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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Aug 10. 2018

다시, 시작

그리고 자기 반성

0. 미리 말하는데 앞으로 제 글은 더 어두워지고 더 재밌어질 예정입니다. 싱가폴/말레이시아에서 돌아왔고 그리고 취준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1. 언젠가 내영언니랑 이야기하다가 언니가 농담처럼 "상황이 힘들수록 지수는 드립력이 늘어. 골계미 리스펙 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사실 그건 fact였다...고민이 깊어질수록 black humor도 늘고 글도 잘 나왔었던 듯. 


태영이는 언젠가 널 보면 빛난다고 말해줬다. 일은 더럽게 안풀리고 있는데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지금 넌 깨어있는 사람이잖아, 라고 했다.


아 그런가. 정말 사람의 눈을 빛나게 만드는 건 그 사람이 잘 풀리는 순간이 아니라 현실 앞에 치열하게 마주하는 시간일수도.



2. 엊그저께 J와 저녁을 먹었다. 6주 간 영어만 계속 쓰다 처음으로 한국말을 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깊은 내용의 전달도 안되고 할말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느낌. 중간중간 거울을 볼 때마다 내 눈빛이 흐려진 것 같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휴가 이후에 최적의 효율을 내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집중해서 Task를 부수듯이 끝내던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 로봇처럼 바로 휴식모드 -> 빡셈모드로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는데 스스로의 기준을 달성할때 자존감도 오르는 나라서 이게 너무 답답하다. 


2-1.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밤을 새는 걸로.. 하루 목표치를 오늘은 다 채우고 자야겠다.



3. 오늘 어떤 강사님이 "저는 여러분께 취업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하고싶은 걸 하세요. 어차피 둘다 힘듭니다." 라고 했다.


좀 찔렸던 게 귀국 후 공채 지원 계획을 세우다가 나도 모르게 1순위를 다들 하는 대기업 공채 2순위를 희망하고 가고싶은 분야(IT 마케팅)로 생각하고 있었다. 


3-1. 그 이유는 대기업 공채는 주위에서 다 한다. 그리고 나도 자소서를 몇번 써 봤고. 위포트나 고용노동부 프로그램도 많고 자소서 문항 해설 자료는 카페에 넘친다. 물론 티오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그나마 알려진 길이다. 


그리고 가고싶은 분야는 수시채용이 많고 대기업에 비해서 풀이 좁으니 불확실한 상황을 내가 정의하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야 한다. 


3-2. 취업을 목표로하는 취준생 입장으로서 당연히 공채 영업직군은 쓰겠지만 그래도, 고작 많이 접해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내가 쫄다니.



4. 무의식적으로 상황에 순응하게 되어버린 것 같아서 기분이 더 엉망이었다. 우리 과에서 그 누구도 취업테크를 타지 않을때 허허벌판에서 스스로 길 뚫어가며 당당하게 내 꿈은 이거라고 말하며 인턴 면접을 보던 제시는 어디 간거지.


4-1. 문득 DMS의 교장선생님이 생각났다. 

인생은 꿈을 꾸지 않기에는 너무 길다고, 나한테 직접 졸업장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지수"라고 말씀해주셨던 분. 


죄송해요, 교장선생님. 지금 도망가려고 하고 있어요.



5. 사실 나한테 뭘 열심히 하는 건 오히려 활력소다. 몰입에서 얻는 엔돌핀은 마약같아서 중독되게 한다. 최선을 다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냉정하게 받아들일때가 힘든거지. 


그때 그렇게 힘들어서 지금 이겨낼수 있는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지금 좋아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덜 실패할 걸로 보이는 것을 찾아가려고 하는 걸 보니 도전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던 그 많은 순간에 생각보다 힘들었나 보다.  



요 며칠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는 휴가 후유증 + 정말 원하는 분야에서 또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5-1. 루이스 아라공이 말하길 인간으로 산다는 건 수없이 넘어진다는 것이다. 넘어지는 순간 난 깨어 있었는데, 그래서 정신 말짱하게 깨어 있는 상태에서 깨졌던 그 아픔도 체득되어 있다. 


그땐 지금 힘들어할 시간도 없어,라며 나를 몰아쳤는데.

어쩌면 그게 나 자신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던 걸 수도.



6. 될놈 되고 안될놈 안된다는 진리를 한번 더 되새긴다. 어려운 상황이어도 개인이 능력이 좋으면 헤쳐 나가기도 하고, 상황을 만들어 갈 수도 있다.


6-1.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불안을 안고 가는 것.

불안한 그 칼날 위의 춤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부른다. 


반 고흐가 세기를 건너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 당시 그의 벅차는 불안과 벅차는 감정들 때문이다. 그 감정을 온전히 집중해서 쏳아냈기 때문이다.


시대를 앞서갔던 천재도 너무나 인간적으로 처절하게 힘들어 했다는 사실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위로가 된다. 



7. 슬럼프가 오거나 일이 밀릴때마다 문제를 해결해 줬던 건 찬물로 샤워를 하고 정확히 대처하는 자세였다.


온갖 미디어에서 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힐링하라고 하지만 인생을 진짜로 한번 살아보고 싶다면 힘들다고 손 놓아버리는 건 아닌 것 같다. 해야하는 것들은 엿같아도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아니면 용기있게 포기하거나. 


아무래도 오늘 밤 내로 다시 원래 페이스를 찾아서, 더 시니컬하지만 재밌고 진한 색의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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