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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Sep 24. 2020

제주에서는 비가 오면 바다냄새가 난다

@O-PEACE JEJU


0. 난 도시생활을 좋아한다. 잠들지 않는 도시 밤 1시에도 음식을 시켜먹을수 있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안되지만 좋은 음악이 나오는 바에서 나이트라이프도 즐길 수 있고, 아침에 새벽 배드민턴을 치고 바쁘게 뉴스와 팟캐스트를 소비하며 투샷을 넣은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좋아한다. 근무 중엔 긴장 속에서 한껏 집중한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코엑스몰이나 스타필드에서 오늘은 어떤 신상이 나왔나 쇼핑을 두시간정도 하는 건 내 취미 중 하나다. 소비가 좋고 취미가 좋다. 주말엔 뚝섬에서 보드를 타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하우스파티도 한다. 열심히 일해서 성과내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사랑하고 무엇보다 원래 에너지가 원체 많은 탓이다.


다만 인생은 항상 균형의 문제라 차분한 사람도 때로는 파티가 필요하고 열정적인 사람도 쉼이 필요하다. 도시의 배려 없는 바쁜 흐름에 내 안의 밸런스가 와르르 무너질 때면 조용한 도시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1. 11월까지 써야하는 출간 작업 원고는 끝없이 밀려있고 계속되는 글로벌 콜과 재택으로 워라밸은 붕괴된지 오래였다. 일어나자마자 컴퓨터 켜고, 짧고 빠르게 일하고, 각기 다른 사이트의 사람들을 불러모아 회의를 진행하고, 읽을건 너무 많고 시간은 너무 적어서 눈깜빡하면 저녁이 되어있기 일쑤였다. 내 안의 에너지가 다 떨어졌음을, 바닥을 긁고 있음이 얼마 전부터 느껴졌고 몸과 마음을 신호를 보냈다. 이대로 살다간 단명한다.

이대로 살다간 정말 안될 것 같았다. 떠나야겠다.



2. 이번 도시는 제주. 제주의 평화로운 오피스, Office 아니고 O-Peace 다. 쉬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쉬는 국내 유일 휴양지 기반 코워킹 스페이스. 제주 오피스는 창의적이고 쉼이 가능한 아름다운 근무 공간, 코워킹, 디지털 노마드, working in peace 라는 새로운 형태의 근무 문화(New way of working) 그 모든 것을 담은 곳이다.


▼ O-PEACE JEJU 공식 블로그



내가 선택한 상품은 3박 4일 B&B 스테이와 3일 간의 코워킹 스페이스 이용권을 포함한 Remote Pack이다. 제주 오피스는 1층은 코워킹 스페이스, 2층은 3개의 B&B 숙소, 3층은 현재 공사중이지만 워크샵 공간으로 꾸리고 있다. 지난 3박 4일간 제주 오피스에서의 휴식&근무를 요약해보자면 한마디로 "평화롭다". 오피스 건물 곳곳에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다.


삶을 꾸려가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이렇게 평화로운 마음으로 할 수 있다니.


O-Peace의 평화로운 B&B. 하얀 수건에서는 아로마 오일 향이 난다.



3. 김포공항에서 빠른 흐름의 음악을 들으며 제주공항에 내렸고, 버스를 타서 조천읍에 내렸다. 빠른 걸음으로 제주 오-피스에서 체크인을 하자 갑자기 훅- 여유가 내 앞에 닥쳤다. 그저 조용하고, 느긋하고, 외부의 자극과 동떨어져 온전히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내 목전에 닥쳤다. 부산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내 앞의 하늘, 조천읍의 바다를 봤다. 그 풍경이 보이는 순간 내 호흡이 깊고 느려졌다.


