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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Dec 17. 2019

현대는 전쟁의 정서를 닮았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0. 인생의 경험치가 있는 사람이 읽으면 좋은 책.

그저 주어진 이데올로기 속에서 행복하게 좋은 점수를 받아가며,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고민해보거나 그 때문에 방황해보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 배신감을 주고받아보지 않았다면 사실 와닿는 부분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맨앞의 1,2장을 이해 못하겠다고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다행히도 고등학교 때 여러 사상가들의 철학을 명쾌하게 설명해준 강정 선생님의 철학 특강 덕에 난 이 책이 두렵지 않다. 누구를 통해서 처음 만나는 분야를 소개받느냐는 이다지도 중요하다.



1. 1,2장에서는 니체의 "영원한 회귀"사상과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해 서술하는데 여기가 좀 어렵다.


정리하자면 니체는 우리의 인생에서 겪었던 일이 우리 일생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영원한 회귀" 사상을 소개했는데, 불교의 공 사상과 같이 모든 존재는 순환하고 각 개인의 업보는 계속된다.

그리고 그 무한한 순환 과 반복 속에서 개인은 그저 무한한 우주의 순환을 재현하는 하나의 객체이기 때문에, 개인에게 닥치는 모든 시련과, 행복과, 아픔들은 우주의 가벼운 티끌일 뿐이다.


그래서 수많은 나치 학살을 이끌었던  히틀러에 대한 분노도, 그저 놓아버리고 가볍게 "화해" 할 수 있는 "냉소적 화해"의 대상이 된다.

우리 모두는 어차피 죽을 건데, 아득바득 살아 봤자 뭐해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난 이 무한한 시간과 넓은 우주 속에서 그저 살다가는 존재일 뿐인데

이렇게  희노애락에 치우칠 필요가 있나,

경제성장도 더디고 열심히 일하는 건 무슨 의미가 있나,

모든 건 의미가 없기에 때로는 제멋대로가 되고, 타인의 악행을 그저 그렇구나 넘겨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이 모든 건 의미가 없느냐, 라는 명제에 밀란 쿤데라는 반론을 제기한다.

무거움이야 말로 생의 원천이라고. 그 무거움과 가벼움의 경계에 인간은 늘 갈등한다.



2. 마냥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무겁고 가볍고 같은 인생의 의미를 따지지 않는다.

전쟁을 겪으면서 내 주위를 채우는 것들의 무너짐을 경험하는 이들만이 회의한다.


중세 종교의 절대적인 룰에서 벗어나, 탈주술화를 겪어 개인으로서 인생을 고민했던 근대 사상가들,

더 나은 국가의 뼈대를 고민했던 정치 철학자들,

여러가지 이데올로기가 부딪히는 와중에 때로는 끔찍한 실수의 주범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구원자가 되 본 사람들.


사비나, 프란츠, 토마시, 테레자는 소련의 침공과 가정환경에서 비롯한 콤플렉스와의 개인적인 전투를 치르며 무거움과 가벼움의 풍랑을 겪는다.



3. 현대에는 아직도 전쟁의 정서가 흐른다.

책을 읽으면서 문화와 시간을 건너 내 주위를 닮은 장면이 많다고 생각했다.


토마시는 테레자를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은 여자들과 가벼운 성관계를 계속하며,

테레자는 과거의 상처로부터 기인한 이유들로 토마시를 사랑하며 토마시를 원망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연인 사비나 그 자체가 아닌 스스로가 부여한 "신비로움", 그 환상을 사랑하는 프란츠와

연인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사용하는 단어를 판이하게 이해하는 사비나와 프란츠.


21세기 한국에도 수많은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와 프란츠가 있다.


시골에서 맥주를 서빙하며 그 무게에 허리가 휘며, 안나 카레리나 책을 끼고 부유한 지식인이 되고 싶어하는, 하지만 그 책이 시사하는 바를 읽어내지는 못하는 테레자는

대학 입학 후 내 스스로의 부족한 소양을 마주하고 내 인생이 이렇게 얄팍했었나 자격지심을 가지던 나를 닮았다.


미숙함 그 자체를 가감없이 활용해 사랑하던 시절,

나에겐 너밖에 없는데 너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는 생각에 사랑하는 이에게 끝없이 집착하던 지난날이 테레자에게 공감했다.


토마시 역시 자신만큼 나약해져서 자신에게 의존하기를 바랐던 테레자는,

정작 토마시가 의사에서 늙은 유리창 청소부가 되어버리자 허무해 했듯이,

내가 그때 그사람을 진흙탕으로 같이 끌어들였다면 나도 허무했을까.


3-1.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미학적인 문체에 감탄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만한 모순적인 감정, 관능 사이의 추악한 감정, 가정에서의 상처, 노골적인 정서의 밑바닥까지 아름다운 문체로 담아내서 거부감이 덜하고 자연스럽게 읽혔다.


영혼과 육체, 무거움과 가벼움과 같은 철학적 논조가

등장인물들의 상황에 세밀하게 계획되어 서술되서 작가의 큰그림에 감탄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에피소드에 몰입하도록 하는 매끄러운 문체에 파고들어 책 전체의 줄거리파악보다는 장면장면에 몰입하게 되었던 독서.



4. 전쟁은 종전되었지만 무거움과 가벼움의 풍랑은 계속된다.


당신이 2019년의 한국에서 엎치락뒤치락 굴러왔다고, 앞으로도 굴러야할 것 같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이 책을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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