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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Apr 14. 2021

베드라디오 도미토리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2주 전 제주여행 뒷북후기

0. 신촌과 혜화의 공기가 다르듯 서울과 제주는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살아가는 듯 하다. 어쩜 그렇게 한시간 남짓 김포발 제주행 비행기는 사람을 전혀 다른 공간에 가져다 두는지. 서울에서 나를 감싸던 긴장은 돌연 툭 사라지고, 오히려 긴장을 놓지 못하는 것은 늘 긴장안에서 살아왔던 나다.


0-1.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을 아끼게 되더라. 여러사람에게 내 에너지를 뿌리지 않고 집중하며 내가 내 인생에서 좀 더 주도적인 사람이 되어가는것 같지만, 가끔씩은 시간을 아끼고 또 아끼다 못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조차 스스로 박탈해버릴 때도 있었다. 가끔씩은 너무 재지 않고, 하나에 집중을 못할정도로 모든 것에 열려있고 열정적이던 예전의 내가 그립다.


1. 그럴 때마다 배낭여행을 갔다. 싱가폴로, 라오스로, 요새같은 시국에는 강릉이나 제주로, 많이 생각하지 않고 훌쩍훌쩍 떠나곤 했다.

배낭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게 또, 도미토리 룸이다.


꿈은 많고 돈은 없고 체력은 넘쳐나던 나는 거의 모든 여생을 도미토리와 함께했다. 싱가폴 국제광고제에 student delegate로갈때 할인받은 입장 바우처도 비싸게 느껴졌던 그때, 아랍 스트리트의 5 stones호스텔의 6개 베드 도미토리에서 꿈꾸며 잠들던 그 일주일을 기억한다. 러시아 여행에서 구글 맵의 지도가 잘못 표기되어 손짓 발짓 그리고 약간의 행운으로 겨우겨우 찾았던 타이거 호스텔의 도미토리도 기억한다.  대만 껀팅의 도미토리 벙커 룸은 왠만한 룸보다 나았고, 직접 그린 호스텔 및 마을 지도를 나눠 줬던 친절한 리셉션도 내 마음에 남았다.


2. 난 도미토리를 좋아한다. 물론 이제는 도미토리 보다 좋은 방을 예약할 여유도 생겼고 (그다지 많은 여유는 아니지만) 이제는 도미토리에서 자면 예전처럼 말끔하게 피로가 회복되는 것도 아니지만, 마음만은 좋아한다..


언젠가 언론홍보영상학부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수업이었나? 를 들을때 교수님은 역사 깊은 타이포그래피와 로고, 비주얼 등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들의 생애를 소개하다가

“배에 기름이 끼면 예전하고 다른 비주얼이 나올수밖에 없긴해요,” 라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건 다 잊어버리고 폴랜드가 IBM로고 디자인했다는 거랑 그 배에 기름 끼면 예전과 다르다는 발언만 기억나는 수업이다.


내가 다소 배에 기름이 끼어 배가 부른 소리를 하고 있을 때라던가,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것 같다고 스스로 느낄 때면 난 종종 베드라디오 도미토리에 오곤 했다.

한라산과 구제주 도심 뷰가 있는 도미토리, 삼분의 일 토퍼가 있고, 일층 맬맥집에서 타인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수 있고, 내 어린 날의 열정이 남아 있는 이곳에.


3. 베드라디오는 공항과 가까운 제주시의 제주 구도심에 위치해 있어서, “제주 여행의 시작과 끝”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나에겐 베드라디오는 내 열정을 품었던 커리어 시작의 시기를 깨우쳐 인생의 끝까지 그 열정을 잃지 않게 해주는 곳이다.


점점 도미토리에서 함께 묵는 친구들과 나의 나이차가 점점 벌어지는 것 같지만, 베드라디오 도미토리 베드의 암막커튼 뒤에 숨으면 되니 걱정 없다! 갈수 있을 때까지 가 보겠어..


4. 2만 원 여의 가격으로 열정만으로 가득찼던 내 예전을 돌아볼 수 있는 장소가 있는 건 큰 특혜인 것 같다.

만약 당신의 배에도 다소 기름이 낀 것 같다면, 이리로 오세요.


낯선 이와 흥겨운 스탭이 기다리는, 그리고 어쩌면 과거의 내 모습도 만날 수 있는 제주 베드라디오의 도미토리로.



베드라디오 1층, 단순식탁에서의 아침




베드라디오를 더 알고싶다면?

https://brunch.co.kr/@quane/159

http://bedradi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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