제주 오피스에서 한 눈에 들어오는 조천읍


3-1. 첫날부터 시골 생활에 버벅였다. 체크인 후 앉아서 글 한편을 쓰자 9시가 다 되었는데 어느새 밤이 되어 깜깜했다. 밤이 원래 이렇게 깜깜했나? 불빛 없는 밤이 생소했고 저녁을 사올겸 걸어서 조천읍에 나갔는데 앗 이럴 수가.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은 뒤였다. 어찌어찌 몇 킬로를 걸어 저녁을 포장하고(그곳도 영업시간이 곧 종료되어 앉아서 취식은 안되고 포장만 됨) 숙소에 돌아와 넷플릭스로 2000년대 로맨틱 코미디를 보면서 실감했다 여긴 서울이 아니구나.



4. 4일간 제주 오피스에 있으면서 가끔씩은 함덕 해변에 나가 발을 담그기도 하고,  올레길을 따라 조깅하거나, 마지막 날 저녁에 제주에 자리를 잡은 태훈이와 저녁을 먹었지만 그게 외출의 전부였다. 애초에 이곳저곳 관광하러 간 게아니라 쉬러 온 거니까. 대부분의 시간은 오-피스에서 peaceful하게 보냈다. 1층 코워킹 스페이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이패드를 펼쳐 글을 썼다.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오롯히 집중하는게 참 오랜만이다.


4-1. 아침에 일어나 요가를 잠깐 하고 1층에 내려가면 따스한 가을 제주 햇살이 오-피스의 앞마당과 테라스를 비추고 있었다. 커피를 한잔 들고 나가 한없이 바닷가를 바라보다가, 다시 들어와 토스트를 구워먹었다. (코워킹 스페이스 이용권 구매자에게는 토스트와 커피, 음료가 제공된다) 이렇게 여유롭게 지내는게 얼마만인지 까마득하다. 다시 돌아가면 바쁘게 지내야겠지만, 더 활기차게 지내기 위해 지금은 균형을 맞추는 시간이다.


오피스 1층의 한쪽 면은 통유리로 고개를 들면 바로 조천읍의 바닷가가 보인다. 그 풍경과 햇살을 보는 순간 테라스로 나가서 일하지 않을 수 없다. 몇시간이고 죽치고 앉아 일하는데 시간의 관리는 온전히 내 손아귀에 있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이 가든말든 상관 안한다. 우선 일거리를 평화로운 공간에서 집중해서 해내는게 중요하니까.


평화롭던 둘쨰날, 제주


밤에는 오피스의 오렌지색 불빛이 조천읍의 깜깜함을 밝히는데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보면 마치 오피스는 이 험한 세상 마지막 남은 요새같이 느껴진다. 1층 코워킹 스페이스 복층 공간에서 구비된 책을 읽는둥 마는둥 음미하다가 창 밖을 바라보면, 조천읍 해변가의 불빛과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이 아스라이 반짝이고 있다.


저녁 무렵 오피스 제주



5. 10대 때부터 꿈만 보고 달려온 지 10년이 넘었다. 그만큼 지쳐있는줄은 알았지만 바다를 10분 이상 바라본 적 없다는 것도 몰랐다. 하고싶은 건 많았지만 돈도 능력도 인맥도 없었고, 시간밖에 없었기에 그래서 시간을 극도로 아껴서 썼던 날들. 가쁘게 살아온 날이 나쁘고 평화로운 제주가 좋다는 건 지나치게 단편적인 시각이다. 서울에서 잠을 줄이며 달려왔던 과거의 내가 이 3박 4일의 제주를 벌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이미 서울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전화에 대고 전투하듯이 말하고 모니터를 죽일듯이 노려보고 일하고 있다. 서울의 날들이나 제주의 날들이나 모두 다 내가 사랑하는 순간들이다. 어느날 한 쪽의 사랑이 나를 너무 버겁게 할때, 균형을 찾기 위해 제주 오피스에 다시 가야겠다. 누구나 정 반대의 것에서 위안을 얻을 시간은 필요하니까.


P.S. 오피스 제주에 해방촌 스토리지 북앤필름에서 산 <내가 책방 주인이 되다니>라는 책을 남겨 놓고 왔다 (이러면 안 될지도?). 혹시 나중에라도 오피스 제주에 방문하시는 분은 제가 남긴 책을 찾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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