하고 싶다면
과연 멋있을까 생각해봅시다
0. 첫 번째 인턴을 PR직군에서, 두 번째 인턴을 광고 직군에서, 세 번째 인턴을 마케팅 직군에서 경험하면서 느낀 점은 학생이 보는 마케팅/브랜딩/광고/기획과 현업의 온도 차이가 굉장히 크다는 겁니다.
진로 고민을 하는 주위 친구들과 저 자신의 자기 정리를 위해서, 그리고 막연히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지막 에필로그의 주제는 마케팅/브랜딩/광고/기획의 실체로 정했습니다.
1. 강연이 아닌 사석에서 광고 회사에 다니는 현업자 분들을 만나면 가장 자주 듣는 이야기가 "사실 이 직군도 어찌 되었든 생업이고 광고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에 취하지 말라"라는 거였는데요. 얼마 전에 PPSS/애프터 모먼트 크리에이티브 랩 작가님의 브런치에서 비슷한 글(기획, 마케팅, 브랜딩은 막 대단히 멋진 걸까 - https://brunch.co.kr/@roysday/197)을 보고 현업에서 이러한 의견이 어느 정도 전반적으로 구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대학생들 대상으로 대외활동이 너무 많고 거품도 많이 끼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거품까지 낄정도로 제일 인기 있는 직군인데 왜 현직자들은 자신의 직군의 장점을 인정하지만 그렇게 장밋빛으로 바라보지는 않는 걸까요.
2. 문과 출신 취준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군 중 하나는 마케팅/광고입니다. 혹은 비슷한 갈래의 브랜딩/기획도 인기가 많습니다.
왠지 세련된 거 같고, 기획서 쓰는 게 막 재밌어 보이고, 크리에이티브를 뽑고 매출을 일으키는 게 굉장히 권한이 많아 보이는 등등의 이유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해당 직군에서 근무하면서 세련된 분들을 많이 만나고, 남들과는 다른 시각을 가진 분들도 많이 만났지만 다 아시죠? 상상과 현실은 다릅니다.
3. 좀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대학생이 대외활동이나 학회/산학협력에서 만나는 마케팅/광고/기획/브랜딩과 실제 현업은 정말 다른 것 같아요.
3-1. 솔직히 취업 준비하는 대학생들은 막막하고, 뭐라도 해야겠고, 그래서 선택하는 대표적인 대안이 대외활동 또는 학회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외활동 진짜 비추 하는데 뭐 얼마나 대외활동이 현직이랑 연결되어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하고 싶어서 대외 활동하는 거랑 마/브/광/기(마케팅, 브랜딩, 광고, 기획)로 먹고사는 건 굉장히 결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2. 사업부에서 입사 동기는 해외 계약에서 몇억씩 빵빵 터뜨리는데 내수시장에 좁은 한국에서 건강식품이 되었든 생활건강용품이 되었던 마케팅/영업에서는 순매출이 몇천 단위로 나는데 개고생 하고.
크리에이티브를 아무리 잘 짜 봤자 대행사 특성상 광고주 마음에 따라서 캠페인 방향이 산으로 가면 현타 정말 오죠 디자이너와 협력사와 실행사 클라이언트에게 치이는 오늘날의 모든 광고회사 AE에게 기도해주세요 #PRAY_FOR_AE AE분들 다음 생에는 꼭 광고주로 태어나세요 ㅜㅜ
4. 마/브/광/기(마케팅, 브랜딩, 광고, 기획) 란 도대체 뭘까. 정의 자체가 모호합니다. 학교에서 마케팅 수업 들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책마다 정의가 다르고 업계와 시대에 따라서 그 정의도 달라집니다. (역시 어른들 말씀 틀린 거 없습니다 기술이나 배울걸 그냥...)
하루 5분 연구소 면접 볼 때나 주위 후배들 자소서 봐줄 때 자기가 이런이런 대외활동을 해봐서 해당 직군에서 근무를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경영 학과를 졸업했고 마케팅학회를 했으니까 본인이 마케터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느낌이.. 되게 벙쩌져요. 물론 3년 전의 나도 그랬음을 깨닫고 현타가 따라와요.
