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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Apr 21. 2021

3. 도망침 역시 결국엔 다시 돌아오기 위한 것이기에

강릉 일주일 살이 5,6,7 일차

5일차. 피로로 인한 무기력이 아직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는지 6시 반에 눈을 떴다 다시 잠든 후 다시 10시를 넘겨 일어난다. 그 전날 다음주에 사게 될 차종 및 보험 관련 약관을 읽다가 새벽 2시가 넘겨 잠든 탓이다. 오래도록 내 몸에 인이 박힌 검색하다 늦게 잠드는 유전자는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게 아닌가보다.


오전부터 야외 운동을 하려고 틈을 봤으나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 우선은 빨래를 하고 알로하 라떼를 덜달게 주문한다. <노마드 랜드> 리딩을 마치고 조만간 발행할 블로그 초안을 쓴다. 카페 책꽃이에  있는 평상시 읽어보고 싶었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한권 쓱쓱 읽는다. 확실히 지난 며칠간 집중해서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물론 예전만은 못하지만)



좋아하는 책을 읽고, 건강관리를 하고, 가족을 돌보고 그간 소홀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하느라 백수가 더 바쁘다. 하긴 일할 때 이런 것들을 무심코 미뤄놓고 있었다는 이야기겠지.


3시경 바람이 멎어 해변에서 요가를 하고 서핑을 1시간 넘게한다. 물은 차가웠지만 햇볕이 요 근래 중 제일 따듯해서 버틸만 함. 하지만 순탄치 않은 인생의 이지수는 서핑을 마치고 덜덜 떨며 나오자 가스가 떨어져서 샤워실에 온수가 안나온다는(...) 비보를 듣는다. 찬물로 머리를 남고 나와 석유 열풍 난로 앞에서 덜덜 떨고 있자 사장님이 미니 간이 가스통을 연결해주셔서 그 간이 가스통의 온수로 씻었다. 연료를 소중히 여깁시다.


저녁에는 사운드 클라우드로 노래를 들으며 해변을 산책했다.

고단한 상황 속 많이 지쳤었는데 오늘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많이 재활이 된듯 한 하루다. 이겨나갈 힘이 조금씩 붙는 것 같다. 그 많은 것들을 이겨내 이만큼 더 단단해졌으니 난 더 자유롭고 행복해 질 수 있고, 그럴 자격이 있다. 맥주를 한잔 하며 열풍 난로 앞에서 일기를 쓴다.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낸지 5일째. 매일 밤 11시에 확인하던 웹툰이나 10분마다 확인하던 뉴스나 카카오톡,화장품 같은 것들은 손도 대지 않은 이 시간들이 귀하다. 서울로 돌아가서도 이런 시간들을 의식적으로 확보하려는 노력을 해야할 것 같다.


6일째. 원래는 알로하 서프에서 6박 7일 후 세인트 존스 강릉 호텔에서 피로를 풀려 했으나 이래저래 서울에서 처리할 것들, 가족 일이 많아 하루 일정을 줄이게 됬다. 마지막 6일째를 세인트존스 강릉 호텔로 가서 일주일 리모트 근무를 마무리 할 예정이다.


오전 알로하 서프를 떠나기 전, 얄굳게도 내가 떠나는 날 햇빛이 제일 좋았고 이 햇빛을 놓칠 수 없어 해변에서 태닝을 한다. 봄볕이 제볍 따가워 기분좋게 살이 탔다. 미니스톱 미니 칵테일과 얼음컵, 따듯한 햇빛은 결국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부어 준다. 햇볕 아래 지난 며칠간 서핑으로 단단해진 근육이 이완되는 것 같다.


제휴 택시를 타고 강릉역, 강릉역에서 세인트존스 셔틀을 타고 호텔로 온다.


사계절 온수풀, 경포호 와 송림숲 앞에 있는 이 4성급(5성급인가?) 호텔은 전에 당일치기 자전거 여행때 눈여겨본 곳! 세인트존스 2층에서 하고 있는 디지털 전시<그대, 나의 뮤즈: 반고흐부터 마티스까지>를 본다.


진실에 도달하려면, 계속해서 그리는 수밖에 없어 - 반 고흐


전시 후 인피니티 온수풀과 스파를 즐기자 그간 금진해변을 산책하며 조금씩 다독여 온 피로의 응어리를 드디어 풀어버리는 것 같다.


저녁에 방으로 돌아와 미뤄놓고만 있던 영화를 본다. 이번 일주일 간 벌써 네편의 영화를(<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노팅 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미드나잇 인 파리>) 봤는데 내 자신을 보다 매력적으로 만들고 지적으로 만드는 시도도 이제까지 참 많이 미뤄왔다 싶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고등학교 프랑스어과 다닐 때 프랑스어 선생님이 소개해줬던 영화였다.



이 영화는 알고 보는 만큼 재밌는데 뭣모르고 봤던 10년 전과 달리, 파리도 가보고 (오랑주리 미술관 콩코르드광장 아크 드 트롱페 등등) 카를라 브루니도 알게 되고 나름 글쓰는 사람으로서 스콧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 등등의 작품도 읽어보고 하니까 더 깊게 다가왔던!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젤다 피츠제럴드 책이라던지 지적인 호기심 및 파볼 거리들을 애플 메모 앱에 적어놨는데 이런 것들을 내가 놓지 말고 좀 더 공부해봤으면 좋겠다.  프랑스어도 놓지 않고 틈틈히 해보려고하는데 과연 할 수 있을까 미래의 나 부탁해..


사실 뭐 내가 앞으로 공부를 하고 안하고보다 내가 계속해서 지적 자극을 받을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삶안으로 끌어오게끔 하는 노력은 중요한 것 같음!


7일째 아침의 해송숲


7일째에는 그날 12시 25분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와야 해서 오전에 느지막히 일어나 해송숲과 경포호를 산책하고 빠르게 돌아와 샤워했다. 짐을 싸서 나오고 KTX에서일기와 이제까지 적어놓았던 블로그 초안을 점검하면서 창 밖을 보는데 기분이 미묘했다. 강릉과 서울의 공기가 이렇게 다른데. 고작 2시간 기차로 이만큼의 시공간을 뒤틀 수 있구나, 하는 생각.


많이 단단해지고 건강해진 것 같다. 피부색도 더 건강해졌고, 다쳤던 다리의 멍들도 거의 다 빠졌다. 미련으로 잡아두던 인연을 털고 상처도 털고 결국 그렇게, 일주일간의 도망을 끝내고 삶으로 돌아온다.


다시 집을 돌보고, 청소를 하고, 전기요금 자동 납부를 신청하고, 출근을 하는 그런 일상이 같았지만 조금은 달라진 나와 함께할 터였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고 한다. 사실 그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야기다. 우리는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자기가 엉망으로 만든 판은 결국 결자해지의 자세로 풀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부메랑처럼 돌아올 업보를 무서워하며 두려워하면서 나만의 동그라미 안에서 속박되기 때문이다.


지치고 나가 떨어져 도저히 자신을 바로 세울수 없을때, 잠시 도망을 갈수는 있다. 하지만 그 도망도 결국 삶으로 다시 돌아올 힘을 모으기 위함이다. 더 단단해지고, 유연해지기 위해. 도망치지 않는건,아프지만 항상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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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힘든 기간 동안 진심으로 제 옆에 남아주셨던 모든 분들께 이번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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