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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May 11. 2021

수렁과 직면

0. “수렁에 빠져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수렁에 빠져있다는 걸 잊어야 해. 그래야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거든. 그걸 네가 자꾸 되새기게끔 한다면 당연히 화를 내거나, 피하려고 하거나, 너라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하겠지.”

S언니가 말했다.


1. 내가 수렁에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내가 수렁 그 자체였던 때가 있었다. 노력을 뻗쳐도 되는게 없어 모든걸 세상 탓을 하고 바닥까지 봤던 시기였다. 그때 바닥을 짚고 일어난 경험은 내 자신의 성향 역시 내가 정할 수 있다라는 교훈을 주었다.


2. 나는 나를 투명하게 들여다 보는 것을 좋아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 그럴까.

위선이나 자기 보호 없이,  악마성, 부족함, 기쁨, 슬픔을 온전히 여다 보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올려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못됨과 부족을 들여다보았을  내가 나를 용서하고 타인도 용서하며 나름대로 괜찮은 자질을 쌓아가게 됬다.


3. 꿰뚫어보는 것, 직면하는 것이 습관이 되자 내 주위 타인들에게도 그렇게 했다.

물론 요즘같은 불편한 시기에 타인에게 충고를 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 나도 좋게좋게 넘기는데 내가 정말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사람이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말하곤 했다. 반대로 나도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봐주는 주위 사람들이 많이 고맙다. 우리는 항상 불완전하고,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어야 하며 용서하고 그렇게 나아가야 하니까.


4. 그렇게 살다 보니 내가 나를 꿰뚫어 보는 이야기를 하거나, 상대방을 꿰뚫어 보았을 때 불편해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들 자신의 가장 약한 면을 들여다보기가 쉬울까. 나도 알고 있다. 다만 내가 정말 아꼈던 사람이 “난 원래 그런 사람이야.” 라고 이야기하며 도망가버릴 때는 항상같이 많이 아팠던 것 같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건 정말 무책임한 말이다. 난 원래 그런 사람이라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난 잘못이 없어. 그러니까 너도 도망가.


성향과 기질은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을 결정하지만 인간의 도리상 해야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그걸 기질 탓으로 돌리는 건 말도 안된다. 자기 자신의 부담을 더는 말일 뿐이다. 그리고 살다보면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일 할수도 있다. 그럼 투명하게 자신을 들여다 본 후 사과하고 화해하면서 상호간에 더 좋은 사람이 되면 될 일이다.


많은 것들은 선택의 문제다. 그 선택은 굳이 내가 이런 사람이라 해야만 했던 게 아니고, 자신의 의도가 들어가 만들어진 결과라는 이야기다.


5. 자존감과 기질 역시 넓은 시각에서 보면 결국 선택의 문제다. 나의 선택이 쌓여 내가 되고 내 자존감이 된다.

자신을 들여다보길 무서워하고 누군가가 나의 결점을 자꾸 떠오르게 한다면 그 대상을 제거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직면해야 할 건 직면해야 한다.

언젠간 그 성찰의 부채가 켜켜이 쌓여 내 인생을 좀먹게 한다. 당장 피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전부다 떠안기가 힘들다면 한발짝씩 내딛으면 된다.


예전에는 자신의 결핍때문에(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게 상처를 입히고 도망가버린 사람들이 밉고 아팠다. 돌아서 생각해보면 나도 똑같이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상처줬던것 같고 많이 미안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제는 나에게 상처입히고 떠나버린 사람들이 밉기 보다는, 그들이 나와의 갈등으로 인해 더 무서워하며 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때나마 내 소중한 성장기를 함께 해주었으니, 그들도 나도 이 사건이 서로를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젊은 나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한참 남았고, 난 아직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며 살아갈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순간의 상처만 계속 돌아보며 두려워하기에는 우린 너무 젊다. 도망침으로써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직면하고 나아가 먼 훗날 돌아보며 그때 그랬지, 하고 웃을때 비로소 그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게 아닐까. 넘어지는게 무서워 넘어지지 않는 것에만 집착한다면 넘어짐으로서 무엇을 배우고, 넘어진 후 다시 일어나는 능력은 절대 갖출 수 없게 된다.


6. 고흐는 진실에 가닿으려면 계속해서 그려야만 한다고 했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좋은 글을 쓰려면 어려움앞에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내 삶이라는 작품을 명작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솔직하게 나라는 사람과 상황을 들여다 보는 것.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아픈 작업을 계속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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