이 분야는 진짜 답이 없고, 하면 할수록 사실 잘 모르겠어요. 취업 면접에서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마케팅을 잘 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요.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퍼블리 칸 광고제 토크를 가거나 광고/기획 분야 작가 토크를 가면 실제로 이 분야에서는 답 찾기가 힘들다 오히려 자기가 잘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은 짜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제가 봤던 수많은 인턴 면접에서 제가 이런 이런 걸 해봐서 현직 경험이 있다 라고 하면 면접관들은 코웃음 치시기도 했는데 그때 제가 얼마나 같잖아 보였을지 참...
죄송합니다 제가 그때 뭘 몰랐습니다.
5. 저도 그랬고 아직도 좀 그런 것 같고.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마케팅을 막연히 멋있는 걸로 생각해요. 그러니까 정말 막연히 준비하는 거죠.
제가 인턴 하면서 느낀 것과 현직에서 영업하는 분들께 들으면서 느낀 건,
마케팅/영업은 회사의 최전방에서 수익을 이끌어내는 조직이기 때문에 일단 매출에 대한 계속적인 부담이 무조건 있습니다.
그 부담을 이기고 협력사랑 기획전 걸고, 판촉비 관리하고, 사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마케팅을 잘 하게 해주는 건 장밋빛 전망보다 일단 주어진 일을 잘 하는 자질인 것 같습니다.
협력사랑 연락 또박또박하게 하고. 플랜 B를 항상 준비하고. 예산 잘 짜고 집행 잘 하고 광고 돌리고 수익화 퍼널에서 막힌 것 있으면 조치 취하고. 그리고 제발 말한 것좀 잘 이해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게 있으면 간단명료하게 정리해서 공유 좀.. 시간 약속 잘 맞추고.
찌질 해 보이고 윗 분들이 '기본'이라고 하는 것들이죠. 사실 제가 느꼈을 때 일을 잘하게 하는 자질은 업종에 대한 환상보다 기본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기본기가 다져졌을 때 생각할 시간이 생기고, 그때 오히려 업종의 의미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5-1. 전 제가 공강 때 리서치하거나 일주일에 하나씩 기획서 만들 때 저 스스로 진짜 열심히 사는 줄 알았는데 그때 느꼈던 부담이랑 직장에서 느끼는 부담이 차원이 다른 부담이더라고요. 솔직히 그땐 돌아갈 학교가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였고 직장에서 하는 건 밥줄이고 제가 책임지는 일이잖아요. 강하고 담대합시다... 힘든 직장일을 하기 위해 힘든 취준을 해야 한다는 게 참...
5-2. 덧붙여서 마케팅 종사자들의 걱정 중 하나는, 제가 생각했을 때,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입니다.
사업 기획을 하는 사람은 사업 분야에 대한 지식이 생기고 협력사 인맥이 생깁니다. 관련 분야 다른 회사에 같을 때 당연히 몸값이 높아집니다.
개발자는 그냥 원래 몸값 높아요 이과나 갈걸 휴. 쓸 수 있는 개발 언어가 많아지면 더 높아지고, 애초에 한 언어를 철저히 하면 옮겨갈 수 있는 내공이 생기잖아요. 아키텍처를 세우면서 경영까지 하는 CTO가 다음 생에 되고 싶습니다. 진심입니다 ㅜㅜ
마케팅 담당자는 뭐가 생길까요? 마케팅 업종은 스타트업 뺨 후려 칠정도로 Agile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쉽게 말해 빠딱빠딱하고 빨라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강하고 담대해야 함 ㅜㅜ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이 과연 빨라지느냐. 대부분의 경우 저는 느려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장 변화 주기는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마케팅 직종 진입자는 많아도 남아 계신 high level 분들은 적은 이유들 중에 하나가 이게 아닐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예산을 집행하고 매출을 이끌어내면서 현실 감각이나 사업 감각은 생길 수 있겠네요.
이 시대의 마케터분들 모두 힘내시고 저 포함 마케팅 직종 취준생들도 힘냅시다 ㅜㅜ 우리 세대는 포화시장 속에서 왜 이런 걸까요 증말 돌아버리겠음..
6. 브랜딩 같은 경우는 사실 수익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지 측정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선 가치부여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잖아요. 저는 영업망이랑 사업망만 잘 구축해놓으면 B2B 기업은 브랜딩 없어도 매출 잘 난다고 생각합니다.
