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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an 26. 2020

20대 명절 증후군 설날 답답이

<3줄 요약>

설날 집갈때마다 묵언수행 고구마 답답이 / 자식의 원죄는 부모 / 비즈니스의 미래는 가족의 해체를 따른다


1. 가족 안에서 내 자신으로 존재해본지 오래됬다.

내가 중요시 하는 가치와 인생에서의 도전을 함께 공유해본 기억이 없다.


설날 추석근방에 난 명절 증후군에 걸려서 죽기보다 집에 가기 싫어했고 일단 아직도 제사는 왜지내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냥 좀 즐겁게 식사하고 개고생좀 그만하자. 유노 아메리칸 스타일? 발랑 까진 말이지만 제사 지낼 노력으로 집안 구성원 모두가 행복하려고 노력했으면 이미 대한민국은 OECD 행복 1위다.

제사라는 의식이 할머니한테 어른들한테 중요한 거라 참고 있긴 한데

가족에 대한 사랑이 대화가 아닌 입 다물기로 연결되야 한다는게 늘 발랑 까진 밀레니얼 나에게는 불행했다.


1-1. 이번 설날 레깅스를 입고 집에 내려가자 엄마는

얘는 어른들 다 계시는데 왜 딱 붙는 옷을 입고있어? 라고 해서 우선 고구마 300개.

난 엄마가 항상 진보적인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엄마는 또다른 정체성을 띄는 법이다.



2. 하여튼 난 1번같은 생각들로 명절 귀향은 일단 제끼고 보는데 이번 설날은 좀 달랐다.

장남으로써 3남 2녀 가족들 - 그리고 그 각각의 가족들까지 - 을 책임지며 기둥이 되어왔던 아빠와

맏며느리로서 또하나의 기둥이 되어줬던 엄마 짐을 좀 거들까 했던 알량한 생각때문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어른들과 말은 안통했지만 분위기를 띄우고 오려고 했고

그 감정노동의 결과 서울 내 집에 도착해서 기가 빠진다.


아 엄마는 이걸 어떻게 이십 칠년을 했지.


2-1. 젊은 얘들 훈수 두는 이야기 싫어한다고들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청자에 대한 이해 없이 좁은 식견에서 말하는 것이 토할 듯이 답답하다.


이번 연휴에도 내 해방촌 집에 대해서 내 재테크에 대해서 근로생활건물에서 사는게 이렇고 저렇고 내가 많이 해봐서 아는데 웅앵웅


제가 알아서 할게요.



3. 아빠랑 이야기를 했다. 60을 바라보는 아빠는 바닥부터 시작해서 전무가 됬고 이제는 시장과도 싸우는데 자신을 밀어내려는 회사의 압력과도 싸운다. 맘놓고 난방도 못하던 시절 스물 일곱살의 엄마와 서른 살의 아빠는 사글세 원룸방에서 나와 동생을 키웠다.


엄마, 대학 졸업하고 바로 결혼해서 무섭지 않았어?

난 경력 단절이 너무 무서워. 그래서 결혼하기가 무서워.


당당하게 삶의 면면을 들여다 보기에 난 항상 무서웠다. 내 갈길 가느라 너무 바빠서 연인이라는 책임도, 나아가 결혼과 자식이라는 책임도 너무 버겁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난 내 꿈이 너무 중요해서, 내가 이제까지 기쓰고 노력해온게 억울해서라도 포기할수가 없어서, 그렇게 난 끔찍하게 이기적이라서.


3-1. 기독교에서 모든 인간은 원죄를 품고 태어났다길래 난 그말에 항상 거부감이 들었었다.

내 인생 내가 귀하게 태어나 살겠다는데 왜 내 개인의 가치를 격하하는지 그런 반항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거울을 보니 엄마 아빠의 젊음을 빨아먹고 자란 그들을 무섭게도 닮은 내가 있었고 난 내 원죄가 뭔지 깨달았다. 부모님이었다.



4. 애정은 결국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야먕은 개인에게 사회적 성공을 안겨주지만, 집에 돌아오면 난 그저 사랑하는 사람 옆에 서있는 한사람이고

사회에서 내가 얼마나 성공했든 부모자식 관계가 너무 어렵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난 내 인생을 놓을 생각이 없는데 그게 엄마 아빠가 살아보지 못한 세상이라.

더 돈도 많이 벌고 싶고, 빨리 강해지고 싶었는데 내가 성장한 것 보다 부모의 늙음이 더 빨리 오는 것 같아서. 한살한살 나이를 먹을수록 미숙했던 부모가 날 키우기 위해 포기한 것들이 판판이 보이는데 난 내 살길 살기가 너무 바빠서. 그래서 부모자식 관계가 너무 어렵고 말할것 없이 즐겁게 살다가도 죄책감이 든다.



5. 가족사회는 이미 해체됬다. 설날에 모이든 추석에 모이든 젊은 얘들의 사상과 기성세대의 사상이 가정에서도 교류되지 못하니 해체 그 자체다.


1인가구 이상으로 큰 파급력을 미칠 변화는 가족사회의 해체다.

내가 연금보험을 들고 RP 특판을 알아보고, 주말에 공부를 하고 새벽에 운동을 나가는 건

내가 원하는 삶을 나만이 책임지고 보호하고 끌어나갈 수 있어서다.

내가 삐끗해도 그저 나 혼자라서.


누군가는 커뮤니티가 비즈니스의 미래라는데 커뮤니티는 원래부터 비즈니스였다.

다만 그 커뮤니티가 가족 사회에서 같은 이해 관심사를 공유하는 개인들의 느슨한 연대 커뮤니티로 변해갈 뿐.

자아실현에 대한 욕망은 동일한테 가족사회가 개인이 원하는 자아실현을 시켜주지 못하자

헤이조이스든, 트레바리든, 커리어 공동체가 되든 새로운 커뮤니티로 모습만 달리한 거다.


같은 맥락에서 이제 가족이 제공하던 원조가 비즈니스의 미래다.

사회생활 안착은 링크드인과 헤이조이스, 대외활동 커뮤니티가 대체했고

경제적 원조는 1인가구 맞춤 보험이나 연금상품, 실버보험이 대체했다.

이전의 가족들이 무엇을 제공했고, 지금의 세대는 무엇을 상실했는가. 그 접점에 미래 비즈니스의 기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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