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일주일 살기 + 리모트 3-4일차
0. 원래가 긴 여행을 선호하는 편이다. 1-2박 정도로 간단간단하게 휙휙 떠나는 여행은 액티비티를 했다, 정도의 느낌이지 나를 돌아보는 여행을 했다는 생각은 안들기 때문이다. 1,2일차까지만 해도 7시나 6시경(원래 서울에서 일할때 일어나던 시간) 에 눈이 떠지고 시계를 자꾸 보며 내 몸은 긴장을 덜어내지 못했다. 아직도 내 몸은 서울의 시차를 따르고 있구나 싶었다.
3일째 아침이 되자 10시경 여유로이 일어나 햇볕아래 해변에서 요가를 했고 그 순간 드디어 알 수 있었다. 아, 이제 강릉의 시간에 시차 적응을 했다고.
가끔씩 이 시차적응에 갑작스레 피로가 몰려올 때면 알로하서프의 커피를 마셨다.
1. 서핑의 특징은 할때는 정신없이 그냥 하는데 그 다음날 아침이 되면 파도로 온 몸을 얻어맞은 것 같다는 거다. 3일 내내 차가운 봄바다에서 서핑을 하고 러닝을 하고 했더니 4일째 되는 날 아침, 아무것도 안했는데 다리가 근육통으로 자잘하게 떨리는 듯 했다.
마침 또 날이 흐렸고, 미세먼지가 역대급으로 심했다. 왜 내가 여행만 오면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를 일이지만, 살다 보면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있는 법이니까.
2. 미세먼지가 좀 가라앉고 해가 나오면 요가도 하고 서핑도 하려 했는데 날은 점점 흐려졌다. 결국 2시가 넘어가자 비가 떨어진다.
어제 저녁 마침 게스트 하우스 새로 만난 분들과 맥주를 부어라 마셔라 마셨고 할 일을 또 미뤄버렸다. 날도 흐리고 하니 오늘은 일하는 날 하지, 뭐. (그래도 지난 몇 달간 술만 마시면 토했는데 이제는 예전만큼은 못마셔도 맥주 몇 잔 정도는 괜찮다. 음주를 나아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며 자기위안을..)
입맛이 없었고 여기 와서 군것질을 줄인 채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있다. 이것 때문에라도 이번 일주일이 지나고 나면 살이 빠질 것 같다.
3. 어제 오늘 <노마드랜드>를 많이 읽었고 거즌 3분의 2 넘게 리딩을 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읽는 속도가 느려지는 느낌인데 일단 책읽기에만 온전히 몰입할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탓인 것 같다. 리딩과 함께 살아가는 대학원생들이 왜 핸드폰을 자주 못보는지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어제는 리딩 중에 알로하서프에서 판매하는 사진 엽서를 사서 강릉 느린 우체통에 넣을 엽서를 두 장 썼다. 지난 몇달간 고마웠던 사람들한테 보낼 생각이다.
<노마드 랜드> 리딩과 Status-as-a-service아티클 번역, 글쓰기를 주로 하고 있는데 넷째날인 오늘 좀 속도가 나는 느낌이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집중하는게 나쁘지 않다.
잠시 책을 읽다가 숨을 돌릴 겸 <강릉은 모두 작가다 프로젝트 엽서에 글을 썼다.
위 사진의 네모 꼴 엽서에 강릉과 관련된 글을 써서 수집함에 넣어놓으면 1년에 두번 모아 추려서 계간지로 발행한다고 한다.
1년 뒤 발송되는 느린 우체통도 그렇고, 동해안 자전거 종주길 스탬프도 그렇고, 강릉은 이런 소소하고 귀여운 매력들이 속속들이 숨어 있다.
4. 밤에는 번역 작업을 하다가 문득 환기가 필요하면 밤 바다 산책을 하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다. 첫날 알로하서프에 오자 게스트 하우스 사용법을 알려주시던 강사님은 밤이 되면정말 아무도 없거든요, 라고 했고 난 그날 “정말 아무도 없다”가 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다.
서핑을 즐기던 사람들도 게스트하우스에 묵는게 아니면 다른 강릉 도심지의 호텔로 가거나 하고, 주말이면 모를까 평일 저녁에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는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기 때문에 알로하서프의 큰 강아지-수아-와 나와 둘밖에 없다.
밤 바다 산책을 하면서 해변에 나 혼자만의 발자국을 찍는게 나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순간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