아디다스는 브랜딩 없으면 안 되잖아요 빼액!! 이럴 수 있는데.. 여러분 거긴 패션 산업이잖아요. 그리고 아디다스는 제조업과 유통 채널 관리가 굉장히 잘되고 있고 원가 절감과 프로모션 운영이 체계적이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브랜딩이 당연히 금상 첨화로 작용할 수 있는 산업군 특성이 있는 거죠. 거기다 일단 글로벌 대기업이니까 브랜딩을 할 수 있는 돈이 있고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브랜딩을 하시고 싶다면 정말 브랜딩이 필요하고, 브랜딩이 무기가 될 수 있는 업종에 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7. 기획 분야로 넘어갔을 때, 저는 느끼는 게 한국에 기획자가 너무 많아요. 마케팅/브랜딩/광고/기획 중에 기획자라는 이름 단 사람이 제일 많아요. 명함 받으면서 네트워킹 하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기획력 넘치고 논리력이 찬란하게 빛나는 나라였나 새롭게 깨닫습니다. 요새 경기도 안 좋은데 기획력이나 수출합시다.
기획이야 말로 스펙트럼 오져버리는 마법의 단어죠. 작은 회사로 갈수록 기획자는 all-rounder의 역할을 하시는 경우가 많았고, 같은 기획자라도 진짜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업 운영에 관여하는 기획자, UX 서비스 기획자는 하는 일이 딱 봐도 다르잖아요. 그리고 UX 기획하려면 보통 제작(디자인)도 할 수 있어야 함
거기다가 기획자의 미래 전망을 봤을 때, IT업종에서는 굉장히 암울합니다 ㅜㅜ 기획자가 IT기술 익히는 것보다 그냥 개발자가 논리력 기르는 게 낫거든요. CTO나 개발 팀장님이 차라리 기획자보다 전체 사업 얼개를 잘 아시는 경우도 많고 실제로 개발자 출신 경영자가 사업기획 잘합니다.
(만약에 이걸 읽는 분이 회사를 다니는데 우리 회사 대표는 개발자인데 경영 잘 못하는데?라고 하시면... 죄송합니다 뭐 세상에 항상 예외는 있는 거고... 그리고 일 잘하는 사람은 원래 레어템이잖아요. 힘내세요.)
제가 생각하는 기획자의 정의는 막연한 목표를 레벨 다운해서 구체적인 Task로 만들고, 계획을 실행으로 execution 하는 사람인데 각 분야의 전문성이 심화되는 지금 같은 시대에,
상품기획이나 UX 기획 등 특정 분야에서 자신의 내공이 쌓이지 않는 기획자분들은 별도의 에지를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는 우선 저는 취업이나 되었으면 좋겠어요 기획자 시켜주시기만 한다면 제가 한번 기획자의 미래를 뚫어보겠습니다^^!
8. 그래서 답은 없는 건가요? 답을 찾아야죠.
다만, 이 분야에 대한 환상만으로 접근하면 안 그래도 쉽지 않은 삶 더 쉽지 않아질 거 같아요.
마케팅/광고/기획/브랜딩은 그 단어 자체가 주는 환상적인 분위기보다 해당 업종 종사분들이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시기에 멋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말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부딪혀보지 않고 맞는 방향인지 어떻게 아나요. 속도 내서 부딪혀 보고 아니면 방향 찾고, 리스크 관리 잘 하고(물론 저도 잘 못합니다 도대체 언제 잘하게 되는 거죠?).
자신의 비전을 펼칠 곳은 어디든지 있을 거라고 존경하는 홍국평 교수님이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진로를 고민하고 계시다면 당장 이슈되거나 떠들썩해 보이는 것이 나의 길이라고 무조건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찬찬히 찾아봐도 늦지 않습니다. 저는 어린날의 저에게 이 말을 못 해줘서 많이 힘들었는데 그때의 저 자신과 주위 분들에게 이 말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시간이 걸려도 괜찮습니다. 그대신 진짜로 합시다.
저도 입학할때 꿈이 세계식량기구에서 일하는 거였는데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하고 있고... 꿈이 바뀌는 건 나쁜 게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5년 뒤의 나야 뭘하고 있니 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우리 세대의 매일매일은 역변합니다. 꿈을 현실로 끌어오기도 하고 실패해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도록 해요.
매일매일 수고하시는 이 시대의 마케팅/광고/기획/브랜딩 종사자 및 수고하려고 고생하는 저같은 취준생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 물론 저는 해당 분야의 대표도 아니고 상무님도 아니지만, 사회 초년생 그리고 취준생의 입장에서 겪었던 제 생각을 나누려 하는거고 저만이 해드릴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적는 글이 절대적인 사실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